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는구나.


발을 딛고 있는 곳은 모두가 떠나버린 바닷가, 찬란했던 백사장,


이젠 후회도, 상념도, 분노도, 다 비워낸 채


가장 큰 거울에는 얼굴이 비치는구나


만삭의 배를 안고, 수평선 너머를 보며 언젠가 모든 걸 끝내려고 다짐했었지


그때 나를 막아선 건 내 배에서 울려퍼지는 뱃고동 소리


곧 출항을 알리는 그 규칙적인 고동 소리가 나를 다시 선장으로 만들었단다.




그러니 아들아, 너무 슬퍼하지 마려무나.


이제 내가 출항하였으니, 앞으로 열네 해는 잠잠할 터,


때때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영혼이 끊어진다 해도


섞여오는 내 울음 소리가 그 상처를 어루만져 줄 테니


그 힘차게 뛰는 고동 소리를 잃지 말거라


분노도, 상념도, 후회도 다 비워낸 채


눈이, 나에게로, 다가오는구나.


-200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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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열네 줄의 편지를 받은 건 꼭 하루하고도 반나절 뒤였다. 여기는 바닷가도 아닌데, 짠 내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