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구역감과 두통에 간신히 눈을 떴다. 내 손을 붙잡은 하얀 손과 교복, 나를 내려다보는 여자애가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누구더라. 기억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려 하면 머리가 부서질 듯이 아프다.


 생각났다. 아연이구나. 삼 년 전 나를 떠난 내 친구다. 깨진 기억 조각 몇 개가 돌아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내가 이 일을 겪는 것이 처음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나와 아연이가 자라온 곳이다. 이미 죽은 친구와 함께임에도 모든 게 자연스러운 것만 같다. 우리의 등교길, 커다란 느티나무, 저 과일가게... 나란히 걷는 우리 둘까지 정말이지 모든 게 그대로다.


 멍하니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아연이를 본다. 그 애는 삼 년 전 모습 그대로, 가슴팍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저 애를 닮아 예쁘다. 생전 차가웠던 그 애의 손은 너무 따뜻해서, 내 가슴은 터질 듯이 아려온다. 


 말없이 걷던 그 애가 주머니에서 구형 휴대전화를 꺼내 날짜를 보여준다. 


4월 16일.


 다시 한 번 머릿속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기억 조각을 찾는다. 오늘이 저 애의 기일이구나. 매년 기일마다 나를 찾아오고 있구나. 그제야 퍼즐이 맞춰진다. 


 어느새 그 애가 울고 있다. 눈물이 발치에 후두둑 떨어지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통증은 온몸으로 번져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이럴 때가 아닌데. 아연이를 안아 달래줘야 하는데. 이제 나는 너를 놓았으니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해야 하는데. 그치만 나도 보고 싶었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한참을 서럽게 울던 그 애가 다시 휴대 전화를 들더니 화면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휴대 전화 화면 위로 눈물이 툭 툭 떨어진다.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 내민 휴대전화 속 사진. 아연이의 납골당인가 보다. 뭐가 그리 좋은지 환하게 웃는 우리 둘의 사진, 그리고 옆에 놓인 이름 세 글자. 김연우.




 ...이건 내 이름인데?


 내 표정을 본 아연이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진다.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머리를 때리고, 억지로 끼워 맞춘 커다란 퍼즐이 산산조각나는 걸 느낀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 왜 내가 아닌 너라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마지막일 그 애의 얼굴을 기억하려 애쓰면서 나는 눈을 감는다. 그 애가 무언가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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