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쉰다. 이후 잠시 침묵.)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사해물류에 대해 어쨌든,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겠죠. ...예, 맞습니다. 저는 사해물류에서 몇 안되게 온전한 몸으로 퇴사한 직원입니다. 이름은 (---), 당시에는 사해물류 처리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고요.


(인터뷰어의 목소리는 검열된 듯 다소 왜곡되어 들린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정부 기관, 아님 밀수꾼 그 놈들?


(다시 인터뷰어 대답. 대부분의 말은 뭉개져 들리지 않고 조사를 하고 있다는 짧은 문장만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가요... 유감스럽지만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많이 없어요.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퇴사 절차를 밟으면서 기억 소거 처리를 밟았거든요. 사해물류에 대한 정보의 깊이는 당신이나 나나 퍽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

(짧은 침묵.)


알겠습니다. 이제 와 딱히 숨길 것도 없죠.


규칙서에 대해 아십니까? 아뇨, 그것보단... 괴담 류의 규칙서들 말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불합리한 행동들을 명령하고, 그 규칙이라는 걸 지키지 않으면 죽음을 강요하고.... 우리는 그걸 단 한 권의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인터뷰이 질문, 남자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한다.)


아니오, 책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비유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이름만 책이지, 그건 일종의 데이터베이스에 가깝게 기능하거든요.


(남자는 고개를 기울여, 목에 남은 흉터를 인터뷰어에게 보인다.)


흉터 보이시죠. 여기를 길게 찢고 안에 얇은 막대 같은 걸 삽입합니다. 나와 완전히 동일한 자아를 구축하는 기계라고 하더군요. 자세한 원리는 잘 모르지만서도...


네, 맞아요. 제가 그곳에서 어떤 경험을 했고 무슨 충격적인 일이 있었건,내 뇌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자아에도 그 데이터가 함께 쌓이는 거죠.


이후 퇴사할 때 이 막대를 제거하고 기억 소거 절차를 밟습니다. 머리에 무슨 전깃줄 같은 걸 붙이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회사 생활을 떠올리려고 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짧은 침묵.)


...그 막대에 담긴 데이터, 그건 곧 단 한 권의 책에 저장됩니다. 듣기로는.... 그 거대한 컴퓨터 안에서는 위험 상황을 상정한 시뮬레이션이 24시간 돌아간다고들 합디다. 그 시뮬레이션을 통해 단 한 권의 책에 새로운 규칙이 기록되고, 기존에 적힌 잘못된 규칙들이 개정되고...


종종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한숨.)


나는 퇴사해서 연금이나 받아먹으면서 희희낙락 놀고 있는데, 나랑 완전히 동일한 자아 데이터 그게 뭐든.... 그건 영원히 회사에 갇혀 끔찍한 참극을 되풀이하고 있겠지요. 난 어디까지나 운이 좋아 사지 멀쩡히 살아남은 거고, 그 자식은 여전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외줄에 서 있는 꼴 아닙니까. 어쩌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서 끝나지 않는 회사 생활을 반복하는 중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가 그 복제된 자아가 아닐까요. 진짜 나는 여전히 그 곳에 있고, 복제된 내가 이렇게 바깥에 나온 거죠.


(인터뷰어 대답.)


미안합니다, 늙었더니 요즘 영 감정적이 된 모양입니다. 제가 단 한 권의 책에 대해서 아는 정보는 이게 전부에요. 사실 단 한 권의 책의 본체를 본 적도 없으니까, 안다고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요.


예, 감사합니다. 예, 예.


(긴 삐 소리. 여기서 녹화는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