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잔뜩 낀 마을에 도착한 나는 익명의 발신자가 보낸 편지에 쓰여져 있는 주소로 향했다. 분명한 낮인데도 아무도 없는 거리에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어 걸음을 빨리 했다.

어린 나를 할머니에게 맡겨 두고 떠난 엄마의 집은 아담했다.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날 버리고 온 곳이 고작 이따위 유령마을이냐고 따져 볼까.

아니, 왜 날 버렸는지부터 먼저 물어봐야겠다. 나는 그게 제일 궁금했었으니까.

그렇게 엄마를 만나면 할 말을 생각하며 안방으로 향한 내 눈에 피 묻은 레고 상자가 들어왔다.

레고 상자 위에 쪽지가 한 장 놓여져 있는 것을 발견한 나는 그것을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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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엄마가 안 와서 많이 힘들었지?

네가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그런데 OO아, 엄마는 널 버린 게 아니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OO이를 엄마가 왜 버리겠니...

기억나? 할머니 집에서 열 밤만 자면 엄마가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었잖아.

엄마는 그 때 위자료로 받은 돈으로 작은 동네에 아담한 집을 하나 샀어. 가구도 옮기고, 우리 OO이 좋아하는 레고 세트도 사서 집에 들여다 놓고.

군인 레고 세트 보면서 눈 반짝반짝 하던 게 얼마나 갖고 싶은 티가 났는지 몰랐지?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널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온 동네에 안개가 짙게 깔렸어.

이전까지는 길어야 차로 2~30분이면 고속도로가 나오는데 3시간이 넘도록 안개 속을 헤매기만 할 뿐이었어. 엄마가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이제부터 우리 OO이한테 필요한 것만 이야기할게.

안개 낀 마을로 들어오게 되면 갑자기 왔던 길이 사라져서 당황했을 거야. 그리고 대낮인데도 거리에 아무도 없어서 무서울 거고.

마을에 안개가 끼고 밤이 되자 갑자기 사람들이 미쳐 버렸단다. 서로 두들겨 패고 칼로 몸을 가르고 찌르고 서로를 먹기도 했어. 절대 밤에 돌아다니지 마.

그리고 불 꺼진 집은 문에 귀를 가까이 대고 안에서 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봐. 만약 코 고는 소리가 들리면 들어가지 마. 그것들은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움직이지만, 문을 여는 순간 눈을 뜰 테니까.

그리고 문단속 잘하고 밤에 소리내지도 말고 불도 켜놓지 마. 그것들도 눈과 귀가 있다는 사실은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


여기까지 읽었으면 짐작했겠지만 안개가 낀 이후로는 전파가 안 잡혀서 휴대폰도 안 되고, 인터넷도 전부 끊겼어.

라디오에서는 여자 웃음소리가 막 들리고, 텔레비전을 켜면 웬 낡은 우물만 나온단다. 엄마는 겁이 나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절대 안 틀어.

혹시 라디오, 텔레비전이 보인다면 얼른 밖으로 던져버리렴.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켜지거든. 엄마는 여기 살면서 일주일에 몇 번씩 갖다놓지도 않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버리는 게 일이었어.


우리 OO이, 고기 좋아하지? 삼겹살 구워줬을 때 그 많은 걸 혼자서 다 먹는 걸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단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고기 먹으면 안 돼. 아마 밤만 되면 미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아마 고기 먹고 저렇게 된 것 같거든. 엄마가 산 적도 없는 고기가 부엌에 있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우리 OO이는 모를 거야. 고기는 절대 먹지 마.

엄마는 라면과 쌀만 먹고 살았으니 그건 괜찮을 거야. 라면 13개하고 쌀 한 봉지 넣어놨으니 그거 먹어.

다 떨어지면 정문 열고 나가서 복바든 슈퍼마켓 찾아.

슈퍼마켓 들어갈 때 절대 두 발로 들어가면 안 돼. 바짝 엎드려서 네 발로 기듯이 들어가야 해.
그렇게 들어가면 라면과 쌀 있을 거야. 그거 가지고 오면 돼.

불편하겠지만 음식 들고 나갈 때도 네 발로 기어서 나가야 돼. 절대 슈퍼마켓에서 두 발로 서면 안 돼.


창문에 쳐진 커튼은 걷지 마. 마을이 이 꼴이 되고 나서 갑자기 커다란 나무가 자라났어. 나무에 눈 같은 열매들이 맺혔는데 소름이 돋아서 가려놨으니 절대 걷지 마.

갈 일은 없겠지만 나무에 다가가지 마. 엄마처럼 고기 안 먹어서 멀쩡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무한테 다가갔다가...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합쳐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됐으니 절대 나무에 가까이 다가가지 마.


정문이 아니라 뒷문을 열고 도보로 30분 정도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낡고 으스스한 집이 아니라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교회가 나와.

그 교회에 사는 흰 옷 입은 신도들은 낮에도 멀쩡히 돌아다녀. 절대 속지 마. 엄마가 멀리서 봤는데, 이목구비가 분명히 없었어.

그리고 그것들에게 들키면 안 돼. 엄마 말고도 미치지 않은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교회 사람들에게 들키고 난 뒤에 모조리 교회로 끌려갔어. 신도들에게 절대 들키지 마. 그 근처 지나갈 일 있으면 숨어 다녀.


여기서 탈출하는 방법은 엄마도 모르겠어. 그래도, 희망은 있어. 분명히 탈출할 수 있어. 일주일 전에, 나처럼 고기 안 먹고 제정신을 유지하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분명히 안개를 뚫고 탈출하는 걸 먼발치에서 봤거든.

탈출하는 방법만 알아낸다면 분명히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아마 OO이가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그것들이 날 미끼삼아 성공적으로 유인해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마음은 많이 아프지만, 우리 OO이가 엄마를 너무너무 미워해서 만나기 싫어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우리 OO이는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몸이 말을 안 듣네. 엄마는 이 지옥에서 탈출해 OO이 만날 생각만 하면서 견뎠는데 이제 정말 한계야.

우리 OO이 마지막으로 꼭 한 번 안아 보고 싶었는데...

OO아, 엄마가 많이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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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모든 진실을 알아차린 나는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엄마는 날 버린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