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산에서 깨질듯한 편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낯설지만 묘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산에서, 나는 앞에 있는 표지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통 칠흑 같은 어둠 사이에서 시대에 한참 뒤처지는 백열전구가 간신히 밝혀주는 표지판에는
흔한 경로 안내나 "관절에 좋은 동작" 따위를 알려주는 그림 대신 알아들을 수 없는 안내문이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에 ■■ 동작"을 나타내는 사지가 비틀린 ■■의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에 섬칫 놀라며
나는 앞서 본 그림을 잊으려는 듯 안내문에 몰입하였다.
"혼수산 이용 탈출 안내 규칙"
가: 상황 인지
1. 귀하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 표지판을 읽고 있다면 귀하는 ■■■■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귀하는 모종의 이유로 이곳 혼수산에 진입하였으며 이곳은 귀하가 알던 곳이 아닙니다.
기존에 귀하가 알고 있던 상식이나 물리학적 법칙은 이곳에서 성립하지 않으며, 이점을 최우선으로 인지해야 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원인: 심야 산행 중 하산, 4시간 이하 수면 후 기상, 자살 기도, 과다출혈, ■■
2. 원래 귀하가 알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이곳 "혼수산"을 벗어나야 하며,
산의 경사는 완만하나 귀하를 방해하는 ■■의 위협을 따돌리는 것은 고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는 귀하의 잠재의식을 기제로 안내문으로써 귀하의 탈출을 간접적으로 도와드리고 있사오니
이 표지판에 적힌 내용만 전적으로 신뢰하고 행동하셔야 합니다.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나: 행동 수칙
1. 소리내지 마십시오.
이곳의 모든 것은 귀하의 잠재의식의 발현 또는 귀하의 탈출을 방해하는 ■■입니다.
귀하 외의 인간은 없으며 인간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당신에게 말을 걸더라도 대답하지 마십시오.
귀하의 대답을 바탕으로 학습하여 그 후에는 와해된 언어와 조잡한 기호가 아닌
더욱더 교묘한 방식으로 귀하의 탈출을 방해할 것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외양: 다지증, 사족보행 이족보행, (무언가가 흩뿌려져 보이지 않는다.) , 표정 변화가 없음
무릇 새가 그물 치는 것을 보면 헛 일이겠거늘
2. 의심하십시오.
이곳 혼수산에는 하산 도중 수많은 갈림길이 있습니다. 잘못된 갈림길은 무한히 길거나 ■■■할 것입니다.
귀하의 직감을 믿되, 완전히 신뢰하지 마십시오.
만약 잘못된 길로 가는듯한 느낌이 들거나 불쾌감이 늘어난다면,
소리치십시오.
■■■개의 귀가 듣고 있습니다.
그 길을 피하고 지나가지 말며 돌이켜 떠나갈지어다.
3. 길 위로만 다니십시오.
"길"이란 "풀"이 나지 않고 ■■가 없는 짚으로 된 길을 말합니다.
원래 길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웅크려 눈을 감고 욕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그럼에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커지기만 한다면, 눈을 파내고 이후 갈림길부터는 촉각에 의지하십시오.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을 사랑하느니라.
4. 돌아보지 마십시오.
어느 상황에서든 돌아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며 후회는 또다른 후회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뒤에서 무언가 느껴지더라도 안 보는 편이 낫습니다.
돌아보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면 나-3의 수칙을 따르십시오.
5. 만약 갈림길 도중 위치를 알고 싶다면 소지품을 알아보기 쉬운 곳에 놔두십시오.
“전진” 도중 그 물건을 만났다면, 선택하십시오.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다: 갈림길 특수사항
1. 이정표가 있을 때 (나-1 의 수칙을 어겼을 때 더 자주 나타남)
귀하를 도와드리는건 이 안내문이 전부입니다.
확신할 수 없으나 이정표를 믿지 마시고 반대로 갈 것을 권장합니다.
이정표: 목재에 페인트, 석재에 페인트, 살점에 피
2. 갈림길이 3가지 이상일 때
귀하의 직감만을 믿을 때입니다.
앞으로 몇 번 이내로 출구를 찾길 간절히 바라십시오.
이후 마주치는 갈림길마다 선택지가 하나씩 늘어날 것입니다.
혼수산의 출구는 특정할 수 없으며 일반적으로 몇 개의 갈림길을 통과해야 나타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통과해야 할 갈림길 개수: 5, 8, 13, 21, 34, 55, 89, 2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 있느니라.
행운을 빕니다.
갑작스러운 내용에 당황함도 잠시, 눈을 돌리자 저 멀리서 무언가 내려오는것이 보였다.
첫작이고 이글보고 감명받아서 거의 베끼듯이 썼음
https://m.dcinside.com/board/napolitan/442?headid=&recommend=&s_type=subject_m&serval=%EC%82%AC%EC%A1%B1%EB%B3%B4%ED%96%89
훨씬
명작이니까 이거 두번보셈
각 수칙의 마지막 문장은 성경에서 본것 같은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