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컹거리는 느낌과 함께 몸이 한쪽으로 쏠린다.
잠에서 깨어나는 중인 나를 맞이한 건 텅 비어있는 지하철의 객실이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곧이어 내 앞의 문이 서서히 열린다.
'난 어디로 향하고 있었지? 그리고 지금 여긴 무슨 역인 거지?' 여러가지 의문이 들 때
여기서 내려야 할 것 같단 직감이 들었다.
허겁지겁 지하철에서 내린 나는 정면에 있는 승강장 안내문을 바라보았다.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들로만 가득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음을 깨달은 순간, 뒤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출입문이 닫깁니다. 뒤로 물러나시길 바랍니다."
지하철에 다시 타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눈에 보인 것은
닫기기 시작하는 출입문과 스크린도어 안쪽에 붙어있는 종이였다.
'지금이라도 지하철 안으로 몸을 던져 넣으면 어떻게든 탈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종이에 큼직하게 써져있는 빨간 글자를 읽고선 곧바로 포기하였다.
'지금 타면 죽어'
멀어가는 지하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혹시 종이의 내용을 무시하고서라도 타야 했던 건 아닐까.
일단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휴대폰도 지갑도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다.
지갑도 없이 대체 지하철은 어떻게 탄 거지? 무엇하나 올바르게 설명되는 것이 없다.
일단 나는 여기서 계속 머무를 수 없단 생각에 승강장의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엄청나게 넓은 지하상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 사람도 없다.
하지만 평범한 지하상가답게 다양한 매장이 줄지어 서있다.
맞은편엔 지하철마다 있을법한 보관함이 보인다. 난 자연스럽게 보관함 앞에 다가섰다.
보관함의 어떤 칸에 빨간 네임펜으로 자그맣게 무언가 써져있다.
'당신의 전화번호 마지막 네자리'
나는 본능적으로 보관함의 자물쇠에 내 전화번호 마지막 네 자리를 입력했다.
보관함을 열자 보관함 안에는 검은색 종이가 붙어있었다.
보관함 안쪽의 색깔이 같은 검은색이어서 하마터면 못 찾아낼 뻔했다.
"내 이름은 ***, 남성, 19**년 **월 **일 출생, 전화번호 010-****-****"
"난 여기서 빠져나간 뒤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곁으로 돌아가야할 의무가 있다."
"이 종이를 다시 보관함 안에 붙이고 잠가놓은 뒤 남자 장애인 화장실 변기 수조를 확인하라"
내 글씨체, 내 신상정보.... 하지만 두번째 줄은 이해가지 않는다. 나에게 가족이 있었다고?
수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다녔다.
지하상가가 너무 넓은 바람에 찾는 데 한참걸렸다.
변기 수조를 열자 비닐봉지 안에 담긴 열쇠 하나와 너덜너덜한 다이어리 한 권이 있다.
열쇠는 어디에 쓰는거지? 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다이어리를 펼쳤다.
다이어리의 제일 앞 페이지엔 사진이 끼워져있다. 사진을 보자 머리가 아파온다.
사진엔 세 명의 사람이 있다. 그래 이건... 아내와 딸 그리고 나
책을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누군가 써 내려간 글들이 보인다.
....
1. 중앙광장의 시계탑 기준 자정부터 아침 8시 사이엔 조명이 꺼지며 이 시간대엔 마네킹이 돌아다님.
ㄴ 매일 00시 10분경 지하철이 도착하고 다수의 마네킹이 내리는 모습 발견
ㄴ 오늘 밤 마네킹들처럼 위장한 뒤 지하철에 탑승해 보겠음.
ㄴ 아침 7시에 모든 마네킹들이 지하철에 다시 탑승하는 모습 발견.
ㄴ 아침에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였으나 지하철 안에 마네킹이 너무 빼곡히 타있음. 불가능해 보임.
2. 지하상가 중앙광장의 시계탑을 매일 확인할 것.
어떤 날에는 시계탑의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를 때가 있음.
ㄴ 잠깐 사이에 2~3시간이 갑자기 지나가있는 경우가 있음. 어떤 조건에서 발생하는지는 불명
3. 마네킹들에게 붙잡히지 말 것.
ㄴ 생각보다 느리기 때문에 전력질주한다면 따돌릴 수 있음.
ㄴ 자세히 보니 마네킹의 피부는 인간의 것과 유사한듯 함.
ㄴ 야구배트를 전력으로 휘둘렀으나 파괴하는 데는 실패함. 단 잠깐 동안 무력화 가능.
4. 조명이 꺼지면 마네킹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있을 것. 아래는 지금까지 확인된 비교적 안전한 장소임.
ㄴ 지하철 직원 사무실 안쪽 비품 보관창고
ㄴ 장애인 화장실 변기칸 <- 사용하지 말 것 최악의 경우 생존일지가 발각될 가능성 있음.
ㄴ 의류매장 탈의실
ㄴ 여행용 캐리어 판매점에 있는 대형 캐리어 <- 해봤는데 허리 나갈 수도 있음
ㄴ 가구점에 있는 침대의 매트릭스를 들어볼 것. 매트릭스를 사람이 들어갈 공간만큼 파냈음.
5. 이 생존일지를 읽은 뒤 다시 보관함 안에 다시 넣어둘 것.
ㄴ 이 책의 존재를 마네킹들에게 들켜선 안됨. 여기서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칙.
ㄴ 비닐봉지 열쇠는 거점으로 가지고 가고 책은 비닐봉지 안에 넣어서 변기 수조 안에 넣을 것.
ㄴ 거점의 스페어 키를 여기까지 들고와서 비닐봉지에 책과 함께 넣어둘 것.
ㄴ 만약 비닐봉지 안에서 열쇠를 발견하지 못하였다면, 화장실 정면으로 쭉 나아가다 보면
정면의 철물점에서 커터를 구할 수 있음, 커터로 열쇠를 대체할 것.
6. 매일 밤 마네킹들이 매장에 음식과 물건들을 다시 채워놓는 것으로 추측됨.
ㄴ 매장의 유리와 물품들을 박살 내고 다녀봤음. 며칠에 걸쳐 유리창과 물품들이 복구되었음.
ㄴ 지하상가의 일부 매장은 유리창이 복구되지 않는 것이 확인됨.
7. 여기서 죽음을 맞이할 경우 지하철에서 기억을 잃은 채로 다시 눈을 뜨게 됨.
ㄴ 여기서 죽음을 반복할 때마다 원래 삶의 기억도 점점 잃어가는 것으로 보임.
ㄴ 집 주소도 기억나지 않음.
ㄴ 아내의 얼굴도 딸의 얼굴도 기억에서 흐릿함.
ㄴ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절차를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됨.
8. 매일 아침 일어난 뒤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확인할 것.
'당신의 전화번호 마지막 네 자리' 문구가 지워져있는 경우가 간혹 발생함.
9. 지하상가를 샅샅이 수색하였으나,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은 보이지 않음.
10. 지하상가에서 활동하던 중 아무리 늦어도 아직 저녁 9시밖에 되지 않았을 텐데 갑작스레 모든 조명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함.
ㄴ 1번의 답글에 달려있는 현상 때문인 것 같음.
11. 지하철 물품보관함은 마네킹이 확인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책의 위치를 변경함.
기존 보관함에 책의 위치를 설명해놓은 검은색 종이를 붙여둠.
12. 내가 지하철에서 깨어나고 지하철에서 내리지 않거나 내린 뒤 곧바로 재탑승할 수도 있음.
불필요하게 죽임당하는 것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음.
ㄴ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지금 타면 죽어'라는 종이를 붙여두었으나 매일 아침 사라져있음.
ㄴ스크린도어 안쪽에 종이를 붙이자 종이가 사라지지 않음.
ㄴ이번에 내렸을 땐 그런 종이를 보지 못했음. 간혹 사라지는 경우 있음.
13. 적당한 쇠막대기를 사용하여 스크린도어를 열어내는데 성공하였음. 내일 철도를 따라서 걸어가 볼 예정.
ㄴ 지하철이 왔던 방향으로 걸어가 보겠음.
ㄴ 지하철이 향하던 방향으로 걸어가 보겠음.
ㄴ 지하철에 치여보겠음.
14. 장애인 화장실을 나와서 오른쪽으로 돈 뒤 쭉 나아가 10분 정도 걸어간 뒤, 전자담배 매장이
보일 때 오른쪽으로 꺾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관리되지 않는 휴대폰매장이 나옴.
ㄴ 이 곳을 거점으로 활용. 생존에 필요한 물자들을 그곳에 저장했음.
15. 거점 벽면에 네임팬으로 바를 정正이 써져 있을 것임. 내가 여기서 몇 번이나 죽었는지
확인하는 용도이니 거점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네임팬으로 1획을 더 그릴 것.
ㄴ 이 절차는 없는 것이 낫다고 판단됨, 수행하지 말길 바람.
ㄴ 벽면의 네임펜 자국을 어떻게든 다 지워냈음.
16. 거점에서 밤을 보내는 도중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니
이내 문 앞에서 사라진 듯함.
ㄴ거점 앞에서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림. 소리로 가늠하면 인간이 전력질주하는 속도보다 빠르거나 비슷함.
ㄴ간혹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도 들려옴. 실제로 이것을 본 적이 있는 경우 이 책에 특징을 자세히 적을 것.
17. 거점에 있는 시계를 기준으로 조명이 꺼지고 10시간이 지나서야 조명이 켜짐. 발생조건 불명.
ㄴ 최장 기록 갱신 12시간
ㄴ 최장 기록 갱신 3일 6시간
18. 마네킹들과 최대한 비슷한 가면을 만들어냈음. 오늘 밤 마네킹으로 위장한 채로 밤에 지하상가를
돌아다녀 보겠음.
ㄴ 가까이 가지 않는 한 눈치채지 못함. 숨소리를 들키지 않도록 유의할 것.
19. 지하상가 어딜 가든 탄내가 매우 심각하게 나고 있음. 숨을 못 쉴 정도임.
ㄴ 며칠 지나니까 탄 냄새가 나지 않음. 아마 이전의 내가 지하상가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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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물쇠를 따고 휴대폰 매장의 문을 열자 잡동사니들이 가득한 거점이 보인다.
한쪽 벽면엔 그을린 자국이 가득하다. 어째서 한쪽 벽면에만 그을린 자국이?.... 호기심에 그을린 자국을
만져보았으나 이내 이것은 그을린 자국이 아니란 것을 알게 돼버렸다.
그을린 자국이 아니라 죽은 횟수였던 거임? ㄷㄷ
혼자 다쓴건가..? - dc App
재밌게 읽었어요 쓰신 글 tts와 사진 영상 입혀서 2차창작 후 유튜브에 업로드해도 될까요? 설명란에 출처 기재하겠습니다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차창작 및 유튜브 업로드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그래서 마지막줄 뭔뜻임? 해석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