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나먼 방계의 친척이자,

이제 마지막 남은 신뢰할 만한 후계자에게. 




우리 가문에 몰락이 찾아왔다.


우리 가문의 대저택을 기억하느냐. 언덕 위에서 웅장한 자태로 영지를 내려다 보던 모습을 말이다.

나는 옛날부터 온갖 전설이 무성한 이 저택에서, 향락과 사치에 젖은 평생을 살아왔다.


허나, 이런 방종에도 결국은 질려버렸지.


...인정하마. 나는 어리석었다.

인간의 이성과 질서에 의해 그어진 선을 한참이나 넘어버리고 말았더구나.


나는 지금이라도 이러한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네게 편지를 보내고자 한다.

답신할 필요는 없다. 이 서신이 네게 닿을 때쯤, 나는 그저 무덤 아래 묻힌 한 줌의 잿더미일 뿐일 테니...



우선 이 글을 잘 읽어 두거라. 어차피 부질없지만, 네 인생을 지금이라도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지.

내가 보증하마. 이 밑의 글을 눈여겨보고, 머릿속에 마치 낙인처럼 새겨놓는다면,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면할수 있을 것이다.


네가 이 편지를 받을 때쯤, 방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자에게 물어라. 무엇을 하러 왔노라고.


그자가 가문의 구원을 위해 왔다 하면, 내치거라. 고용인을 부르건, 위협하건 간에, 네 집에서 쫓아내거라. 다시는 오지 못하게, 썩 꺼지라고 소리쳐라. 단지 네가 방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을 열게 두지만 않는다면 쉬울 것이다.

그자가 까마귀 문장을 보여주겠노라 하면, 잘 구슬리거라. 내일 다시 오라 하면 순순히 돌아갈 것이다. 문앞에 떨어진 문장을 주워 화로에 태우거라.

그럴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겠지만, "공허를 갈망하는 자 횃불을 바칠지어다" 라고 중얼거리는 광인이 온다면, 어떻게든 해 보거라. 나도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해 줄 방도는 없구나. 가능한 한 방을 밝게 만들고, 커튼을 쳐 창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거라.



약 2~3일 후에, 역마차 한 대가 도착하고, 비루한 인상의 노인이 마부석에서 내릴 것이다.

최소한의 짐만을 싣거라. 그는 너에게 호의적이지만, 굳이 자극해서 좋을 것은 없다.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의 집사였기도 하고.



우리 가문의 영지로 향하는 여정길은 고될 것이다.

허나 너는 마지막 상속자이자 후계자로서, 이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도적떼가 달려들거나, 네 재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행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려고도 하겠지.

집사에게 의지하게. 그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대처해 줄 수 있을 것이니.



도시를 지나게 된다면 근처의 모든 등불을 끄고, 밖을 내다보지 말거라.

도시 끝자락의 사서에게 들러, 세 권의 책을 받거라.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가방에 담아 두거라.

너에게 중요한 책일 것이다.


어촌을 지날 때는 숨을 참거라.

즉각적으로 그 역겨운 어부들과 생선 썩어가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게다. 아편에 절어있던 내 감각조차도 깨워버릴 만한 악취이니 말이지.


농촌을 지난다면, 하룻밤 묵고 가도 좋다.

단, 갖은 핑계를 대며 그들이 권하는 음식을 거부하거라.

다음 몇 주를 속을 게워내며 보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짙은 심록의 숲을 지날 때면 그저 눈을 감고 자신에 집중하거라.

잡념을 떨쳐내는 법만 안다면, 그곳보다 대처하기 쉬운 곳은 없을 것이다.



이제 숲을 지나면, 깊은 골짜기에서 한 명의 사람을 만날 것이다.


첫째로, 중갑옷을 걸친 기사.

둘째로, 겉옷을 걸치고 권총을 들고 있는 강도.


이는 내 미리 고용해 놓은 용병이니, 마차에 태워 함께 영지로 향하도록 하여라.

허나 우리 가문의 영지로 향한다는 것은, 이들도 평범한 이들이 아니란 뜻이다.

항상 경계하거라.



기사와 동행할 때는 절대, 절대로 그와 대화를 하지 말거라.

무언가를 만지작거리지도, 움직이지도 말고, 그저 부동자세로 앉아만 있거라.

눈도 마주치지 말고, 그가 의심할 모든 짓거리를 해서는 아니 된다.


강도와 동행할 때는 눈을 떼지 말거라.

네가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에도,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도,

총알은 눈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필요하다면 약간의 농담을 나누어도 좋다. 하지만 그의 뒤틀린 유머 감각은 나조차도 쉽지 않더군.



어느덧 영지의 폐허가 된 저택과, 교차로에서 기다리는, 이전에 본 이와 다른 용병 한 명이 보일 것이다.

이제 기사와 강도 두 명과 동행하거라.


영지에 들어서는 순간, 가주의 의복을 벗지 않고,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실수는 결코 용서되지 않는 법.



우리 가문의 대저택을 기억하느냐, 언덕 위에 웅장히 서 있던 그 자태를?

이젠 혐오스러운 흉물일 뿐이다!


내 간청하마. 제발 돌아와 다오.


내 자리를 계승하여,


저 시커먼 손아귀로부터 우리 가문을 구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