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 5월 1일


소망대교에서 내비게이션에 <<해서 어린이대공원>>을 입력하려던 그녀는 잠시 손을 멈추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라는 호기심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기에 그러했으리라.

그녀는 내비게이션에 <<해서 ㅇ>>까지 쓰던 걸 지우고 <<저승>>이라고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다.


---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그녀는 잠시 움찔했지만 재빠르게 내비를 재부팅했다. 가끔 내비 화면에서 손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녀는 어릴 떄부터 운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으니까.

<<지옥>>이나 <<사후세계>>같은 걸 시도해 볼 깡은 없었다.

한참 운전하던 그녀는 잇사이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태워달라고 하지 마라, 제발 태워달라고 하지 마.

저 좆같은 잼민이를 태우면 내비게이션을 포기해야 한다.

어린이날과 어린이대공원은 뗼레야 뗄 수 없는 짝꿍같은 존재다.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잼민이쉑이 대공원에 데려다달라고 하는 가능성이 올라갈 것 같다는 논리적이지만 논리적이지 않은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대공원 가고 싶어요.


그럼 그렇지. 하지만 그녀가 뭘 할 수 있는데. 욕하고 괜히 얼굴 찡그리는 거 말고 그녀가 뭘 할 수 있는데. 그녀는 씨발거리면서도 그 잼민이를 태웠다.

하지만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긴 머리카락 취향이었기에, 그녀는 숱 많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르고 있었다.

50%의 확률로 살 가능성을 포기하는 거 말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녀는 차 밖으로 나올 떄 이미 이어폰을 내비게이션에 연결해 놓았다. 내비게이션을 왜 꺼야 해?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지. 그리고 그 이어폰(마침 줄은 까만색이었다)은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혹시 이어폰에서 음이 새어나갈 가능성까지 그녀는 생각해놓았다.

7살때부터 14살떄까지 부모님을 따라 프랑스 마르세이유에 체류한 그녀는 프랑스어가 굉장히 능숙하다. 그녀는 내비게이션의 언어를 프랑스어로 바꿔놨던 것이다.

잼민이쉑. 세트 부아튀르 느 스메느라 파 쥐스코 파르 다뮈즈망, 네가 이게 뭔소리인지 알 수 있겠냐 이거야.

너 따위가 사회에서 구르고 구른 이 누나를 이길 순 없다 이거야.


귀엔 이어폰이 꽂혀 있고, 뒤에는 잼민이가 타 있다.

그녀는 갈림길을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들으며 회피했다. 왼쪽으로 핸들을 틀며 그녀는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었다.

눈 앞에 안개가 자욱한데 사슬이 보인다. 소망대교는 여기에서 끝이다.

난 살아남았어, 살아남았다고 씨부랄 것들아.


그녀는 마침 오늘은 농구화를 신고 있다.

평소처럼 7cm 힐을 신었다면, 아니 그냥 구두라도 신었다면 저기까지 뛰어가는 건 어려웠을 거다. 평소처럼 원피스, 아니 청바지라도 입었으면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몇 번이고 말했듯, 그녀는 아주 운이 좋았고, 그래서 가장 편한 츄리닝 차림이었다. 그녀는 차를 주차하고, 내릴 준비를 했다. 핸드폰 내비게이션이 좀 아깝지만 챙겨갈 여유는 없다. 목숨이 문제이다. 핸드폰은 여기 두고 몸만 가자. 뒷좌석에 놓여 있는 명품백도 포기하자. 트렁크에 있는 스키 세트도 포기하자. 스키 세트라면 모를까 명품백은 집에 영수증이랑 보증서가 있으니 시에서 보상을 해 주겠지.


그녀는 튕겨나가듯 차에서 몸을 날렸다.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가 후두둑 떨어졌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짐승처럼 잽싸게 사슬을 뛰어넘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재빠르게 질주했다.




소망대교에서 30m 떨어진 순간,

전력으로 질주하던 그녀의 몸이 퍼뜩 멈추었다.

그녀는 다시 소망대교로 천천히 돌아갔다, 바르작거리듯 끌려가며.

그녀의 귀에는 아직도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귀에서 피는 아닌, 무언가 진득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라는 건 그걸 보는 걸 버틸 수 없기 떄문에.

그걸 듣는 것 역시 버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