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같은 세계관입니다

축하해요! 오늘로 2개월차죠? 입단이 한여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네요. 이건 승급 선물로 내려온 목도리랑 성과급이에요. 기운이 좋으신 할머님이 손수 짜신거니까 몸이 허하고 감기가 들었을때 두르고 다니시면 금방 나을거에요.
승급 주기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후배님이 비교적 빨리 승급이 이루어진 케이스라 저는 승급하려면 멀었죠. 다음 승급은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지만, 다음 승급까지 부디 협회에 남아주시면 좋겠어요.

보통 이맘때쯤부터 슬슬 신입들이 그만두겠다고 탈퇴서를 내밀거든요. 두세달 일하면 어디보자, 적게는 이백 많게는 삼백? 그쯤 했으면 됐다, 더 위험한건 안하련다~ 하고 그만둬요. 후배님도 그만두시는건 자유지만... 그만두실땐 꼭 반지 돌려주시고 가셔야해요. 협회에서 처음에 지급한 물품은 꼭 반납하고 가셔야하는거 잊지마세요! 그대로 가져가시면 큰일나요.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요? 반지가 어떤 역할을 해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대충 감이 오실거에요. 요약하면 일상이 조금 더 피곤해진다? 그정도로 간추려지겠네요.

그럼, 이제 신입 티도 벗으셨죠? 이제부턴 지금까지 하신 환경미화나 요양원봉사, 편지쓰기같은 간단하고 평화로운 업무보다 강도가 조금, 아주 조금 센 업무를 배정받으실거에요.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생각보다 별 차이가 없으실거에요. 강도는 위험도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육체적 피로라던가, 업무 수행 시간이 길어지는것도 강도가 높아지는것에 포함되니까요.
저희 협회, 이래뵈도 정부랑 연결된 정식 협회거든요? 쬐그맣고 불법으로 운영하는 협회들하곤 태가 달라요 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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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는 말해줄수있잖아요~ 입이 싼사람은 기운부터가 안좋은거 아시면서!
아무튼 하려던 말은 업무강도가 목숨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타내는것만은 아니다, 이거죠.

이번주 업무는 1개. 칠십만원의 보수가 지급돼요. 좀 세죠?

첫번째 업무부터 같이 볼까요? 이번 업무가 설명해야할게 좀 있어요.
이나토 고등학교 옥상 경호 업무. 업무 진행 시간은 등교시간부터 하교시간까지. 좀 더 정확하게는 오전 7시부터 업무 종료까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좀 기니까 월차쓰시면 될거구요.

이나토 고등학교에 도착해 경비원에게 출입증과 사전 배부 문서를 전달 후 지시봉을 전달받는다.

이따 드릴 문서가 하나 있어요. 공문서인데 이걸 드리면 저희가 업무를 하려고 들어온 협회원인걸 아시고 뭘 하나 주실거에요. 선생님들중에, 화면이나 칠판을 가리키려고 삼단으로 늘어나는 지시봉 쓰시는 선생님들 있죠? 그거 주실거니까 받으시면 돼요. 이번 업무에서 쓰는거니까 잃어버리시면 안돼요!

학생들이 출입하는 교문에서 오전 8시까지 선도위원들과 함께 등교하는 학생들을 점검한다.

점검보단 신세를 진다고 표현하는게 맞겠어요. 최대한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곳에서 학생들하고 부대끼시면 돼요. 이해가 잘 안가시려나? 아, 이게 청춘이구나 하고 감상에 젖어계시면 될거에요.
기운이 좋으신 후배님의 기운을 좀 더 끌어올리는거에요. 원래 그맘때의 학생들의 기운은 최고의 인적자원이거든요. 학교 주변의 복권방이라던가, 분식집, 음식점... 유독 매상이 높고 잘나가는게 대부분 그거때문이에요. 학생들이 자주 찾는거랑은 별개의 무언가가 있어요. 그런 좋은 기운을 가진 학생들에게서 응원을 받는다. 그런 개념이죠. 말로는 설명못할 뭔가가 있으니까 아무튼 시키는대로 하시면 그만이에요.

오전 8시가 되면 옥상으로 올라가 매 쉬는시간마다 올라오는 학생들을 저지한다. 학생들의 유형별로 저지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자, 지금부터 집중하셔야해요.
쉬는시간마다 옥상에 올라오는 학생들이 있을거에요. 원래 출입금지인데, 이날은 자물쇠가 안먹히거든요. 그래서 열리니까 학생들이 막 올라올건데 이상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보일거에요. 그 학생들을 지시봉과 별도의 조치로 저지하는게 이번 업무의 골자에요.

올라와서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난간의 창살을 긁는 학생들.
막 두리번거리다가 난간의 추락방지 쇠그물 울타리를 긁으면서 힘들어하는 학생
들은 지시봉으로 어깨를 툭 치면 갑자기 기절하면서 쓰러져요. 정말 그대로 쓰러지니까 좀 받쳐주시면 좋구요. 기절한 학생 어깨에 보시면 찐득거리는 껌같은게 잔뜩 묻어있을거거든요? 그거 지시봉으로 건드리시면 막 떨어져서 사라지니까 어깨가 깨끗해질때까지 그렇게 해주세요.

올라오더니 목을 부여잡고 떠나가라 우는 학생들.
목을 지시봉으로 건드리면 마찬가지로 기절할거에요. 목에 밧줄같은게 매달려있을텐데, 반지를 껴야 보여요. 그걸 매듭을 풀어서 목을 자유롭게 해준다음에, 밧줄을 지시봉으로 찔러서 죽여주시면 돼요. 살아있거든요.

팔목을 마구 긁어서 피가 나려고 하는 학생들.
좀 조심하셔야해요. 너무 가까이 가시면 소리지르는데 더 세게 긁어요. 외상은 회복에 시간이 걸리니까, 가급적이면 모르는척 하다가 주저앉아서 긁기 시작할때 뒤에서 다가와서 머리를 지시봉으로 힘껏 때려주세요. 물리적으로 기절하는건가 싶게 세게요. 기절하고나면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있을거에요. 그걸 옥상 잠금장치 열쇠로 풀어주시면 돼요. 재처럼 바스라질거에요.

마지막. 제일 중요한 유형.
구형 교복을 입고 올라오는 학생이 있어요. 신문에서 보신적이 있으려나? 10년도 더 된 이야기긴 해도, 아실법한 이야기긴 해요. 근교에서 엄청 시끄러웠으니까.
치마교복을 입고 올라와서 , 신발을 벗고 울면서 난간에 올라설텐데, 그때 다가가서 손을 잡고 끌어내려주세요. 별다른 저항은 안할거에요.
울면서 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가볍게 안아준다음에, 너보다 먼저 온 애가 있다고 알려주세요.
그러고서 왼쪽을 보시면... 또 다른 학생이 신발을 벗은채로 난간에 올라서서 그쪽을 바라보고 서있을거에요.

너무 놀란걸 티내진 마세요. 얼굴도 체형도 옷차림도 전부 똑같을텐데 그게 맞아요.
막 올라온 학생이 이미 서 있던 학생한테 하는 말이 끝날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야기가 끝나면 바라보던 학생한테 신발을 신겨주고 돌려보내세요.

노란 가디건을 입은 학생한텐 올라온 학생이 집에 돌아가면 따뜻한 밥과 부모님이 있을거라고 하고,
머리가 단발인 학생은 올라온 학생이 반에 널 기다리며 진실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알려주고,
온몸에 상처가 나서 붕대랑 반창고 투성이인 학생은... 별다른 말은 안할거에요. 그냥 적당히 지켜보시다가 신발 신겨주고 보내세요. 아, 또 눈물날려고 하네. 왜이러나몰라...

아무튼! 이 학생이 옥상에서 내려가면 업무 종료에요. 구형교복의 여학생이 업무 종료의 기준이니까 이 학생이 내려가면 그게 업무 종료 시간인거죠. 경비실에 들러서 지시봉 반납하시고 퇴근하시면 됩니다.

오후 5시에야 끝나기도 하고 오전 11시에 끝나기도 해요. 엄청 불규칙적이니까 도시락도 사서 오시면 좋아요. 5시에 끝나시면 협회로 오세요. 회식할건데 고기라도 얻어드시고가세요.

자, 어디보자... 이거다. 문서. 화일에 담겨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무릎도 볼도 눈도, 어느 한 곳이 성한데가 없는 소녀가 가디건을 입은채 울던 소녀를 무미건조하게 바라보고있다.
선배가 설명하던 마지막 유형의 학생이다.
울며 올라왔을때보다 더 크게 울기 시작한 소녀는 내가 잡고있던 손까지 함께 떨릴만큼 더 크게 오열하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치만 여기만은 피해줘... 여기, 여기서만은 안돼...

그래, 그럼 오늘은 돌아갈게.
내가 신발을 신겨주지않아도 알아서 신발을 신은 다친 소녀는 절뚝이며 옥상에서 내려갔고, 내가 데리고있던 소녀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져있었다.
찝찝하고 묘한 기분에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회식에 참여해도 되겠냐는 말을 하며 나온 고교의 풍경이 어쩐지 쓸쓸하다.
나홀로 소속되지못한 느낌이 교문을 빠져나오고도 그대로다.




삽화는 심심해서 제가 호다닥 그려넣엇스무니다
문제잇으면 말씀해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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