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떠났었습니다.


모두들 혈기왕성하고 모험심에 가득 차 있었고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죠.

그곳이 아마 사우디였나 이집트였나 그랬습니다.

관광객 한 명 없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가이드 한 명이 나타났습니다.

안내를 해주기에는 너무도 늙어 보였지만 무작정 돌아다니는 게 지루해지던 참이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60년을 살면서 이 근방 모든 곳을 빠삭하게 꿰고 있다며 호언장담하더군요.

그 노인은 절반도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소란을 피우며 우리를 낙타에 태워 끌고 갔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어느새 우리는 붉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붉은 암석들과 울퉁불퉁한 지평선이 뜨거운 열기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죠.

우리는 지치고 당황스러워서 노인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는 원래 사막에서 이 정도 이동은 짧은 편이라며 거의 다 도착했으니 참아달라 했습니다.

더 이상 말할 힘도 나지 않았을 때 눈앞에 거대한 바위산이 보였습니다.

그 주위만 다른 암석들이 없이 깨끗했고 구름에 가려진 정상은 하늘 끝까지 닿을 듯 보였습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북적대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바위산 뒤편의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 광경은 아직도 머리에 생생합니다.

집들은 모두 바위산을 깎아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시장이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가파른 절벽을 사다리로 오르내리며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죠.

휘황찬란한 보석과 형형색색의 양탄자들, 본 적도 없는 신기한 동물들까지 눈앞이 핑핑 돌 지경이었습니다.

우리는 터번과 램프와 부채를 사고, 꼬치를 먹고, 마술과 점을 보고, 호랑이를 구경했습니다.

인파에 밀려 먹고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우리는 어느새 가이드 노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불안해진 우리는 노인을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해는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습니다.

결국 피곤해진 우리는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저렴한 여관에서 하룻 밤 묵기로 결정했죠.

여관 주인은 팔다리가 길고 수척한 인상의 털북숭이였고 방에는 창문도 없었습니다.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그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다 잠이 들었습니다.

정오가 지났을 무렵, 퍼질러 자다가 높고 날카로운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친구가 개코원숭이 한 마리와 싸우고 있더군요.

패닉 상태로 뒤엉켜 싸우다 겨우 원숭이를 제압해 밟아 죽였습니다.

흥분이 가신 후에 다른 친구들이 묵던 옆방으로 가봤지만

어질러진 침대와 사방에 묻은 핏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머리를 강타해 어지러웠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우리는 여관을 뛰쳐나왔고

바위산의 정체를 목도했습니다.

가파른 산비탈 아래로 수천 마리의 개코원숭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주위에는 온통 썩어 문드러져 가는 살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피범벅이 되어 살점들과 함께 뛰고 먹고 춤추고 싸웠습니다.

태양과 바위와 피와 뼈와 살과 이빨들이 모두 붉은 덩어리로 모여

처참한 지옥도의 풍경을 우리 눈에 내리꽂았습니다.

무릎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고 어제의 기억이 아스라이 되살아났습니다.

갑자기 구역질이 밀려와서 눈을 감았지만 입에서는 피와 모래가 섞인 무언가가 나왔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더니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친구와 바위산 뒤편으로 갔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원숭이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뜨겁고 따가운 바람 때문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도망쳤습니다.

친구가 여관에서 상처가 난 덕분에 나는 암석 틈에 숨어서 그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바람이 멎은 후 붉은 사막에서 얼마나 떠돌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며칠, 몇 주, 몇 달, 혹은 몇 년을 기억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그곳에선 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햇빛은 온 사방에서 비쳐 그림자가 없이 한낮의 이글거리는 열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도 어느 곳도 갈 수 없었습니다.

주위에는 바위와 모래만 영원히 되풀이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앞에 바위산의 도시가 아른거렸고 노인이 개코원숭이들을 이끌고 쫓아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저 멀리서 원숭이 떼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던 겁니다.

노인의 목소리가 돌아오라고 소리치는 것도 들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절박하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언젠가 지평선 끝에 마을이 보였습니다.

그 마을은 내가 다가갈수록 도망치다가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부터 점점 신기루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내가 그리워하던 원래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기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쫓아오던 노인과 개코원숭이들의 모습은 환각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이 실제한다고 믿지 않은 순간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이곳에서는 환각도 현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환각이 곧 현실입니다.

바위산도, 개코원숭이들도, 친구들도 허상에 불과하지만

결국 우리 믿는 대로 보고 보이는 대로 믿는 법입니다.

환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다면 무엇이 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방법을 통해 붉은 사막을 탈출했습니다.

저는 지금 제 환각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환각 속에서 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무슨 트라우마냐고요? 오래 전, 사막에서 개코원숭이들에게 친구들을 잃고 뇌 손상이 왔습니다.

정체불명의 노인에게 홀려 붉은 사막의 바위산으로 갔고, 나 혼자서만 도망쳐 나와 구조되었습니다.

환각 속에서 그 사막은 폐쇄되어 어떤 기관이 조사하고 있습니다.

개연성 있는 결말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 모두 붉은 사막에서 환각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