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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타박....헉...타박



늦은 밤, 경북 고령의 불당산에 있는 좁은 임도를,
나는 걷고 있다.


- "후우...후... 씹...새끼들.... 그새 날 버리고 가?....개같은 새끼들...."


이번달 초, 이 산에서 5세기 대가야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사찰 유적과 고대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의 불상들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은 즉시 공, 사, 학계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연합 시굴 • 발굴조사팀을 구성해 현장으로 파견하였고, 그 중에는 모 대학 연구실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나도 있었다.


마땅한 화장실이 없어 대충 먼 곳에 가서 볼일을 보고 온 사이 어느새 날이 저물어 버렸고, 현장에 와보니 조사팀은 이미 철수한 뒤였다.




- "하아...아무리...지잡대 석사...따리라도 그렇지....있는지 없는지 체크도 안하고...지들끼리 토껴?....개...좆같은 새끼들..."


이런 초겨울 야산에서 밤을 보내는 건 너무 위험했고, 설상가상으로 군사구역 안에 현장이 있어 들어올 때 핸드폰을 반납한 터라 외부에 연락할 수단도 없었다.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차량으로 들어오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린 좁은 산길을 따라 다시 걸어나가는 것 뿐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길을 계속 걸으며 이러다 얼어죽는거 아닌가 슬슬 걱정이 들던 때,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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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까이 가 보니, 웬 너와집 한 채가 있었다.


적어도 길바닥 위에서 잘 일은 없겠구나-, 퍽 안도하고 대문을 두드렸다.


- (쾅쾅쾅) "실례합니다. 안에 누구 계세요? 늦은 밤에 길을 잃었습니다!"


여러 번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어 실망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문이 열리고 두루마기를 걸친 늙은 남자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 "뉘기요?"


- "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아 저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요.
요 주변에 유적 조사하러 나왔다가 일행이랑 떨어졌는데 혹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 해서요. 언제 걸어서 나갈 수 있을지 몰라서...."


노인은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몇 번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흠.... 일단 들어오소. 이 날씨에 밖에 나다니면 객사하기 십상이니."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집이 그리 큰 집이 아니라 방이 없어서...여기서 묵어도 괜찮지요?"


- "어우, 무슨 말씀을요 어르신, 들여보내 주신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 "알겠소, 뭐 불편한 것 있으면 말하시오."


-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 이제 들어가 쉬세요."


노인이 나가고,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넓은 방이지만, 한켠에 가득 쌓인 소금 더미와 줄지어 늘어선 항아리 때문에 겨우 사람 한 명 누울 공간밖에 없었다.


게다가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비릿한 냄새와 축축한 황토 바닥의 촉감... 빈말로라도 손님을 재우기 알맞은 방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노숙 안 하는 것만도 감사해야지'라고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자는듯 마는듯 하다가 노인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 "그래도 객이 왔는데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술상을 좀 준비했는데, 자실라우?"


공짜로 술을 준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나, 바로 좋다고 대답했다.


술이 좀 들어가더니, 노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 "크하하하하하, 아니 그래서, 잠깐 똥 누고 온 사이에 댁을 버리고 가버렸다, 이말이오? 그것 참 천하의 호로새끼들이로구만, 큭큭큭"


- "누가 아니랍니까, 아니 그나저나 어르신. 어르신은 도대체 이 깊은 산속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사시는 겁니까?"


- "나요? 나는 뭐....불상 만드는 일 하면서 근근히 벌어먹고 있습니다."


- "불상이요? 마침 저도 불교미술학을 세부 전공으로 삼고 있는데...."


불교미술학이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노인이 눈을 번뜩이며 내 말을 끊었다.


- "불교미술이라, 이거 내가 오늘 기연을 얻었구만. 자고로 불상이라 함은....
.
.
.
.
.....그래서 내 말은 즉슨, 사람이 곧 부처다. 이 말이오. 이게 내가 평생 불상 빚으면서 깨달은 진리요."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쉴새없이 이어진 불상 지론 강연이 막을 내리는 듯 보였다.


- "으흠, 그러시군요."


슬슬 따분해하는 내 심정을 아는지,


- "주책떨어 미안하오, 오랜만에 사람을 보고 또 오늘 좋은 영감을 얻은 터라.... 아 이럴 게 아니라 내가 만든 불상을 한 번 보셔야겠소. 언젠가 한 번 전문가가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는데."


노인이 데려간 창고에는 내 허리께에 오는 크기의 불상들이 널려 있었다.


- "이게 제일 최근에 만든 불상인데 한번 보시구려"


- "흠...어르신께서는 점토로 불상을 만드시는군요? 형태가 꽤 특이하네요. 눈을 뜨고 입까지 벌린 형식은 흔하지 않은데, 게다가 모두 등을 굽히고 아래쪽을 바라보고......?"




나는 말을 멈추고 찬찬히 노인이 불상이라고 부른 것을 살펴보았다.


매우 낯선 형식이지만, 분명 어디선가 이런 불상을 본 적이 있다.


그래, 이건 오늘 발굴한 불상들과 거의 똑같다. 눈을 뜨고 입을 벌린 얼굴에 하나같이 등을 굽혀 아래쪽을 바라보는, 점토를 바른 소조 불상.


천천히 오늘의 기억들을 되돌아보았다.


군사구역 안에 위치한 발굴 현장.

불가마 하나 없는 노인의 집.

방에 있던 소금과 항아리.

비릿한 냄새.

좋은 영감.


'사람이 곧 부처다'


나는 그 의미를 깨달아버렸다.


그 순간 들리는 노인의 가늘게 떨리면서도 기쁜 듯한 목소리



"어떻소, 맘에 드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