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초자연현상처리반 모음집
· 초자연현상처리반 모음집



그날은 늦게까지 야근한 날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납품 기한은 다가오고, 보고서는 덜 작성됐고, 부장님은 닦달하고.


미영이에게 혜진이 재우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늘이 도왔는지 아니면 내가 내 생각보다 유능했던 건지, 11시는 넘기지 않고 퇴근할 수 있었다.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한 노래. 호라이즌 타운의 세이빙 더 홈입니다.


보통 때 같으면 미영이와 통화하면서 퇴근했을 텐데, 미영이는 자고 있는 건지 전화를 통 받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라디오라도 틀어 적적한 차 안을 채웠다.


(어색한 기타 소리)


그냥 음악 채널로 보이는 채널 하나 잡아서 튼 건데, 뭐 이리 조잡한 기타 연주람. 학창 시절에 밴드부했던 나로선 듣기 심히 거슬렸다.


"요새 가수들 감 다 뒤졌네."


지금 집으로 들어가지 마요. 지금은 때가 아녜요. 당신의 집을 구하고 있어요. 네, 정말로 구하고 있어요.


어느 아마추어가 부르는지 들어보려고 했다가, 내 생각 이상으로 어린 여자 목소리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물론 음정도 불안하고 박자도 멜로디에 억지로 맞춘 티가 팍팍 났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20? 21?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 수 있겠다. 이런 나이에 밴드로 데뷔해서 노래나 부르다니.


어느 방송국인지 몰라도 이 노래를 듣고 피눈물 흘릴 인디 밴드들이 불쌍했다. 적어도 발에 채이는 인디 밴드 하나만 데리고 세워도 이 여자보다 잘 부를 텐데.


당신의 집은 House인가요, Home인가요. 제가 구하는 건 House지만, 당신의 Home은 이미 망가졌을지 몰라요. 미안해요. 제가 구할 수 있는 건 House뿐이에요.


노래는 엉망진창이었다. 밴드라고 했는데 잘 들어보니 드럼은 거의 녹음된 것 같고 실제 연주하고 있는 건 보컬의 베이스 연주뿐이었다.


거기에 가사도 엉망진창이다. Saving the Home이라면서 구할 수 있는 건 House뿐이라고?


나는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클래식은 고리타분해서 안 들었었는데, 이렇게 비교해서 듣자니 선녀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우아한 클래식의 운율과 함께 한산한 거리를 한참 달렸다. 30분 정도 더 운전하면 집이었다. 자차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처럼 느껴지는지.


매일 버스와 지하철로 출근하다가 까딱 야근 잘못하면 택시 타고 교통비에 눈물 흘릴 거 생각하면.......


"음?"


맞은편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앞에 누군가가 앰프를 깔아두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꽤 앳된 여자 같았다. 복장으로는 분간이 잘 안 가는데 대학생인가?


빨간불에 걸려 정차한 사이 나는 맞은편 여자를 조금 더 응시했다. 기묘한 기시감이 있었다. 왜지?


하지만 얼마 안 가 나는 깨달았다. 저 여자다. 호라이즌 타운. 세이빙 더 홈. 아마추어보다 못한 실력. 근데 왜 방송국이 아니라 여기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나는 일단 차를 출발하면서도 시선을 여자에게서 떼지 않았다. 여자는 어쩐지 나를 쳐다보는 듯(아니면 그냥 지나가는 차가 나뿐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고개를 돌리면서 끝까지 노래를 불렀다. 물론 들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지나면서 방송국 차량 같이 안테나가 달린 차량도 갓길에 정차된 게 보였다. 저건가? 이런 심야에 야외에서 진행한 걸까?


나는 호기심이 생긴 김에 다시 채널을 돌렸다.


...해줘요. 당신의 Home은 이미 망가졌을 거란 걸. 지독한 악몽에서 깨어날 방법은 없어요. 꿈을 꾸지 않아야 해요. 돌아가지 말아요. 우린 아직 당신의 집을 구하고 있어요.


정말 못 부른다. 채널을 돌린 15초 전의 나를 진심으로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음정이 불안했다. 그나마 삑사리가 안 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그런데 가사를 듣다 보니 마음속 어딘가 불안감이 차올랐다. 뭐랄까, 거리가 너무 한산했던 걸까?


아니면 내 머릿속 어딘가의 상식과 이성이 호라이즌 타운이란 정체불명의 1인 밴드가 어떻게 라디오에 송출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기라도 한 걸까?


그도 아니라면, 가사의 내용이 마치 우리 집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한 걸까.


말도 안 된다. 우리 집은 신축 아파트 단지에 있다. 이 코너를 돌고 한 블록만 넘어가면 단지 입구고, 거기엔 입주민 차량 외엔 올라가지 않는 차단기와 유능한 보안 업체에서 고용된 경비가 있다.


심지어 그들은 정부의 권고를 따라 초자연현상의 발생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고, 입주민 회의에 따라 APOF와 업체를 연결해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대비해뒀다.


그런데 우리 집이 구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말도 안 된다.


"진짜로 자나 보네."


핸드폰을 보니 내가 보낸 메시지는 읽지도 않았고 걸린 전화도 없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우리 집을 쳐다봤다. 거실 불은 켜져있었다.


"......."


혹시 못 들었을 수도 있잖아. 나는 전화를 다시 걸었다. 우리가 사귀었던 시절 정해놓은 컬러링이 들렸다. 1분이 다 되기 전에 내가 먼저 끊었다.


기다리다가 잠들었나?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나?


의문은 무의미하다. 직접 가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우리 집 아닌가.


"이게 뭐야?"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도착하고 나서 꺼낸 첫 마디였다. 문이 열리고 가장 먼저 보인 건 깨끗하게 잘 닦인 대리석 복도가 아니라 새빨갛게 피칠된 바닥이었다.


너무 당황해서 문이 다시 닫힐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문이 닫히고 시각적 충격이 수그러지자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경비실에 전화했다.


"땡큐 시크리티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 여기 4동 12층인데요! 복도가 피칠갑이에요!"


"네?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4동 12층이라고요!"


나는 화를 내다가 문득 엘리베이터가 아직 12층이란 걸 깨닫고 황급하게 1층 버튼을 눌렀다. 왠지 모르게 내 의지로 문이 열리는 게 아닌 상황이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네, 입주민님. CCTV 검식 결과 4동 12층은 깔끔합니다. 피 한 방울 없습니다. 혹시 몰라 3시간 전까지의 기록을 빠르게 돌렸는데 몇 주민의 통행 외에는 4동 12층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복도가 어떤 경위로 더럽혀지는 일은 없습니다."


"네?"


경비의 말에 나는 잠시 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경비는 인내심 좋게 기다려주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민원 듣기 싫어서 먼저 끊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가만히 있었다.


그 사이 1층에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Nest nests next to nest.


엘리베이터 문 틈에 들어오는 시야각에 정확하게 맞춰 쓴 문구가 맞은편 벽에 피로 쓰였다.


뭐라는 거야? 둥지가 둥지 옆에 둥지를 틀었다고?


되도 안 되는 말장난에 그만 긴장이 풀려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


하지만 그 이상으로 어떤 소리도 내뱉을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쳐다봤다. 통화권 이탈 지역. 언제부터였는지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12층에 도착했을 때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초자연현상이다. 진짜 초자연현상이 일어났고, 거기에 휘말렸다고 생각하니 다소 이성이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다시 확인했다. 1층과 12층 외에 다른 버튼은 전부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1층 버튼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버튼이 12층 버튼이 되었다고 해야겠지.


심지어 열림 버튼과 닫힘 버튼 마저도. 내겐 선택지가 없다.


"미영아, 혜진아......."


언제부터지? 내가 진입한 시기야 뻔하더라도, 언제부터 발생한 거지? 내가 봤던 거실에 들어온 불은 초자연현상이었을까, 아니면 진짜로 우리 집이었을까?


미영이가 전화를 안 받은 건? 정말로 잠들어서 못 받은 걸까? 아니면.......


띵. 12층에 도착했다. 밝은 조명 아래 피칠갑의 복도가 나를 다시 반겼다. 피비린내가 코 끝을 강하게 찔렀다. 나는 침착하게 엘리베이터를 나와 복도에 섰다.


우리집은 왼쪽에 있다. 오른쪽은 이웃집. 그리고 이웃집이 있어야 할 곳엔 꽉 막힌 복도, 그리고


Nest nests next to nest.


1층에서도 봤던 피로 쓰인 정체불명의 말장난이었다.


둥지는 둥지 옆에 둥지를 틀었다.


도대체 이건 누가 쓴 거지? 아니, 초자연현상에서 그런 의문은 부적절하다. 누가 썼는지 중요한 게 아니다. 존재보다 중요한 건 존재의 형식이다.


군대에서 지겹게 배웠던 내용이다. 이웃집으로 가는 길 대신 쓰인 이 문구는 결국 내게 내 집으로 가게끔 강제하는 수단이겠지.


내게 별다른 선택지가 없음에도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음은 무엇인가?


우리 집이 이젠 우리 집이 아닐 확률이 높아서?


아니면 저 안에 미영이와 혜진이가 있을까봐?


그것도 아니라면 국경이 단절된 지금 굳이 영어로 쓴 저 문구가 신경 쓰여서?


물론 말장난이다. 뜻은 의미심장해도 말장난의 형식을 빌린 건 변하지 않는다. 영어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언어유희다.


그런데 왜 영어인가? 이 알 수 없는 찝찝함은 이미 여기 오기 전에도 겪었었다.


호라이즌 타운.


라디오 방송국은 왜 하필 심야의 거리 한복판에서 호라이즌 타운의 라이브 연주를 틀어준 것일까.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이 둘이 어떤 연관성이라도 지녔던 걸까?


하지만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은 12층에서도 12층 버튼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린들 남았던 1층 버튼도 12층 버튼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계단은 방화벽이 내려와 막혔다. 여기서 남은 유일한 길은 우리 집이었다. 피칠갑된 복도에서 유일하게 피 한 톨 묻지 않은 곳.


우리 집이었어야 할 곳.


미영이와 혜진이가 잠들었어야 할 곳.


이곳은 과연 우리 집일까? 잠금장치도, 명패도 전부 우리 집과 똑같았다. 아마 비밀번호도 내가 기억하는 결혼기념일 그대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우리 집이라는 증거가 될까?


Nest nests next to nest.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이 문을 여는 게 맞을까?


하지만 내겐 별 다른 선택지가 없다.


여기서 아무리 궁리한들 나아지는 것도, 변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우리 집인지 모를 이 문을 여는 게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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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한 번에 쓰려고 했는데 내 생각보다 프롤로그 파트가 길어졌고 이후에 쓸 분량 생각하면 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끊어서 올림.


한 번에 다 보는 걸 전제로 쓰는 거라 사실 이것만으로는 '이게 웨 나폴리탄?'이라고 할 수 있음... 내 역량 부족임.


그리고 여태 처리반 시리즈 연재물은 계속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가 넘어갔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시점에서 진행됨.


읽어줘서 꺼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