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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성 대리님~ 여기서 뭐해요? 점심시간인데 밥먹으러 가야죠!"



오예림 대리가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 네, 금방 나갈게요. 잠시만요."



다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에 털어넣고, 종이컵을 꽉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탕비실 밖으로 나와보니, 직원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 이대리, 거기있었나? 점심먹으러 가야지."



팀장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오늘은 이대리 먹고 싶은데로 가자고, 뭐 좋아하나?"



"아... 특별히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습니다."



"팀장님, 오늘 막 전입 온 분한테 점심 메뉴 정하라고 그러는 거 사내 괴롭힘이에요."



"어 그런가? 하하하, 그러면 오대리가 MZ의 마음으로 한번 추천해줘봐."



"아~ 완전 꼰대. 그러다 규성대리님 도망가요."



팀장과 오예림 대리가 농담따먹기를 하자,

주변에서 다른 팀원들이 '와하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살짝 쓴 웃음을 짓고 있는 내 귓가에,

갑자기 팀장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과장, 최과장은 오늘도 도시락 먹나?"



"예. 팀장님,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쯧 그래? 알겠어."



찬바람이 쌩쌩 부는 태도로 돌아선 팀장이,

'자자 얼른 가자구.'라고 말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최과장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신경이 쓰였다.







"자, 비록 점심시간이긴 하지만, 새 식구가 왔으니까 간단하게 맥주 한 잔씩 합시다."



"와~ 좋아요!"



"사장님~ 여기 맥주 두 병하고 잔 좀 주세요!"



오는길에 곽민구 차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큰 목소리로 직원을 불렀다.



"규성 씨 술은 좀 하나?"



직원이 가져다준 맥주를 따라주면서, 곽차장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네, 잘 마시는 건 아닌데, 마시기는 힙니다."



"오, 얼마나 마시는데? 소주로 몇 병?"



"한 한 병에서 한 병 반 정도 마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실제로는 두 병에서 세 병정도는 마시겠네."



첫 만남에서 으레 주고 받는 템플릿 같은 만담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즐거운지 웃음을 터뜨렸다.



"자, 그럼 규성 대리의 합류를 위하여!"



"위하여!"



팀장의 선창에 다같이 잔을 부딪혔다.




자리에 세팅된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그럼 얼른들 먹지.'라는 팀장의 말과 함께 식사가 시작되었다.



"대리님, 그래서 아침에 예림이한테 인수인계는 잘 받았어요?"



반찬을 뒤적거리면서, 이주연 과장이라는 여과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 네네, 일단 여러 가지로 말씀 들었는데...배워야 될 게 많더라고요."



"하다보면 금방 익숙해질 거에요.

그리고 업무는 제가 사수니까, 이따가 오후에 제가 알려드릴거에요."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규성대리님, 그러고보니까 아까 최과장님하고 탕비실에서 얘기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무슨 얘기 나누셨어요?"



오예림 대리의 말에 순간, 왁자지껄하던 식탁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어...별다른 얘기는 안 했습니다."



갑자기 이쪽으로 집중된 시선에 당황한 내가, 나도 모르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치찌개의 열기 때문인가,

오른쪽 관자놀이를 타고 땀이 삐질삐질 한 방울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그래요? 흠~"



의미심장하게 이 쪽을 쳐다보는 오예림의 눈빛에,

왠지 한 두마디를 덧붙여야 될 것 같아 난 입을 열었다.



"근데 좀 뭐랄까, 성격이 밝으시거나 그런 편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쓰며, 답안지에 꾹꾹 눌러쓰듯이 나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불러서는 음...적응은 잘 되냐 뭐 그런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래요? 그거 말고 뭐 이상한 말씀은 없으셨구요?"



"네, 별다른 말은..."



위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았지만, 최대한 태연하게 말을 받기 위해 애썼다.



"흠흠, 규성대리도 알아둬, 최과장이 작년에 아이를 잃었거든."



"네?!"



팀장이 끼어들어 뜻 밖의 말을 꺼내자, 나는 순간 당황하여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래, 이 근처 XX초등학교에 다니던 애였는데,

어느날 사고를 당해서 아이를 먼저 보냈지. 그 다음부터 성격이 이상해져버렸어."



"그런 일이..."



"팀원들이 다같이 신경써서 잘 해보려고는 했는데, 그 뒤로 마음을 닫았는지 영 나아지질 않아...

팀장이 돼서 이런말 하면 부끄럽지만, 포기야 포기."



"...그러니까, 규칙은 잘 지키라고 있는 건데."



"에?"



곽민구 차장이 중얼거리는 말이 들려와서,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고개가 홱 돌아갔다.



순간 내 시선에 당황한 곽차장이 손사레를 치며, '혼잣말이야. 혼잣말.'이라고 변명하듯 말했다.



"우리 이러지 말고 다른 얘기해요.

규성대리님 여자친구는 있어요?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이주연 과장이 슬쩍 화제를 돌리자, 다시 분위기가 밝아졌다.



"오~ 과장님 설마 노리시는 거에요?"



"하긴 있었어도 지역본부 내려오면 원래 다 헤어지고 그러는 거지~"



시덥지 않은 대화가 이어지며, 점심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다같이 사무실로 돌아와 우르르 자리로 돌아가며,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대리님, 이따가 업무 인수인계 해줄테니까, 1시쯤 내 자리로 오세요."



"아, 알겠습니다."



이과장의 말에 대답한 나는, 양치를 하기 위해 치약과 칫솔을 챙겨 화장실로 걸어갔다.



중간에 아직 비어있는 최과장의 자리를 스쳐지나가며,

자리에 난잡하게 펼쳐져 있는 A4 용지에 쓰여진 글들을 슬쩍 눈에 담았다.






한쪽 귀퉁이에 금이 간 거울을 바라보며 이를 닦기 시작한 나는, 조금 전에 최과장의 책상 위에서 읽은 글을 떠올려 보았다.



'지희의 죽음은 우연이 아니다.

이 XX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다 모종의 관계가 엮여있는 듯 하다.

특히 누군가가 말하는 거짓과 진실...'



미처 읽지 못 한 나머지 부분을 확인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나중에 어떻게 해서든 최과장과 한 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봐야겠다.



생각에 잠겨 천천히 칫솔을 움직이는 내 머릿속에, 아까 점심을 먹다가 가장 신경쓰였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규칙은 잘 지키라고 있는 건데.'라고 발언한 곽차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던 몇몇 팀원들의 얼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