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을 땐 수정이가 시체로 발견됐을 때였다.
내 친구 수정이. 떡볶이의 어묵만 골라 먹으며 떡은 죄다 나한테 넘겼던 수정이. 좋아하는 남자애가 생겼다고 그 애 취향을 알아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쓰면서 좋아하는 티는 안 내려고 했던 그 수정이.
자기 성적은 생각도 안 하고 대학 같이 가자고 약속했다가 그 약속 지키려고 독하게 공부했던 수정이. 결국 기어코 나랑 같은 대학에 들어가서 같이 대학 다니던 수정이.
그런 수정이가 시체로 발견됐을 때, 나는 이 세상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그저 수정이를 잊지 못한 나의 투정일 수 있었다. 이 땅에 실종되는 사람이 얼마고 죽는 사람이 얼만가. 수정이가 살해당한 게 아니라 초자연현상에 의해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울컥해서 그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따졌지만, 돌아오는 말은 간단했다.
‘심경은 이해하지만 너무 과민반응 하는 것 아니니? 초자연현상에 휘말렸잖니. 운이 좀 나쁜 거지.’
그랬다. 생각해보면 수정이에게만 유독 과민하게 반응할 건 아니었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내 언니는 국립수목원의 제물로 바쳐졌다고 하고, 큰오빠는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갔다가 초자연현상에 휘말려 혼자가 되어버렸다.
초중고 학급 친구들도 숫자가 매번 들쑥날쑥했다. 어느 날은 마흔여덟이었다가, 다음날 보니 마흔일곱이고, 방학 끝나니 스물까지 줄었다가 집단 전학으로 쉰하나까지 늘어나고.
중학교 때 만나서 대학교까지 이어진 수정이와의 관계가 이상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내가 수정이 얘기할 때마다 참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던 부모님과 작은오빠의 시선을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이 6년 넘게 인연을 잇다니, 결혼한 가족도 아니고 그게 말이 되는가.
사람이 원래 이렇게 쉽게 죽고 대체가 되는 건가. 생명의 가치가 이다지도 허무한 것인가. 나 또한 이 세상에서 아무런 역할도 없이 그저 살다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는 있지도 않은 듯 가버린다는 것인가. 그런 근본적인 의문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의문을 품은 뒤로 나는 몇 날 며칠을 피폐하게 살았다.
“다미야. 괜찮아?”
뺨에 차가운 감촉과 함께 나는 화들짝 놀랐다. 자판기에서 갓 뽑은 캔을 내게 건넨 사람은 대학교 동기인 곽 현우였다. 머리를 빡빡 민 게 이번에 APOF로 입대한다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안 괜찮은 건 네 머리 같은데.”
“왜, 너무 짧나?”
APOF(Anti-Supernatural Phenomenon Operation Force), 국경이 단절된 곳에서 군은 이제 건너갈 수도 없는 외국을 향하기보다 초자연현상 대응에 주력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부분의 군 편제가 APOF로 재편됐다고 배웠었다.
“근데 넌 언제 가게?”
“그러게. 나도 곧 가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수정이가 죽기 전까지만 해도 동반 입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군대도 같이 가서 고생도 같이하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정이가 죽고 생명의 가치에 회의를 느끼는 지금은 두려웠다.
내가 그곳에서 허무하게, 무의미하게, 어처구니없게 죽을까 무서웠다. 그렇게 죽어도 가족에겐 약간의 부조금과 부고 소식만 전달될 게 무서웠고, 가족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하며 내 죽음을 금방 잊어버릴 게 무서웠다.
여태 학교와 대학교에서 배운 초자연현상은 아직 인류가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현상,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현시대의 특이점, 인류의 미래 등으로 배웠는데, 정작 내 주변에 들이닥친 초자연현상은 내 주변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갉아 먹힌 부분은 더 많은, 생면부지의 타인으로 채워졌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그럼 나랑 같이 갈래?”
현우는 다 마신 캔을 휙 던져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나는 아직 뚜껑을 따지도 않았는데. 손이 너무 차갑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너랑?”
“지금 안 가면 너 혼자 엇복학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바에 지금 가는 게 나을 텐데.”
현우 말이 틀리진 않았다. 혼자 들어가서 혼자 나와 당분간 혼자 지내는 건 사양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사람과 있고 싶었다.
“동반 입대하자고?”
“꼭 그러자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현우는 뭘 또 아니라고 쑥스러워하며 없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 하자.”
“응?”
“동반 입대. 하자고.”
내친김에 결정이었다. 현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후회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마지막 시험을 보러 서둘러 떠났다. 그나저나 입대하려면 기껏 기른 머리를 잘라야 하는 게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수정이랑 함께 어디까지 기를 수 있는지 내기해서 기르고 있던 것이었다. 아직도 내 삶에 수정이의 흔적이 남은 게 서글펐다. 나는 이렇게 수정이를 잘 기억하는데, 정작 수정이네 가족은 수정이만 언급하면 귀찮다는 듯이 반응했다.
APOF 일산 훈련소에서 6주간 훈련을 수료하고 현우와 함께 자대에 배치됐다. 의무 복무 기간 2년. APOF는 전방, 후방 부대의 개념이 없이 주력, 비주력, 지원으로 나뉘고, 우리는 도시 인근에 있는 비주력 부대였다.
“이병! 정, 다, 미! 자대배치를 명! 받았습니다!”
“이병! 곽, 현, 우! 자대배치를 명! 받았습니다!”
“그래, 2년 동안 잘 지내보자. 정다미는 이쪽 생활관 쓰고, 곽현우는 저쪽 생활관 쓰면 된다. 각자 짐 풀고 선임들에게 자기소개하고 있으면 행정반에서 부를 거니까 그때 다시 오면 돼.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와 현우의 APOF 군 생활이 시작됐다. 훈련소 6주, 이병 6주, 일병 6개월, 상병 6개월, 병장 3개월 해서 도합 2년을 채우는 일. 그사이 내 선임, 동기, 후임은 얼마나 죽을까? 현우와 나는 끝까지 살아서 전역할 수 있을까?
맞선임이 이곳 무사 전역 비중은 절반이 넘어가니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그 절반이란 수치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어 나가는 세계라니. 한 사람이 태어나 자라고 성장해서 자녀를 낳기까지 걸리는 세월을 생각하면 죽는 숫자는 비정상적이었다.
“이병 정다미! 질문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자대 오고 두 번째 정신전력 시간이었다. 선임들은 죄다 퍼질러서 듣는 둥 마는 둥 하는데, 이때가 기회라 생각해서 손을 번쩍 들었다.
“용기가 가상해. 뭔데?”
우리 중 최고참인 이재윤 병장이 누운 채 고개만 돌려 날 보며 말했다. 지금껏 초자연현상에 두 번이나 투입되고도 멀쩡히 살아남은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 남은 기간은 무사 전역을 위해 간부들도 안 건드리는 사람이었다.
“훈련소부터 지금까지 제가 죽은 사람만 수십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죽는데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옵니다. 그 정도로 사람 수가 넘친다는 인상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는데 어찌 된 건지 혹시 아십니까?”
나는 말을 마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뭔 병신 같은 소리냐고 집합 당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얼핏 들었었다. 혹시 내가 물어선 안 될 걸 물은 걸까? 하지만 정작 방 안은 싸늘했다. 기가 막힐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다들 눈만 끔뻑이며 날 쳐다봤다.
마침내 입을 연 건 이재윤 병장이었다.
“야, 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사람이 왜 이렇게 많냐는데.”
이재윤 병장의 동기인 최성희 병장이 내 말을 요약했다. 이재윤 병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날 보며 말했다.
“야, 정다미.”
“이병! 정다미!”
“네 집 형제자매가 얼마나 되냐.”
“그, 제가 입대하기 전까지는 9명이었습니다!”
“성희야, 너넨 몇 명이냐?”
“나? 지금 좀 죽어서 6명일 걸? 더 낳았으면 7명, 8명이겠지.”
“우리 집이랑 비슷하네.”
이재윤은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마치 이걸로 답이 됐냐는 듯. 무슨 말인지는 대충 이해했다. 죽는 만큼 낳는다. 그런 얘기였다. 그것도 과할 정도로 많이.
“그거 고민하고 있을 바에 인지 단련이나 하는 게 어때? 네 동기 현우는 체력 만점이라더만.”
“넵, 맞습니다.”
“체력 만점은 됐으니까 자신 있는 인지 만점 받아봐. 초자연현상은 어차피 복불복이야.”
“넵! 알겠습니다!”
나의 질문은 그렇게 명확한 해소 없이 끝을 맺게 되었다. 이후 소대장님이나 중대장님과 면담하면서 이런 인구수에 관해 물어봤지만, 자기들도 모른다며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 외에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재윤 병장이 죽었다. 이재윤 병장이 머물던 생활관은 통째로 폐쇄, 격리됐고, 이재윤 병장과 같은 생활관을 쓰던 선임들은 전부 스트레스 임계치 초과로 명예 제대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모호했다. 내가 자대 온 이후로 이재윤 병장은 훈련 외에 따로 작전에 불린 적이 없었고, 그동안 스트레스 검사에서도 모두 안정을 기록했다고 했다.
에이스의 죽음, 전역을 앞둔 죽음, 비주력 부대에서의 죽음, 그 모든 게 내게 혼란과 공포로 다가왔고, 이재윤 병장의 장례와 추모, 그리고 생활관 격리가 끝난 후 돌아온 일상은 내게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미야, 너 인제 보니까 미련이 많은 편이구나?”
조기 진급으로 나보다 1개월 일찍 상병을 단 현우가 저녁 청소 시간에 날 따로 불러내더니 이렇게 말했다.
“미련 많은 거 뭐,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죽은 사람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둘은 있어야지. 하지만 넌 정도가 과해. 너만 기억해도 될 걸 왜 자꾸 남들도 기억하라고 그러는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야, 후임들한테도 소문 쫙 퍼졌어. 툭하면 죽은 사람 언급하는 정신병자 선임이 있다고.”
“…….”
현우는 씁쓸하다는 듯이 말하고는 날 쳐다봤다. 내 표정이 지금 어떤지 나도 잘 몰랐다. 현우의 말이 그저 충격으로 다가왔을 뿐이었다.
“나도 솔직히 사람 죽고 빈자리 빠르게 대체되고, 죽으면 곧바로 잊는 게 딱히 맞는 일이라고 생각은 안 해. 근데 그래서 뭐? 그렇게 망설이고 괴로워해봤자 죽음만 재촉할 뿐이야.”
“……응.”
“그래, 알면 좀 자제해라. 힘들면 나한테 말하고.”
현우는 내 어깨를 툭툭 쳐주고 그대로 자기 생활관으로 돌아갔다. 현우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나 혼자 고민하고 괴로워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내 정신력을 스스로 깎아 먹으면 다음에 투입될 초자연현상 진압 작전에서 죽을 게 분명했다.
죽기 싫다. 죽는 게 무섭다. 내 존재가, 내 가치가 너무나도 쉽게 사라지고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싫다. 그리고 현우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동기들은 아직 초자연현상 작전에 투입되지 않아 다들 살아있지만, 곧 2주 뒤에 투입이 예정돼 있다.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까? 그렇게 죽고 남은 빈자리는 얼마나 빠르게 채워질까. 그렇게 죽은 사람은 얼마나 빠르게 잊힐까.
수정이가 남긴 건 일깨움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너희의 역할은 간단하다. 기수 별로 3인 1조 짠 거 있지? 그 조로 채양초등학교 조사 작전을 진행한다. 너희 장비에 캠이랑 녹음 장치 다 달렸으니까 최대한 많은 걸 보고 많은 걸 알아내서 기록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방학 중에 채양초등학교가 초자연현상에 휩쓸렸다고 했다. 실종된 경비는 사망으로 추정. 안에 적대적 특이 개체가 다수 감지됐다고 했다.
본래라면 이런 조사 작전은 주력 부대가 담당하고 우리는 후처리로 나서야 하겠지만, 일단 채양초등학교가 우리 부대 인근에 위치했고 개학을 곧 앞두고 채양초등학교에 자녀를 둔 높으신 분이 재빠른 해결을 지시하는 바람에 우리가 나서게 된 것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 작전에 초자연현상처리반의 개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초자연현상처리반. 그 이름에 우리는 침묵을 깨고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WSO를 무너뜨리고 국경 단절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국제적 테러리스트 조직 아니던가. 그곳이 어째서 채양초등학교에 개입하려는 건지 도무지 몰랐다.
“상병 곽현우, 질문 있습니다.”
“허가한다.”
“혹시 맞닥뜨리게 되면 발포해도 됩니까?”
과연 차기 에이스로 거듭나는 현우다운 질문이었다. 중대장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우리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채양초등학교 내부는 채양초등학교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초자연적 왜곡이 있을지 모른다. 또한 초자연현상처리반이 조사관을 파견했을지, 대응제거적출 팀을 파견했을지 모를 일이다. 내부엔 적대적 특이 개체도 있다.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수단을 아끼지 마라. 발포는 당연히 허가된다.”
중대장님의 답변에 현우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는 자기 조원들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고갯짓을 했다.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초자연현상처리반 소속의 누군가를 사살하고 그 시체를 회수하는 데 성공한다면, 중대장으로서 대대장, 여단장, 사단장님께 건의해 포상 휴가와 포상금 지급을 건의할 생각이다.”
포상 휴가와 포상금 얘기에 다들 갑작스레 의욕이라도 솟았는지 다들 박수했다. 나도 분위기에 맞춰 따라 치긴 했지만, 저기서 중요한 건 포상 휴가나 포상금이 아니라 살기 위해 수단을 아끼지 말란 말인 것 같았다.
내가 정말로 초자연현상에 투입되는구나. 그게 정말로 실감이 났다. 여태 휘말리기만 했고 내 주변을 갉아먹고 앗아가기만 했던 초자연현상이었는데, 이젠 내가 직접 들어가고 가능하다면 죽일 수도 있다니.
그런데 어째서일까. 고양감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같은 조 선임인 김미영 상병도 들떠서 같이 포상 휴가받으면 호캉스 놀러 가자고 하고, 같은 조 후임인 조재인 일병도 그러자고 맞장구를 치는데, 나는 거기에 웃어주기만 할 뿐, 그러자고 답할 수가 없었다.
“자, 그럼 복명복창! 돌입 준비!”
“돌입 준비!”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계속해서 훈련받았으니 신병 빼면 다들 진입 위치에 서서 대기했다. 그래봤자 정문과 후문에 순서를 맞춰서 줄을 선 것밖에 더 되지 않지만.
다들 들떴던 표정은 어디로 가고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총기를 꽉 잡았다. 그래, 다들 죽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죽음만 바라보고 있던 나와 달리 그들은 이후의 삶을 더 바라봤던 것뿐이다. 고작 그 차이였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기에. 단지 그뿐이었다.
“1조 돌입!”
“돌입!”
1조가 들어갔다. 정문을 통과한다고 감쪽같이 사라지거나 그러지 않았다. 1조가 무사히 본관 건물까지 닿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지켜보던 중대장님이 다시 외쳤다.
“3조 돌입!”
“돌입!”
현우네 조가 들어갔다. 현우는 들어가기 직전 날 보고 찡끗했다. 현우네 조도 마찬가지로 본관 건물까지 닿아 무사히 들어갔다. 다음은 우리 조 차례였다.
“5조 돌입!”
“돌입!”
나와 김미영 상병, 조재인은 호흡을 맞춰서 같이 뛰었다. 정문을 넘어선다고 어떤 감각의 변화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부지 전체가 아니라 건물에만 초자연현상이 발생한 것 같았다.
“본관 입구 도착 완료.”
본관 입구에 도착하고 잠깐 숨을 고른 뒤, 김미영 상병이 문을 열었다. 곧바로 내가 들어가고, 그다음 조재인, 맨 뒤를 김미영 상병이 맡아 그대로 전진해 우리가 맡은 구역인 3층 우측 복도를 조사할 계획이었다.
“어?”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반대로 문을 열고 나온 꼴이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문은 닫혔고, 조재인과 김미영 상병은 정상적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문, 잠겼습니다.”
나는 곧바로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당겼는데, 문이 덜컥거리며 열리지 않았다. 안쪽에서 김미영 상병이 위를 보고 잠기지 않은 걸 확인했다. 나는 뒤를 돌아봤다. 곧 7조가 돌입할 차례였다.
7조가 보이지 않았다. 학교 외곽에 포진할 APOF 차량, 막사, 간부진이 보이지 않았다.
“김미영 상병님! 지금 제 말 들리십니까?”
뭔가 이상했다. 김미영 상병은 날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김미영 상병은 문이 열리지 않자 개머리판으로 문을 두드렸다. 발로 차고 어깨로 들이받고, 옆에 있던 조재인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김미영 상병님? 김미영 상병님! 제 말 들리십니까? 재인아! 내 말 들려?”
내 외침은 닿지 않았다. 나는 급하게 현 상황을 보고하려고 통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5조 정다미 일병! 문제가 생겼습니다! 채양초등학교 본관 건물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제 말이 안쪽에 닿지 않는 것…….”
보고하면서도 끝까지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대뜸 김미영 상병과 조재인이 뒤로 물러나더니, 김미영 상병이 총을 들어 이쪽을 겨눴다. 나는 통신을 중단하고 급하게 뛰어 엎드렸다.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떤 총격도, 충격도 없었다.
그제야 나는 다시 일어나 정문 쪽을 쳐다봤다. 김미영 상병의 총구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총을 쏜 것이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흠집도 나지 않았다. 총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김미영 상병님?”
김미영 상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재인은 사색이 됐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경악한 건 나였다.
“뒤! 뒤를 보십쇼! 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문을 부수려고 했다. 부숴서라도 그들을 구해내려고 했다. 안 되자 김미영 상병이 그랬던 것처럼 총을 쐈다. 하지만 총알은 유리창에 닿자 그대로 찌그러져 운동량을 잃고 힘없이 떨어졌다.
“뒤, 뒤를 보셔야 합니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닙니다! 도망치세요!”
나는 다시 문을 쾅쾅 두드리며 간절하게 외쳤다. 그들의 뒤, 어두운 본관 홀에서부터 기는 것에서 두 눈을 뗄 수 없었다. 김미영 상병이나 조재인이나 패닉에 빠진 듯 이쪽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뒤! 제발! 뒤! 죽기 싫으면 도망치라고! 제발!”
그때였다. 그것이 두 사람을 덮치기 직전, 두 사람의 시선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보다 살짝 위. 내 뒤. 그런 뒤 나와 잠깐 눈을 마주했다.
그게 채양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자, APOF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돌입한 8개 조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사람이 되었다.
현우가 죽었다.
김미영 상병도 죽었다.
조재인도 죽었다.
중대 절반이 죽었다.
무더기로 죽어버렸다.
내 안의 무엇인가가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아,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악!!!!!”
“환자분! 진정하세요! 여기 응급 상황입니다!”
머리를 쥐어뜯고 한참을 비명을 지르다가 목에 주사가 놓이는 순간, 그저 모든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게 됐다.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기분이었다. 타인의 죽음도, 내가 본 것도, 겪은 것도, 나의 삶도, 경험도, 가치도, 그 전부가…….
나는 스트레스 임계치 초과로 명예 제대했다. 복학은 엄두도 못 낸 채 2년을 넘게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도 하나같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익숙해지실 겁니다.’
대체 무엇에 익숙해진다는 것이지? 타인의 죽음? 김미영 상병과 조재인의 목을 비틀어 따버린 그것? 중대 절반이 죽었는데도 결국 아무렇지도 않게 그 빈자리를 충원하고 대체한 채 멀쩡하게 굴러가는 APOF? 무가치한 생명의 무게? 이런 것들을 익숙하게 여기는 세계?
나는 더더욱 알 수 없어졌다. 부모님은 나의 치료를 위해 11번째 자식을 국립수목원에 바쳐 각박나귀꽃 씨앗을 얻어왔지만, 무엇이 문제였는지 싹을 틔운 각박나귀꽃이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존엄해지셨다. APOF에서 부모님을 모셔갔다. 앞으로 부모님을 보려면 국립수목원으로 가야겠지만, 간들 나와 형제자매들을 알아볼 리 없겠지.
부모님이 사라지자 우리 가족은 그대로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가족이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우리 집은 금세 팔려 다른 가족이 살게 되었고, 내 위, 내 아래는 전부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나는 어딘가를 전전하다가 돈이 떨어져 마지막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어서 오세요, 혜령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처음 보는 사람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곳은 원장 하나밖에 없는 곳인데……. 순간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문패를 다시 살폈지만, 내가 평소에 오던 곳이 맞았다.
그보다 저 사람, 나를 혜령이라고 불렀지 않은가?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게 분명하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죄송하다고 말한 뒤 문고리를 잡고 나가려고 했다.
“가시게요? 그토록 원하던 답을 들을 기회를 이렇게 져버리시려고요? 돌아갈 곳도 없지 않나요.”
“…….”
“당신은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상식인입니다. 타인의 죽음에 슬퍼하고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려고 하는 자는 도저히 놓쳐선 안 될 인재죠.”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누구도 꺼낸 적 없는 말에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남자를 쳐다봤다. 젊은 남자였다. 나랑 나이도 얼마 차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권위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가 의사인 척 태연하게 앉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자리로는 그의 권위를 전부 담아내기엔 부족했다.
이질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난 이 이질감을 안다. 나의 트라우마, 나의 공포, 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인 것에서 느낀 이질감. 그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저는 초자연현상처리반에서 왔습니다. 고난부활승천 3팀 인도자 김경석이라고 해요.”
그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길 잃은 어린 양을 구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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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후원을 받아버려서 후원 액수만큼 글자수 맞춰 쓴 외전임.
나폴리탄이나 규칙서는 확실히 아니라 기타 괴담에 올렸는데, 나로서도 내가 의도한 기괴함과 찝찝한 의문점이 잘 전달되었을지, 아니면 그도 아닌 그냥 갤 성격 안 맞는 창작물이 되었는지는 확신이 안 섬.
읽고 영 아니다 싶으면 잘라도 됨.
읽어줘서 꺼마워
고부승이 대충 무슨집단인진 알겠네 - dc App
'혜령'에서 혜가 무슨한자인지 알수있을까?
惠
초자연현상 두번 경험한게 에이스 중 에이스인건 너무 생존률 낮은거 아닌가
너무 낮은 거 맞고 또 그만큼 사람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은 거 맞음
+)연결 담당자 중에서 에이스란 거지 구처복 구출조나 대제적으로 따지면 명함도 못 내밀지. 애초에 연결 담당자는 초자연현상을 겪을 일이 없으니까
진짜 저긴 ㅈㄴ 마경이노ㅋㅋ
십장생 글에서 윗대가리는 확실히 맛이 가 있구나 싶었는데 위에서 아래까지 죄다 맛이 가있었구나
정부를 말하는 거임 처리반을 말하는 거임ㅋㅋ
고난부활승천팀 너무 궁금했다... 고맙다.. - dc App
세계관 배제하고 봐도 재밌다 이건
캬...
정다미가 살아남은 건 눈을 직접 직시해서임? 아님 단순히 운인 건가 여튼 감상 잘했네 엄청 재밌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