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억이 뇌리에 스치듯 꽂힌다. 537. 그는 이유도 모른 채로 조급해진다. 의식에 남은 강렬한 기억이다. 537.
이내 자신에게 그럴 여유가 없음을 깨닫는다. 남자는 제가 서 있던 견고한 바닥이 흔들리고 있음을 인지한다. 불안정한 발판에 몸이 휘청인다. 비틀거리지 않으려 애쓰다가 가까스로 주변에 있던 기물을 붙잡는다. 튼튼한 철제 캐비넷이다. 그것이 세워진 곳은 좁은 사무실이다.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퀴퀴하고 좁은 응달의 사무실. 눈에 익은 곳이지만 동시에 익숙하지는 않은 장소다.
남자는 이곳이 불편하다.
좁은 사무실엔 대여섯 명의 사람이 서 있다. 남자는 자신이 저들을 아는지 궁금하지만 희뿌연 안개 같은 기억은 인물을 분별해내지 못한다. 그것을 방증하듯 특별히 눈에 띄는 외모의 사람은 없다. 어디선가, 어쩌면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면 의식조차 못했을 만큼 무던한 인상들이다. 남자 또한 그렇다. 저 자신이 저 무리에 섞여 들어갔을 때 눈에 띄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잠깐 생각에 잠겨 있으면 또다시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서랍 위에 비스듬하게 올려놨던 물건이 쏟아진다. 천장에서 돌가루가 부스스 쏟아진다. 무표정했던 얼굴들에 감정이 배어들기 시작한다. 공포는 전염병처럼 빠르게 확산한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자 또 다른 누군가는 우왕좌왕하며 공간을 헤집는다. 다른 한 사람은 책상 밑에 고개를 묻고 숨는다. 얼마지 않아 고개를 파묻은 무릎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남자 또한 익숙지 않은 상황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급하게 고개를 돌리다 그제야 복도로 나가는 문을 발견한다. 잠겨있는 문 앞에는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미소를 띠고 한 명 서 있다. 기이한 미소를 띠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상황에서조차 덤덤한 그 모습은 괴이하기까지 하다.
혼란 속에서도 남자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남자는 이 사람을 알고 있다.
공포에 찬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직전 여자는 입을 연다.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곧이어 사람들은 여자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한다. 혼란은 금방 정리된다. 줄을 선 사람들의 사이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히 들려오지만, 그런데도 질서는 깨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렬로 서자 여자는 문을 열고 한 사람씩 복도로 내어 보낸다. 아니, 문 뒤의 공간이 복도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문 뒤의 공간은 조금의 빛도 허락하지 않는 듯 새카맣다. 사무실의 빛은 문 뒤의 공간에는 닿지 않는다. 그 뒤는 아득한 심연이다.
줄에 가장 마지막에 서 있던 남자의 차례가 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다. 남자는 한 발자국 다가가 여자의 앞에 선다. 다른 이들에게 그러했듯 여자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좀처럼 납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자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남자는 기다린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여자 쪽을 힐끗 바라본다. 여자는 야릇한 미소를 띠고는 천천히 입을 연다.
"당신은 나갈 수 없습니다."
남자는 당황한다. 왜?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무어라 따지려 들던 남자는 문득 떠오른 것을 말한다. 537.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아요.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개의치 않는 듯 여자는 말을 잇는다. 당신은 나갈 수 없습니다.
다음 순간, 부서진 천장이 무너지며 콘크리트 조각이 남자를 덮친다.
고오전 나폴리탄 느낌으로 써봤음
근데 어떤 해석을 생각 안하고 쓰면 글이 너무 허공을 맴돌 것 같아서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둔 게 있긴 함
이러면 나폴리탄이 아닌 건가
여자한테 5번 사랑을 말하고 3번 웃고 7번의 키스를 해줘야 열어주지
단편소설 하나 읽은 기분이다 필력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