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집에서 평화로이 책을 읽고 있을 때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컵을 밀어서 깨뜨렸다고 하자


갑자기 깨지는 소리에 당신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볼 것이다

창문이 열린 것을 확인한 당신은 빗자루로 깨진 컵을 치운다


짜증은 나지만 공포에 질리지 않는다


그런데 살짝만 상황을 바꿔보면 어떨까

아무도 없는 집,

며칠 전 눈수술을 한 당신은 양쪽 눈에 붕대를 꽁꽁 싸맨 채 소파에 누워 음악을 듣고 있다

갑자기 컵이 쨍그랑, 하고 깨진다

집엔 아무도 없다

보이는 것도 없다

컵은 저절로 깨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범인은 바람일 뿐이지만, 방금 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까.




여기서 오는 공포가 미지에 대한 공포이며

나폴리탄 괴담의 핵심이다.

나폴리탄 괴담은 괴상함과 애매모호함을 통해 미지에 대한 공포를 이끌어내는 장르다
이는 규칙 괴담 형식 등으로 발전한 지금도 갖추어야 할 근간이다
상상의 여지를 마련하여 그곳에서 무서운 상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
이것이 나폴리탄 괴담이다


그러나, 공포를 위해 마련된 상상의 여지는 이따금 흥미와 호기심에 자리를 빼앗기곤 한다
백 룸이 그 예로, 최초의 담백한 공포를 잃은 백 룸은 매력을 잃고 scp의 아류처럼 되었다

나폴리탄이 장르화가 되면서, 우리는 그 절차를 밟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나폴리탄의 근간, 미지에 대한 공포는 어떻게 전달하는가

공포는 여러겹의 베일에 쌓여 있으며

그 베일을 딱 한 장만 벗겨냈을 때 가장 무섭다

깨진 컵 이야기처럼, 공포의 대상이 존재하는것을 은유하고 그에 대한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 나폴리탄 괴담의 기본 작법이다

인기를 얻은 몇몇 작품은 세계관 확장을 통해 그 명맥을 잇기도 하는데


이 때 가장 주의해야한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은 이미 베일을 벗었으므로 더 벗겨내서는 안된다
공포는 익숙함이되고 설정은 장난감이 되어 작품은 본질을 잃고 설정놀이가 된다

따라서 공포의 주체는 언제나 모호하여야 한다

그것이 존재함과 그로 인한 위협을 밝혔다면, 이제 숨길 차례다

아무 것도 알려주지 말고, 아무 것도 알 수 없음을 두려워하게 하라

공포의 대상이 끼치는 불가해한 위협과 그로 인한 파괴를 직,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주체에게 대항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심어주도록 완곡히 묘사하여야 한다

직설법은 작품의 큰 틀을 설정할 때에만 독자를 위해 사용해라

직설법은 상상의 여지를 닫기 때문이다

상상의 도화지에 테두리를 그리듯 큰 그림을 그릴 때 만 써야 한다



주체에 대한 구체적 묘사, 특히 대항하는 장면 등을 묘사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하는데


구체적 묘사는 상상의 여지를 닫고
대항할 수 있는 안도감은 위기감을 감소시켜
자칫 작품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 여럿이 존재한다면

작품 간 작은 공통점을 엮어 상상력의 틈새를 확장하라


그러한 엮음에서 세계는 커지고 공포는 확장되고 독자는 몰입한다


미지에 대한 공포를 지닌 채 확장하는 것이 세계관을 지닌 작품이 나폴리탄 괴담으로서 본질을 지닌 채 풍성해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