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다고 하니까 무서운 얘기 해주셨는데 좀 재밌어서(사실 마냥 재밌는건 아님) 여따가도 써봄.
지금 광주 광산구 사정동이라는 곳은 예전에 그냥 전라남도 하남면이었대.
근데 규모가 꽤 커서 시로 승격된다는 소문도 돌고 여튼 그랬나봐.
1970년이었나. 우리 할머니는 그 때 하남면에 사셨는데 당시 기준으로 시집을 좀 늦게 가셔서 23살까지 증조할머니랑 같이 사셨대.
증조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긴 했는데 친정에 재산이 워낙 많아서 그냥 소일거리 하며 지내셨다더라.
근데 어느날 증조할머니가 시장에서 한약을 막 바리바리 사오셨다는거야. 그것도 5만원어치나.... 그때 물가 기준으론 진짜 큰돈이었다고 함.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손이랑 귀랑 다 빨개지고 울면서 막 정신도 못차리시고 난리였다고 함.
그래서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엄마! 뭔 일 있어요? 그리고 무슨 약을 이렇게 많이 샀어?"
라고 하니깐 증조할머니가
"너희 큰언니 지금 큰일났다. 폐병에 걸려서 오늘내일 한다더라. 빨리 이거 갖다줘야 한다."
근데 할머니는 이상하게 생각했대. 자기가 제일 큰언니고 집에 병 난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순간적으로 '우리 엄마가 벌써 노망이 났나' 라는 생각까지 하셨다더라.
암튼 할머니가 말한 대화 그대로 옮기자면
"큰언니는 무슨 큰언니! 내가 장녀잖어요. 눈길이라도 구르신거야?"
"이년이 정신이 나갔나! 니그 언니 바로 옆동네에 살잖아! 이거 안 갖고 가면 니 언니 진짜로 죽지 싶다."
"왜이래 정말! 엄마 정신 좀 차려봐요!"
"너랑 실랑이 할 시간 없으니께 좀 비켜봐!"
그러고 그 많은 한약을 들고 밖으로 나가셨대. 곧 저녁먹을 시간이었는데도.
그러고 밤 늦게까지도 안돌아오시길래 온 식구들이 다 나서서 증조할머니를 찾아다녔대. 몇시간 정도 헤매니까 증조할머니가 엉엉 울면서 집으로 오는게 보이더래.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증조할머니한테 가니깐 증조할머니가
"길을 못 찾겠다, 길을...."
하면서 계속 우시더래.
면사무소에 가서 길을 물어도 거기 직원이 안알려주더래. 없는 곳을 찾고 있다고.
할머니가 장단이라도 맞춰드려야 하나 생각해서 어디로 가야되는거냐고 물으니까,
"니 언니 작년에 필사읍으로 시집갔잔어!"
라고 하셨다더라.
그런데 할머니는 23년동안 하남면에 살면서 필사읍이라는 곳은 들어보지도 못했대. 바로 아래에 송정읍은 있어도 필사읍이라는 곳은 없다는거야.
"필사읍은 또 어딘데!"
"거기 있잖아, 거기!"
증조할머니는 그대로 밤을 새며 우시더니 다음 날 또 그 '필사읍'이라는 곳을 찾아다녔대. 할머니가 쫓아다니면서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계속 빌어도 말을 안들으셨대.
밥도 안드시고 몇날 며칠 그러고 있을 기새니까, 아예 방에 가둬놓고 식사랑 요강만 어떻게 해주셨대.
그러고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멀쩡해지셨다더라.
본인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안된데. 잠깐 귀신이 씌였나, 무당도 찾아가고 그랬다더라.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할머니가 그 '필사읍'이라는 곳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대.
그래서 고등학교 다니고 있던 작은할아버지한테 필사읍에 대해서 묻고(할머니가 중학교까지만 나오셔서 그런듯?), 주변 어른들한테도 묻고 다녔대.
한 번은 옆집 아줌마랑 증조할머니가 이상하게 행동했던 얘기, 필사읍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으려니깐 왠 남자가 다가와서
"필사읍 얘기하고 계세요?"
라고 물었대.
할머니는 이 사람이 필사읍에 대해 아는가 싶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는데, 옆집 아줌마가 그 남자한테 별 말 아니니까 그냥 가시라고 했대.
그런데 할머니는 그 남자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대. 내가 대화를 표준어?처럼 적어서 그렇지 대화가 다 전라도 쎈 사투리인데, 그 남자는 서울말씨를 쓰고 키도 훤칠해서 호감이 갔다는거야. 눈동자가 엄청 까만 게 이상하긴 했지만 얼굴도 그리 나쁘진 않았대. 옷차림도 멀끔했고.
그래서 할머니가 필사읍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대. 남자는 꼬박꼬박 답 해주면서 필사읍에 대해서 엄청나게 칭찬을 했대. 거기는 뒤에 산이 있고 강이 많아서, 농사도 잘 되고 겨울에 춥지 않다느니, 경치가 아주 좋다느니, 규모가 좀 작긴 하지만 주민들도 전부 착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느니....
그러면서 할머니한테 한 번 놀러오지 않겠느냐고 하는거야.
할머니는 홀린 듯이 그러겠다고 했대. 그러자 옆집 아줌마가 외간 남자하고 어딜 쏘다니냐고, 얘기 들었으면 이만 마무리 하라고 하셨대. 이걸 들으니까 할머니는 이상한 고집이 생기더래. 나는 지금 꼭 필사읍에 가야만 한다는 그런 고집.
계속 고집을 피우니까 옆집 아줌마가 대신 자기하고 가자고, 저녁 먹기 전 까지는 돌아오는 걸로 하재. 할머니는 알겠다고 했고, 그 남자가 이상하게 더 좋아하더래.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거라고 뭐 그랬다더라.
필사읍이라는 곳으로 가는 동안 그 남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더래. 동전마술도 보여주고, 손가락을 뒤로 꺾는 묘기도 보여줬대. 지금 생각하면 징그럽기만 한데 그 때는 마냥 신기하고 좋으셨다더라.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 순간 '필사읍'이라는 비석이 보이더래.
할머니는 평생 하남면에서만 살아서, 주변 지리는 전부 알고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대. 옆집 아줌마도 평생 하남면에서만 살던 분이었는데, 그 분도 여긴 처음이라고 놀라셨대.
그리고 비석을 지나니까 갑자기 이상한 냄새가 났대. 그래서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물으니까, 여기 근처에 주변 지역의 쓰레기를 모아서 처리하는 시설이 있다고, 조금만 참아달래. 할머니는 그나마 비위가 좋은 편이어서 잘 참았는데 옆집 아줌마는 비위가 약했는지 헛구역질을 막 하셨대. 근데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보통 괜찮냐고 묻거나 하지 않나? 근데 그 남자는 그게 보이지도 않던지 그냥 하던 얘기를 계속 하더래.
할머니는 그 모습에 기분이 좀 나빠지셔서 대충 보다가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대.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남자 말을 대강만 듣고 빨리 돌아갈 궁리만 하셨대. 옆집 아줌마도 신경쓰였고.
조금 있다가 할머니가 남자한테
"아쉽지만, 아주머니께서 너무 편찮으신 것 같아서 이만 돌아가야겠어요. 구경은 다음으로 미룰게요. 죄송해요."
그러니까 남자가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하더래.
"네?"
그래서 할머니가 다시 남자한테 돌아가겠다고 말하니까,
"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해도 남자는 그냥 "네?"라고만 했대. 그러면서 몸은 그대로 서있고 얼굴만 점점 할머니랑 가까워졌대.
"네?"
"네?"
할머니는 당황하셔서 횡설수설 말을 하다가, 위화감이 느껴져서 그 남자 얼굴을 자세히 보니까, 할머니 모습이 그 남자 눈에 안비치더래.
눈이 유리알 같지 않고 무슨 그림같았대. 칭찬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너무 아무것도 안비쳐서. 눈동자는 그냥 까맣기만 하고 흰자도 그냥 하얗기만 했대.
할머니는 대충 인사 하고 옆집 아줌마를 챙겨서 왔던 길로 되돌아갔대. 필사읍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계속 직진만 했거든.
그런데 아무리 가도 들어올때의 그 비석이 안보였다는거야. 그리고 해도 빨리 지는 느낌이라서, 너무 무서우셨대.
게다가 뒤에서는 그 남자가 따라오는지
"어디 가세요?"
"어디 가세요?"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대. 희한한 건 발자국 소리도 안들리고 인기척도 안느껴졌대. 그런데도 뒤를 돌아보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옆집 아줌마랑 뛰듯이 걸어갔대.
가도 가도 길을 끝이 없지, 이상한 냄새에 점점 머리도 아파오지, 날은 더럽게 춥지, 옆집 아줌마는 구토를 참기 힘든지 아예 입을 틀어막고 있지... 정말 당장에라도 주저앉아서 울고싶으셨대. 그런데도 멈추면 큰일날 것 같아서 계속 걸으셨대.
한참을 걷다 보니까, 옆에서 뭔가 태우는 소리가 났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서 보니까, 왠 아저씨가 엄청 큰 쓰레기 언덕 앞에서 쓰레기들을 태우고 계셨대.
그래서 그 아저씨한테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었는데, 아저씨가 할머니가 가던 방향을 가리키더래.
거의 다 왔나보다, 생각해서 감사하다고 하고 가던 길로 계속 가다보니 정말 그 비석이 보였대.
그래서 옆집 아줌마랑 환호하면서 그 비석으로 뛰어갔대.
그런데 비석에 거의 다 오니까, 누가 어깨를 턱 잡더래.
뒤를 돌아보니까 그 남자가 얼굴을 엄청 들이밀고
"어디 가세요?"
라고 말했대. 할머니는 진짜 기절할 뻔 하셨대. 어찌어찌 정신을 붙잡고 이제 집에 가야겠다고 말하니까,
"여기로 오세요."
하면서 할머니를 막 잡아 끌더래.
할머니가 힘이 좀 약하셔서 저항없이 끌려가게 되니까, 옆집 아줌마가 온 몸으로 막으면서 얼른 가라고 소리치셨대. 막고 있을 테니까 경찰 불러오라고.
할머니는 아줌마가 너무 걱정됐지만, 그 남자가 힘이 워낙 세서 한 명은 막고 있을 수 밖에 없었대.
그래서 울면서 파출소로 뛰어가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옆집 아줌마한테 얼른 갔대.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리 찾아도 그 필사읍으로 가는 길이 없었다는 거야. 주변 온 동네를 뒤져도 '필사읍'이 적힌 비석이 안보인거지.
옆집 아줌마 남편분이랑 아들까지 나서서 일주일 내내 하남면 일대를 다 도셨대. 지금으로 따지면 하남동에서 송정리 근처까지 다 뒤진거야. 그런데도 필사읍을 못찾았대. 아줌만 그대로 실종되신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아줌마가 실종됐을 쯤 면사무소 직원 몇명도 실종되고, 파출소 직원도 실종되는 일이 있었대.
한동안 주변 분위기도 흉흉했고, 그 일이 있어서인지 할머니는 마을에서 고개를 못 들고 다니셨대. 어딜 가나 옆집 아줌마랑 할머니 이야기였으니까. 할머니 때문에 옆집 아줌마가 그렇게 된 거라는 얘기도 돌았다더라.
그래서 도망치듯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셨대. 지금이야 워낙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렇게 말하는거지만, 90년도 까지는 이 일을 떠올리기도 싫으셨대.
들리는 소문에는 그 아줌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대. 가끔 할머니는 아직도 그 때의 꿈을 꾸신대. 어떤 때는 반대로 본인이 잡히는 꿈을 꾸시기도 한대.
이야기 마치시면서, 할머니가 혹시라도 그 필사읍이라는 곳을 찾게 된다면 얼씬도 말라 하시더라. 눈깔 이상한 남자 만나면 피하라고도 하셨고...ㅋㅋㅋ
여튼 혹시 광주 사는 애들 있으면 조심해라.
괴담같은 거 잘 안믿는데 울 할머니가 엄청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혹시 몰라서 씀.
제목에 약스압이라고 적긴 했는데 그렇게까지 스압은 아닌가..... 뭐 하튼 읽어줘서 고마웡!
와 ㄹㅇ 무섭고 재밌다
이거 진짜야 지어낸 거야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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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필사읍 좋은곳임
어디 가세요?
밑에 근무일지보고 왔다ㄷㄷ
옛날 이야기 느낌이라 더 좋은 듯 필사동 시리즈중에 제일 좋다
진짜 존나 재밌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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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넘재밌어 술술 읽히네
필사읍 살기 좋지 나도 필사읍에서 귀농하구 있는데 텃세 없어서 살기 좋은듯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