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앞칸 문을 열고 할머니 한 명이 온다.
캐리어를 끌고 있다.
할머니는 꾸벅 인사한다.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다시 꾸벅 인사하고 다음 칸으로 간다.
다시 주위는 조용하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다른 평범한 날 같으면 금세 잊어버렸을 것이다.
오늘은 다른 평범한 날과 뭔가 다르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간다.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다음 칸에서 할머니가 꾸벅 인사하고 다음 칸으로 간다.
무엇을 기대했던 거지?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다음 칸 문을 열고 할머니 한 명이 온다.
캐리어는 없다.
할머니는 꾸벅 인사한다.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다시 꾸벅 인사하고 이전 칸으로 간다.
어린애 한 명이 낄낄 웃는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할머니는 왜 다시 돌아왔을까?
나는 할머니가 온 칸으로 간다.
어린애 한 명이 낄낄 웃는다.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다음 칸에서 할머니가 꾸벅 인사한다.
어떻게?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나는 생각한다.
할머니가 두 명인가?
내가 그저 방향을 헷갈렸나?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생각에서 빠져나와 꾸벅 인사하는 할머니를 본다.
어느 칸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할머니는 다음 칸으로 간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무신경한지 이해할 수 없다.
휴대폰으로 임영길을 검색한다.
화가와 목사와 역사학자.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할머니는 꾸벅 인사하지 않는다.
깜빡이지 않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주위 사람들 몇이 우리를 곁눈질한다.
할머니는 자기 키만한 캐리어를 끌고 있다.
왜 그러세요?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할머니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친다.
어린애 한 명이 낄낄 웃는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 앉아 있다.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가? 왜 나를 보고 웃는가? 왜 사람들은 보고만 있는가?
내게 다가와서 무슨 짓을 하려는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저 큰 캐리어는 무엇에 사용되는가?
어떻게 내 휴대폰을 보았는가? 어떻게 앞칸에서 뒷칸으로 순간이동했는가? 어떻게 사람들은 이토록 무신경한가?
너무나 많은 질문, 그러나 너무나 짧은 대답: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잠깐,
지하철이 정말 질주하고 있는가?
지하철은 질주하지 않고 있다.
나는 승강장에서 내리고 있다.
이곳은 어느 역이고 내 목적지는 어느 역인가?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할머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다.
할머니가 창문을 두드린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나는 어딘가를 걷고 있다.
심장은 빠르고 호흡은 가쁘다.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애쓰지만 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불분명한 시야에서 누군가 선명하게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할머니의 얼굴이 새빨갛다.
금방이라도 펑 하고 터져 버릴 것 같다.
할머니는 질주하고 있다.
나는 질주하고 있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가게로 들어간다.
나는 사람 한 명을 붙잡고 횡설수설한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내 귀에는 그저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는 건 그저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모든 것이 전부 나를 향해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모두의 얼굴이 전부 새빨갛게 변하며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모두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고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모두 할머니의 얼굴이 되어 나를 노려보다가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
펑
다시 주위는 조용하다.
...
...
...
...
...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나는 다시 지하철에 앉아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질주하지 않는다.
나는 지하철에 서 있다.
나는 지하철에 서 뒷걸음치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서 뛰고 있다.
나는 지하철에앉아 뛰고 있다.
임영길 선생! 임영길 선생!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본다.
어린애 한 명이 낄낄 웃는다.
지하철은 질주하고 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내용으로 소름을 줄 수가 있지? 진짜 신기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