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중엽, 임진왜란이 일어날 즈음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미상의 「귀물잡변」이라는 책이 있는데,
시대상을 보건대, 당대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지식층은 양반일 것이고(15세기 중엽이라 상것이 양반이 되는 일은 없던 시절이다),
당시 성리학을 받들어 강호(江湖)라던지 연군지정(戀君之情)에 대해서만 노래하는 그런 양반일 지언대,
이 「귀물잡변」에 실린 야사는 그 고매하신 양반이 썼다고 감히 상상조차 못할 정도로 기괴하고 잔혹한 이야기들 뿐이다.
하여튼, 이 「귀물잡변」에 실린 이야기들 중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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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광주목에 목사로 부임하게 된 김종익은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괴이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광주목 외곽에는 83명 정도가 사는, 사람이 잘 왕래하지 않는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에서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실종된 사건이었다.
실종되지 않은 한 명은 마을 사람들이 실종된 당일 마침 며칠간 친정 아버지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윤판석의 처, 광산 김씨였다.
(어떤 독자들은 조선시대에 여자가 어떻게 친정 아버지 제사를 모시느냐,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조선시대 중순까지도 여자들은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김종익은 김씨를 불러 마을에 일어난 변고를 설명하고, 혹시 실종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을까 하여 김씨에게 하문했다.
김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3개월 전 쯤, 마을에 갑자기 어느 박수(남자 무당)가 와서 마을에 있던 고민거리를 이것저것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 박수에게는 신묘한 능력이 있었는데, 맹수를 눈빛만으로 죽이고 잡초를 시들게 하는 그런 능력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봉했고, 그가 머물 거처까지 따로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이렇게 말합디다.
'나는 필사촌이라는 곳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은 모두 나처럼 신묘한 능력을 쓸 수가 있소.'
마을 사람들이 그 '필사촌'이라는 곳을 궁금해 하니까, 그가 사람들에게 부적 하나씩을 쥐어주었습니다.
부적이라 함은, 노랗거나 흰 종이에 쓰여진 것일진대, 이상하게 그가 나눠준 부적은 새카만 종이에 벌건 글씨가 쓰여저 있었습니다.
그 부적을 나누어주며, 그는 '이 부적을 몸에 지니고, 얼마간 하루에 한 번 씩 뒷산을 오르내리며 정성껏 기도를 한다면, 당신들도 필사촌에 갈 수 있소.' 라고 하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은 그 남자의 말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하던 농사일도 버려두고 뒷산을 오르내리기만 했습니다. 몸이 불편한 이들도, 어린 애들도 전부 뒷산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친정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단 소식이 와 저는 친정으로 가게 되었고, 돌아와보니 이렇게 된 것입니다."
목사는 김씨에게 그 부적이란 것에 대해 물었고, 김씨는 그 부적을 집에 두고 왔으니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 이후 김씨 역시 실종되었다.
목사는 마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졌다.
관청의 노비까지도 하던 일을 그만두고 마을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이러한 규모의 수색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김씨의 남편인 윤판석이 그 유명한 파평(坡平) 윤씨의 일원이라는 이유가 컸다.
3주 정도 지났을 무렵, 어느 포졸이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목사에게 달려왔다.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목사는 포졸을 따라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실종 사건이 일어난 마을의 뒷산이었다.
길이 정돈되지 않아 말이 올라갈 수 없어, 목사를 비롯한 여러 포졸들은 몇 시간에 걸쳐 겨우겨우 산을 올라갈 수 있었다.
포졸이 안내한 곳은 어느 거대한 동굴 앞이었다.
동굴의 입구는 아주 컸지만 이상하리만치 빛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암흑이란 이런 것이리라, 동굴 앞에 있는 모두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목사는 포졸을 앞세워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들어서니, 포졸 몇명이 구토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더 들어서니, 목사의 발에 찰박, 하고 축축한 것이 밟혔다.
횃불을 들어 확인해보니 그것은 피로 이뤄진 웅덩이었다.
웅덩이가 워낙 커서, 호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목사는 그것에 경악하여 횃불을 더 높이 들여보였다.
목사는 그것을 보고 곧바로 토할수 밖에 없었다.
너무나 참혹한 광경이었다. 조선 건국 이래 이런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목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수한 시체들이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눕혀져 있었다.
모든 시체들의 목에는 밧줄이 묶여져 있었고, 그 밧줄은 옆의 시체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목을 조르는 형상이었다.
복부는 사방으로 갈라져 장기가 다 보일 지경이었다. 마침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시체의 표정은 전부 행복해보였다.
자세히 보니 웃음이 아니라, 입이 귀까지 찢어진 것이었다.
목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포졸들에게 시체의 수습을 맡기고 동굴 밖을 뛰쳐나왔다. 피비린내가 동굴 밖까지 진동하는 듯 했다.
목사는 한동안 크게 앓아누웠다. 시체의 수습을 맡은 포졸들에게도 3일 간 관청에 나오지 말라 지시했다.
목사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 어떤 포졸이 종이뭉치를 들고 왔다.
"그 동굴에 피로 쓰여진 글이 있었는데, 윤판석이라는 분께서 쓰신 것 같습니다. 그 글을 배껴 적었는데, 확인해 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그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여기 온 것을 후회한다. 어리석은 것들은 이미 다 죽어있다. 내 목에도 밧줄이 걸려있다. 너무 무섭다. 부인께서 친정에 계속 있어야 할 듯 한데 말을 전할 길이 없어 안타깝다. 그 박수는 제정신이 아니다. 박수는 여기 더 머물며 주민을 더 모아오겠다고 한다. 누군가 이 글을 봐서 어서 그를 막았으면...'
목사는 그를 찾으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동굴의 참상을 목격한 이후, 도무지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3개월 간 시름시름 앓다 죽었다고 한다.
그 동굴에 들어갔던 다른 포졸들도 전부 죽었다.
개중에 어느 자는 그 동굴에 들어가 목을 매어 죽었다고 한다.
광주목의 백성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실종사건이 일어난 마을을 봉쇄하고, 그 마을 주변 5리까지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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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목의 '필사촌'과 '이상한 박수'의 이야기는 몇개가 더 있는데, 분량상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시간이 나면 더 옮겨보도록 하겠다.
이거 글쓴사람인디 요즘 광주 필사동 씨리-즈 쓰고있어! 평소에 쓰고싶었던 괴담들 세계관만 같은 옴니버스 구성으로 쓰고 있는 중임 ㅇㅇ 지금까지 쓴 시리즈 모음집은 오눌 오후에 '필사동 게시글 주의권고' 이런 제목으로 글 쓴거에 링크 달아놨으니까 관심있는 붕이들은 씨리즈 즐겨주면 고맙겠땅 피드백은 아래 댓글로 남겨주면좋겠어! 꼬마웡!!!
재밌당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게 존잼이다 ㄹㅇ
팡주추
천재
글쓴ㅇ 필사동 주민임. 내가 봄 ㅇㅇ
시리즈 올라온거 다 읽었는데 존나 재밌어서 다음 편도 기대중임 - dc App
ㅈㄴ재밋네
반드시 필, 죽을 사 라서 필사동인건가?
존맛
더줘!!! - dc App
임진왜란이면 16세기 아닌가요?
이야기 너무 기기괴괴하다...
저 책 저자도 사람 아닐 것같어 - dc App
귀물잡변 출처가 어디인가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데 그냥 글쓴이가 창작한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