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셨군요."

"안녕하십니까, 잠시 시간 괜찮겠습니까?"

"그럼요, 어서 오세요."

"음.. 안색은 나아지신 것 같은데,..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뭐,..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렇군요, 생활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조금 답답하고, 가끔씩 어지러운 것 빼고는.. 네, 괜찮아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럼, 오늘도 몇가지 좀 여쭙겠습니다."

"네, 아는 범위에서 최대한 답변드릴게요."

"우선, 절차일 뿐이니..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빌리요, 빌리 웰링턴."

"네.. 그럼 편하게 빌리라고 부르겠습니다."

"얼마든지요. 편하게 부르세요."

"빌리, 성별이 어떻게 되십니까?"

"여성이에요. 그런 건 겉으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그저 절차일뿐입니다, 빌리. 기분나쁘셨다면 유감입니다."

"기분 나쁘진 않았어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걸요."

"네.., 빌리,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아... 잠시만요.., 33, 34, 35,..36...?  35살, 아니다. 36살인가? 네, 36살이에요."

"아니요, 빌리. 당신은 35살입니다."

"아... 그렇군요, 죄송해요. 잠깐 헷갈렸어요."

"괜찮습니다... 빌리, 가족관계에 대해서 얘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우선 우리 가족은 5명이구요.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 여동생까지 있어요."

"네, 혹시 가족마다 생각나는 특별한 일이라든지, 기억같은 것이 있습니까?"

"아...우선, 제 아버지 이름은 잭 웰링턴이고, 마을에서 유명한 소방관이셨어요. 평소에는, 일때문에 바쁘셔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적었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분이셨어요."

"그렇군요, 어머니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은 메리 웰링턴이고.. 주로 교회를 다니시며, 불우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셨던 일을 하셨어요, 저도 가끔 고아원에 가서 일을 도와드리곤 했는데.. 좋았죠.. 사람을 돕는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어머니께서는 봉사활동을 주로 하셨군요,.. 그럼 남자형제들에 대해서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네, 네.. 오빠의 이름은 워레즈 웰링턴이었고, 대학 졸업 후, 집에서 직업을 구하려 애쓰던 모습이 기억나네요. 어릴 땐 참 자주 싸웠었는데, 그래도 서로 철이 들면서, 나중에는 얘기도 종종하고, 어머니도 같이 도와드리곤 했죠."

"워레즈 웰링턴.. 네, 사이 좋은 남매였네요. 동생에 관해 생각나는 일은 있습니까?"

"아, 제 여동생이요. 제 동생의 이름은 줄리아 웰링턴. 저를 잘 따르는 아주 귀여운 동생이었죠. 최근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제가 학교에 데려다 준 기억이 있어요. 정말 착하고 귀여운 동생이에요."

"네,.. 빌리, 동생을 많이 좋아하셨나 보군요. 하지만, 당신의 동생은 여동생이 아니라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제가 또 잘못 대답했나 보네요."

"괜찮습니다, 빌리. 생각나는대로 편하게 답변해주세요."

"..."

"지내고 계셨던 동네에 대해서 얘기해주실 수 있습니까?"

"네,... 우리 마을의 이름은 도어킨빌이었구요. 오리건 주 시골에 있는 마을이었어요. 사람들이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평범한 마을이었어요."

"마을의 교회에서 주로 봉사를 하셨다고 했죠? 교회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 교회는 마을 동쪽 외곽에 위치해 있었어요, 어머니는 차를 끌고, 저를 데리고 그곳으로 가곤 했죠. 그리고 항상 목사님이 우리 가족을 반겨주셨어요.. 목사님.."

"..."

"... 목사님 성함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굳이 기억하시려 할 필요 없습니다. 고아원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아, 세이든 고아원. 그곳은 참 좋은 곳이었어요. 우리 마을은 살기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꽤 있던 마을이었어요..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는데.."

"보통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어머니를 도와서 아이들의 음식을 준비하고,.. 옷을 걷어  빨래를 해주고... 그리고 제가 동화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했어요.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이었는데.."

"고아원 아이들과 각별한 사이셨군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요. 참 좋은 아이들이었던 것 같아요."

"당신의 집에 대해서 얘기해주시겠습니까?"

"네, 제 집... 제 집은 말이죠.... 어라?"

"집이 어디었습니까?"

"제 집이... 제 집, 세이든 고아원이요.."

"당신은 언제 입양되었습니까?"

"저는,... 줄리아가 죽고 나서 입양되었어요.."

"고아원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제가... 제가 입양되고 몇 년 뒤 불타 없어졌어요. 그때, 아버지가 고아원에 와서... 그 날.."

"굳이 기억하려 하실 필요 없습니다."

"잠시만 쉬어도 될까요? 머리가 어지럽네요.."

"네, 그렇게 합시다."

"..."

"...과거를 감추고 싶은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빌리."

"제가 이기적인 걸까요?"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빌리."

"..고마워요,.. 당신덕분에 마음이 항상 편해지는 것 같아요."

"별말씀을,... 이제 다른 얘기를 해주시겠.... 큼큼, 아. 이런. 역시 말투를 바꾸는 건 쉽지 않네요."

"...음,.. 그럼 여기까지 하시겠습니까?.."

"네, 제가 졌어요."

"말투를 바꾸는 게 꽤 헷갈리셨나 봅니다."

"아니요? 그렇게 헷갈리진 않았어요, 오히려 꽤 재밌었는 걸요."

"가끔, 이런 것도 신선하고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맞아요. 심심하니까.."

"..."

"그래도 거울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당신과 계속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빌리."

"언제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요? 벌써 며칠이 흘렀죠?"

"저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끼니 수를 세보니 한 100일 정도 넘은 것 같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군요, 당신을 만난지도 벌써 몇 주는 지난 것 같네요.."

"..."

"제가 당신의 이름을 물어보았던가요?"

"아직 제 이름을 물어보시지 않았습니다."

"이름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건.. 그저 절차일 뿐이잖아요."

"네, 알고 있습니다, 빌리."

"..."

"제 이름은 빌리. 빌리 웰링턴입니다."

"그렇군요, 빌리 웰링턴,.. 빌리 웰링턴.."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셨습니까?"

"그럼요, 고마워요. 좋은 이름인 걸요?"

"다행입니다."

"..."

"언제쯤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까요? 빌리."

"저도 알 수는 없지만, 이 대화를 계속해야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저의 소중한 것들을 잊어서는 안되니까요, 빌리."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빌리."

"그럼요, 당신도요."

"..."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내일 또 뵙죠."

"네, 오늘도 고마웠어요..."

"오늘 얘기한 것들을 마음 속에 잘 새겨두세요."

"..알겠습니다."

"..."

"빌리...."

"....빌리 웰링턴.... 빌리..... 여성,..... 35살.... 아버지.... 어머니.... 빌리.... 오빠... .남동생. .... 빌리....."

"빌리... 빌리..... 웰링턴..... 오리건.... 도어킨.... 세이든.... 고아원....  불......불...."


"빌리... 빌리....."


"....빌....."



"........"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