____________________

XXXX. XX. XX. 날 씨  : 흐림

____________________

오늘은 창 밖을 관찰했다.

나 말고 모두가 분주해 보였다.

아, 애초에 나는 분주해선 안되는 존재였나.


가끔 다른 이들이 밖 너머로 날 바라보고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온다.


겨울이 오려나 보다.



*



0.


첫눈이 내렸다. 그래. 첫눈이다. 하필 내가

복귀하는 날에 폭설이 쏟아졌다.

몸에 붙은 눈송이들을 털어냈다.


출근 후, 나는 탕비실에서 곽 팀장을 만났다.


"세림씨, 오늘 면담이지?"

"예.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되네요."

"긴장되긴, 이번에는 겁대가리 없는 애새끼니까 걱정하지 말아."


곽 팀장은 내게 믹스 커피 한 잔을 내어주며 자리를 떠났다.


믹스 커피는 미지근했다. 종이컵도 눅눅했다.

정체 불명의 거품도 둥둥 떠다녔다.


'개새끼가.'


당장 믹스 커피를 싱크대에 버렸다.

한층 더 기분이 더러워졌다.



*



1.


"안녕하세요."

"..."


완전 무장을 마친 뒤 나는 면담을 시작했다.


"이름은?"

"내가 왜?"

"너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내가 나가면 너희가 손해 아니야?"

"이름."

"...C-75"

"그래. 75호. 이제 말해봐."

"뭘?"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해야 할 문제이고."

"잘 생각해. 우리가 널 왜 이곳에 데려왔는지."

"하, 답답하네. 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아니. 그런 정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네가 태어난 이상. 넌 깨닫고 말았을 테지."

"말이 안 통하네."


나와 면담을 하는 존재는 나를 향해 강한 적대심을

내보였다.

다행히 방호복은 나를 보호해주는 중이었다.


"얼른 말하는 게 좋을 걸."

"..."

"말하지 않으면 네가 입을 열 때까지 저 센서가 널 향해 총알을 날릴 거야."

"..."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한숨을 쉬며 버튼을 눌렀다.

센서는 가동되었다. 센서가 움직인 방향의 끝은 결국 그 존재에게로 향했다.



"내일 또 보자고."


나는 면담실을 나갔다.



*



2.


그 존재는 기꺼이 살아남았다.

고작 2발의 총상만 입은 채. 게다가 치명상도 아니었다.

분명 10발은 넘게 나갔을 텐데.


"이야, 축하해."

"...꺼져."


"그래서 이젠 얘기할 마음이 들어?"

"..."

"내가 아는 건 정말 없어."

"조금이라도 좋아."

"너네 정말 우리를 뭘로 생각하는거야?"

"당연히 괴물이지."

"정말 우리가 괴물일 거라 생각해?"

"너는 총알이 난사되는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았잖아."

"..."

"무엇보다."


"너네와 우리가 같을 리는 없지."


그 말을 끝으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않았다.

면담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



3.


-속보입니다. 최근 들어 외계 생명체의 출현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은 너희들과 같다' 라는 주장을 앞세워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뉴스 속보에선 여전히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사회는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져가고 있었고, 조사와 면담은 진전이 없다.


그 존재와의 면담도 이제 어느덧 3주째이다.


존재의 상처는 낫지 않았다.

급하게 우리 쪽에서 처치를 해주긴 했지만.


"이봐, 우리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

"그래, 인정할게 너희와 우리는 같아."

"..."

"근데 네 말이 맞다면, 네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뭔데?"

"..."


자존심 굽히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여전히 날 바라보며 원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라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창문 밖 풍경이 혼란스러웠다.




*


____________________

XXXX. XX. XX. 날 씨 : 흐림.

____________________

저들은 우리 말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몇 번이고 호소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나처럼 반항하고 주장했다.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다.


이번에도 실패했다.

다시 우리를 받아줄 곳으로 떠나야 한다.

우리와 같은 곳으로 떠나야 한다.


멀리멀리.



*



그의 손목에 차고 있던 플라스틱 팔찌 같던 무언가가

시계 모양으로 변했다.

그것은 평범한 시계가 아니었다.


창 밖에는 우주선.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떠올랐다.


소년도 떠올랐다.


그 면담실의 천장을 뚫고 멀리 날아올랐다.


높이 날아오른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같았다.


저기 건물들 너머 언뜻 보이는 거대한 우주선.

그 우주선은 결코 우리의 것이 아니였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창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그 장면을 지켜봤다.


그렇게 그들은 사라졌다.




*






0.


오늘은 복귀 후 처음으로 면담을 하는 날이다.


"세림 대리님!"

"어어, 곽 주임."

"복귀 후 처음 면담이시죠? 제가 미리 커피 타놨어요."

"그래. 고맙다."


따뜻한 믹스 커피를 한 잔 들이켰다.

몸속이 뜨끈해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벚꽃이 흩날리는 지금의 봄처럼.



*



"이름은?"

"..."

"우리 빠르게 빠르게 진행하자."

"..."


자신의 발목만 바라보던 존재는 곧 똑바로 날 쳐다보며 웃었다.


그리곤 자신을 밝혔다.

"C-77."


끔찍한 웃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