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 왜 있을까. 분명 무슨 시험을 보러 왔던 거 같은데...

무슨 시험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 야 오랜만이다! 너도 시험보러 왔어?"


어딘지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기억을 늪에서 끌어올린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기억을 인양하기엔 줄이 너무 약했던 모양이다.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더라?"

"에이, 나 태용이야. 한태용. 고등학교 때 너 옆자리였다고. 너도 자격증 시험 보러 온거야?"


자격증... 이라.. 아마, 비슷했던 거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태용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힐끗 내 손을 보더니 같은 방이라고 좋아한다.


시험을 보는데 같은 방인게 별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단순히 같은 공간에서 시험을 보는거에 만족했을 수도.

잘 모르겠다.


손을 슬쩍 보니, 손에는 수험표가 들려있었다. 몇층, 몇호실, 수험번호.

딱 3개만 단출하게 적힌 수험표.

보통 무슨 시험인지도 적혀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였다. 일단 시험을 봐보면 뭐든 더 기억나겠지.


시험 시간에 늦겠다고 보채는 한태용을 따라 시험실로 들어갔다.

늦게 도착한 편이었는지, 자리는 두자리를 제외하고 꽉 차있었다.


자리에 앉고 20초쯔음 지났을까. 감독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시험지를 들고 들어왔다.


"시험시 유의사항은 전부 시험지 앞쪽에 적혀있으니 읽고 주의해주시면 됩니다. 잘못 인쇄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주시고 시험 시작 전까지 앞쪽 유의 사항을 읽어주세요."


시험지를 받고 안에 내부를 쓱 훑으며 문제를 보았다. 평범한 시험이라기엔 뭔가 독특한 문항들이 보인다.

전부 확인하고 시험지 앞쪽을 펼치니, 빼곡하게 유의사항이 적혀있다.



1. 귀하가 해당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음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해당 시험은 상식적으로 인지하고 계시는 형태와 다른 형태의 시험이며, 해당 유의사항을 어겼을 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완전한 보상이 지급되기 어렵다는 점,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지만, 해당 유의사항을 완전히 지켰을 경우, 귀하께서는 어떠한 피해도 없이 멀쩡히 돌아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시험을 완전히 마치신 후,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저희의 번호로 전화 주시면 적절한 조치를 취해드리겠습니다.



2.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마십시오. 시험이 끝날때까지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감독관을 호출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합니다. 해당 시험은 90분, 90문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간이 모자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또한, 별도의 마킹또한 필요하지 않으니 자리에 비치되어있는 볼펜을 사용하셔서 시험지에 체크를 하신 후, 시험지와 볼펜 모두 자리에 두고 나오시면 됩니다.



3. 해당 시험은 특이하게도, 시험지에 마킹을 마치는 즉시 시험지 뒷면에 결과가 표기됩니다. 따라서 시험지를 들고 가셔서 가채점을 하실 필요 역시 없습니다. 당신이 인간이라면, 아래 유의 사항만 명심하여 주시면 해당 시험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성실히 따라주십시오. 유의사항에 잘 따라주셨다면, '귀 객체는 인간의 자격이 있음을 증명함.' 이라는 문장이 시험지 뒷장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4. 해당 시험에서 여러분이 고민할 여지는 없습니다. 문제를 읽고, 선지를 확인한 즉시 본인의 판단이 가는대로 정답을 체크해주시면 됩니다. 오히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우, 사고가 뒤틀려 특이한 정답을 체크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절대 5초이상 고민하지 마시고, 읽는 즉시 체크해주시기 바랍니다.



5. 귀하께서 응시하고 있는 시험장에서 인간은 단 한 명뿐입니다. 이는 절대적이며, 따라서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들켜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되기를 원하며, 가장 빠른 방법은 인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 좋은 경험이 아니니, 절대 인간이라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명심하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시험장에 인간이 두 명이상 배치된 적은 없습니다.



6. 단, 귀하께서 시험장에 입장하시기 전 귀하에게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경우, 당신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자는 인간이니, 잘 기억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7. 귀하께서 무사히 시험을 마치고, 인간으로서 저희에게 연락을 주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귀하께서 인간이신 한, 저희는 언제나 귀하에게 호의적입니다. 반드시 시험 종료 후 저희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해당 수칙이 어렵지 않으니, 무사히 나오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부디 힘내십시오.





시험치고 굉장히 괴상하다 싶은 문항들을 전부 체크하고, 시험지 뒷면을 펼쳤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와, 문장 하나가 적혀있다.


'귀 객체의 선택에 맡깁니다.'


앞자리에, 한태용이 앉아있다.





시험이 끝났다.





"네, 이상대책본부입니다."

"시험을 겪고나서 이 번호로 전화드리면 된다고 해서요."

"아, 혹시 계신 위치랑 성함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즉시 대응팀 보내겠습니다."

"위치는.. 00동 00구이고요. 이름은 한태용입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곧 출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