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첫 번째 날,
오래된 승복을 입고 정해진 자리(목제로 지어진 가로세로 3m의 방)에 앉아 있는다.
식사는 제공되며, 용변은 근처에 있는 공용 화장실에서 해결할 수 있다.
용변과 숙면 이외에는 약 17시간 이상을 정좌 자세로 앉아있어야만 한다.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구인 전단에 작게 적혀있는 글을 보며 돈에 눈이 멀어 목숨을 걸게 된 자신을 책망했다.
아직도 그 중년 남성(이하 '이장'으로 표기)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항상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굳이 찾아보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씨가 겪을 일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장은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이장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의 적임자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을 여러 갈레로 짓이겨 죽이고 수십 미터 높이의 나무에 걸어놓는 짓거리가 충분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한참을 앉아 머리를 식히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창문으로 저녁노을이 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저녁밥이 들어와 주변 소리를 반찬 삼아 식사를 했다.
새소리, 사람 소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 , 자동차 소리, 지붕 위에서 망할 노인네 피가 떨어지는 소리.....
잠시만
뭔가 이상한데
피가 아직도 떨어진다고..?
스님이 돌아가신지는 적어도 열몇 시간이 지났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피가 나온다고..?
순간 식은땀이 났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되나?'
그 순간, 이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항상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특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굳이 찾아보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부터 ■■씨가 겪을 일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속으로는 지금 당장 이 망할 곳에서 벗어나 집에서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장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상식을 벗어난다는 게 대체 뭐지?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잘못하면 나도 저 스님처럼 되어버리는 건가..?'
그때였다.
투두두두두두두둑
위에서 많은 양의 액체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지붕에서 붉은 액체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가 아니었다. 피와 비슷한... 아니, 피를 흉내 내려 한 무언가였다. 이 의문스러운 액체에 방이 서서히 침식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간 분명 끔찍한 일을 당하리라 확신했다.
이에 재빨리 문을 연 순간,
나는 보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주변이 순식간에 검게 변하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주변이 밝아지며 이장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정신이 드십니까?"
"... 무슨.. 일.. 이 있..었던 거죠..?"
"저희도 자세한 사정은 조사 중입니다. 소리를 듣고 찾아와보니 ■■씨께서 눈에서 피를 흘리신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 즉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래.. 서.. 눈...에 붕대를..?"
"붕대는 푼지 좀 되었습니다. 지금 절 똑바로 보고 계시지 않나요? "
순간 뒤통수가 세게 맞은 듯 얼얼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보이지도 않는 손을 허공에 아무렇게나 휘두르며 갈라진 목소리로 비명을 내지르듯 말했다.
"씨발새끼들아!! 대체 내 눈에 뭔 짓을 한 거야 대체!!"
"진정하세요!"
"내가 여기 있는 것들 다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라고!"
너무나도 억울하고 비통했다. 나는 그저 돈이 조금 필요했을 뿐이다.
내가 한 잘못은 그저 구인 전단을 자세히 보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대 내가 왜 눈까지 잃어야 한다는 말인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다.
나의 마음속에는 더 이상 그것을 본 공포도, 눈을 잃게 한 존재들과 자신에 대한 분노도, 슬픔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나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재발! 재발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더 이상 돈이든 괴물이든 그 무엇과도 엮이기 싫었다. 녀석들이 시키는 것이라면 장기라도 팔아치울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집으로 보내주기를 나는 바랬다.
그러나, 나의 간절한 마음은 이장의 신념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누군가 머리를 내리찍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장이 머리를 숙인 것이리라.
"■■씨, 제가...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한 번 일을 시작한 이상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상이 도착할 때까지는 반드시 ■■씨가 있어주셔야 합니다.. ■■씨가 적임자가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이 마을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씨는 불상과 동일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씨도! 저도! 할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이장의 눈물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 그도 사람으로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을 도우러 온 자가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이십 대 청년이었으니, 한번 마을에 들어온 이상 돌려보내지도 못하는 그로서는 분명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참을 울던 이장은 겨우 말을 이었다.
"... 부탁입니다. 현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밖에 없어요.
불상도 거의 완성되어 간답니다. 제가 법력이 높으신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지켜드릴 테니 최대한 버텨주십시오. 도망 쳐봤자
■■씨도 저희도 좋을 게 없습니다. 이번에는 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자포자기한 나는 결국 남기로 하였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마을에서 평생 지원해 준다고 한다. 눈도 보이지 않으니 이대로 나가봤자 사람 구실도 하지 못할 것이 뻔하다. 결국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이 헛것이 아니라면...
그 후로 수일이 지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에 슬슬 적응해 나가고 있다.
사람은 미각, 촉각, 시각, 청각, 후각의 오감 중 하나를 잃게 되면 나머지 감각이 더욱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예로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점자를 더욱 "잘 느끼는" 것이 있다. 이것도 나름대로 생존의 방식이리라.
나 또한 눈을 잃고 난 후, 귀가 더욱 밝아진 것 같다. 들리지 않던 소리까지 더욱 자세히 들리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앞쪽에서 들리는 커플들의 대화 내용 같은 것이 마치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기묘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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