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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 다다르기 위해서 달린다.

좁고 각진 복도는 벽의 낮은 채도는 나를 짓누르고, 집어삼킬 것만 같다.


앞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다.

나아가도 나아가도, 결국에는 똑같은 사진이 내게 반복해 다가올 뿐이다.


아직 전주 구간이다.

분위기가 고조되나, 후의 절정을 위해 벽은 아직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전주가 끝나간다.

전주가 끝이 난 뒤에는 진정한 곡이 시작할 것이다. 나도, 무언가 있음을 예상한다.


...

전조조차 없이 내 앞에 등장한 것은, 스텍 업라이트 피아노 한 대.

전주 후 곡의 시작은, 내 몫인 것이다.


멀리 멈춰선다. 그리고 그걸 쳐다본다.

오묘한 공포는 여전했으나, 어쩐지 연주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하다.


무거운 기운이 나를 누르고, 나는 그대로 딱딱한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쳐다본다. 건반엔 먼지조차 올라앉지 않았다.


...

흰색은 불안하다. 너무 하얗기에, 모든 빛을 반사하기에 볼수록 불안하다.

검은색은 두렵다. 다 가려버리기에, 모든 빛을 흡수하기에 볼수록 불안하다.


흰 건반, 검은 건반. 번갈아 가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두 색 모두 너무 깨끗하다. 안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그 공포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두 손이 떨린다. 그러나 서서히 올라온다. 내 팔 근육은 이미 스스로 수축하고 있었다.

머리 속엔, 건반 속에 들어간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내 본능이 내리칠 준비를 할 뿐이었다.


...!

울림은 피아노 내부에서 그 외부로, 내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마침내 내 가슴 속까지, 온몸을 파고들었다.

진동은 있었다. 진동만 있었다. 그 진동이 음을 내지는 않는다.


머플러 페달을 내리밟으면, 피아노 내부에서는 펠트천이 내려와 해머와 현이 부딪히는 것을 대폭 줄인다.

이번에는 마치, 펠트천 대신 누군가이불을 넣어놓은것 같은 느낌이다. 둑. 하고 살포시, 묵직한 무언가 충격이 흡수하는 느낌이다.


...

의자에서, 홱 일어난다. 그 기운은 나를 덮치고, 감싸고, 질식시킬 것이다.

물러선다. 뒷걸음은 치지 않는다. 그 대신 뒤로 돌아 그냥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다시, 어두운 벽이다.

어두운 벽에서, 흉측한 얼굴이 튀어나올 것 같다. 아니, 이제 저 벽 또한 쳐다볼 수 없을 것 같다.


피아노를 지나쳐 가는 길, 복도 끝 방향으로 돈다. 다시 질주한다.

우리의 교향곡은 절정을 향해 달려만 간다. 끝을 향해, 질주한다.


...














교향곡은 관현악기들의 조화로운 소리가 다지고, 쌓아올린다.

주인공은 그곳에 없다, 조연만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무대에 없다.

주인공은 그 너머, 좌석들에 수없이 많이 앉아있다. 어쨌거나 곡을 듣고 느끼는 건 관객일 테니까.



내 연주에게는 주인공이 없었다. 주인공 없이 연주를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제 걱정할 필요도 없다.

연주도 못 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텅 빈 연주를 직접 막게 되었다.



그러나 네게는, 여전히 훌륭한 연주다. 그렇지?



내 등에 꽂히는 해머들은 나를 진동시킬 것이고

나의 진동은 곧 피아노 전체를 울릴 것이다.

그리고 결국, 연주자인 너에게 전해지겠지.


맘껏 연주하거라.

맘껏 울부짖거라.


나를 두드리고, 부수고, 아무것도 없음 속에 고립시켜라.

뼈가 으스러지고, 몸이 굽어지고, 피가 온몸을 적셔도, 네 연주를 끝까지 들어주마.


들어주겠다. 끝까지.






둑, 둑둑, 둑...

두둑, 드둑, 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