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중심에는 거대한 석탑이 있습니다.

석탑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존재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석탑이 고대의 황제들이 불멸하기 위해 남긴 유산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석탑이 저 높이 있는 위대한 신의 증표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석탑이 시간이 시작될 때부터 존재한 자연 법칙의 하나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석탑이 그저 바람과 비에 깎인 돌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 누구도 석탑을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뱃사공 할아버지조차도요.

뱃사공 할아버지는 자기가 석탑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석탑은 사람 키의 열 배 정도 높이, 세 배 정도 너비의 원기둥 모양입니다.

옆면의 한 쪽 반절은 매끈하고 다른 한 쪽은 다양한 무늬들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무늬는 불규칙적이고 우리가 아는 그 어떤 기호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역사가들은 그 무늬들을 고대 언어라고, 숭배자들은 신의 언어라고, 회의론자들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습니다.

뱃사공 할아버지는 자신이 무찌른 괴수가 남긴 흔적이라고 믿습니다.


석탑에는 입구도 창문도 없습니다.

그러나 석탑 내부가 비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자정에서 새벽 3시 사이에 석탑 내부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절대로 그 시각에 밖에 나오면 안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일부 석탑 숭배자들이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침대에 눕기 전에는 무조건 귀마개를 착용합니다.

밖으로 나갔거나 소리를 오래 들은 사람들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숭배자로 변해 있습니다.


석탑은 절대로 파괴될 수 없습니다.

마을 인구의 절반을 앗아간 끔찍한 폭풍우에도, 서쪽에 넘을 수 없는 구덩이를 만든 대지진에도

튼튼하고 견고한 석탑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외양이 주는 압도감과 경외심에도 불구하고 석탑에 대한 도전은 끊임없었습니다.

기이하게도, 정확히 매 10년에 한 번씩 석탑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자들이 생깁니다.

수많은 광인들 모두 불행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 과정과 잔혹함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 사냥꾼은 그 괴력으로 일주일 동안 석탑에 바위를 던지다 모든 힘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교활한 마녀는 석탑에 뿌릴 불가사의한 액체를 제조하느라 남편이 자기 동생과 바람맞아 도망간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런 비교적 가볍고 우습기까지 한 소문에 비하면 감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일화도 있었습니다.

육십육 년 전 축일날, 무장한 경비대원 30명과 마을 유지들이 석탑을 포위하고 무려 3년 동안 공성전을 벌였습니다.

그들의 통치 기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두들, 심지어 뱃사공 할아버지조차도 그 참혹한 시대에 대해 입을 닫습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학살과 굶주림의 지배자들은 결국 처절한 주민들의 낫과 쇠스랑에 의해 몰락했습니다.


세 명의 야심만만한 젊은이가 곡괭이와 망치를 들고 석탑으로 돌격했다네.


첫째의 망치가 석탑에 닿는 순간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다네.

첫째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나 부서졌지.

둘째는 흙더미에 머리를 처박아 버렸지.

불쌍한 셋째는 늪지대로 들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네.



이 노래는 약 백삼십여 년 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구전되어 왔습니다.

아직도 불쌍한 셋째가 살아서 숲속을 돌아다닌다는 목격담이 나무꾼들 사이에서 돌고 있습니다.

뱃사공 할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석탑이 무너지는 날에는 세상이 멸망한더랩니다.


석탑의 천장 위에는 고행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들은 약 이백년 전 생긴 교파로 석탑 위에 앉아 일체의 생명활동 없이 조용히 명상을 합니다.

그들이 그곳에 앉은 지 너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도 서로를 잊었습니다.

우리는 차라리 그들을 석탑의 일부로 여기는 편입니다.


석탑은 좋든 싫든 우리 마을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석탑이 당연한 일상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마을의 거리를 걷다 보면 항상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대는 석탑 숭배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강을 건너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좁은 곳이라서 모두가 모두를 압니다.

그들이 포교 당번이 아닐 때는 평범한 이웃일 뿐인지라 우리는 침묵하는 소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인 자연신앙을 믿는 자들과 석탑이 신의 증표라는 교파들, 그리고 석탑 자체가 신의 육화라 믿는 이들까지

그들은 석탑에 대한 해석을 두고 서로를 이단이라 부르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이들의 논쟁에 참여한 뱃사공 할아버지는 다섯 번이나 암살 시도에 위협받았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위험한 날은 축일입니다.

1년에 한 번 유일하게 외지인이 마을에 들어올 수 있는 날인 동시에 마을에서 떠날 수 있는 날입니다.

보름달이 뜨는 겨울 밤, 이때는 마을 전체가 석탑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숭배자들이 석탑 주위를 돌며 빙글빙글 춤을 추기 시작하고

석탑 바로 위에서 거대한 보름달이 고행자들을 비추고

숭배자 집에서 묵게 된 불행한 외지인은 입교를 권유받고

공포에 질린 탈출자들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자정이 가까워지며 달빛이 점점 더 붉게 변하고

춤이 빨라지고

석탑이 말을 시작하고

눈보라가 휘몰아쳐 온통 흰색과 붉은색이고

운이 좋았던 외지인은 이불 아래서 웅크리고

뱃사공 할아버지가 탈출자들과 강을 건너고

춤이 더 빨라지고

석탑도 더 빨리 지껄이고

귀청이 찢어지는 웃음소리가 비명소리와 섞이고

모두가 하나의 원을 그리며 돌고

주민들과 숭배자들과 탈출자들과 외지인들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결국 우리는 같은 마을에 사는 하나의 공동체이기에

우리의 결속력을 위해서는 작은 희생 정도는 필요합니다.


석탑은 우리 삶의 일부이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석탑은 항상 존재해 왔고 계속 존재할 예정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