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엄청나게 올라 평범한 월급쟁이 월급으로는 집을 산다는 것이 엄두가 안 나는 이 시대. 어떻게든 집을 구하려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들을 돌아다니며 매물을 찾아다녔지만, 내 조건에 맞는 집은 전혀 없었다. 이제 여기가 마지막인가?


딸랑!


어서 오십시오!”


들어서자마자 사람 좋아 보이는 공인중개사가 맞이해줬다. 나를 위해 이런저런 매물을 보여줬지만, 이번에도 내 조건에 맞는 집은 없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떠나려는 순간, 사무소에서 숨겨놓은 매물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잠깐, 여기는 왜 안 보여주시는 거죠? 가격도 적당하고, 제가 원하는 집 같은데요.”

, 여기도 원래라면 좋은 아파트입니다만, 함부로 보여드리기 그런 아파트입니다.”

원래라면? 함부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공인중개사가 팔기 꺼리는 아파트라니, 도대체 무슨 아파트지? 살인사건이라도 난 건가? 아니면 자살? 하지만 공인중개사의 말에서 나온 이유는 황당했다.


아파트 내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하나 있는데, 상관없다고 하시면 못 보여드릴 것도 없습니다.”

규칙이요? 저 규칙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분리수거도 잘하고 벌금 내본 적도 없고, 법규 어겨본 적도 없어요. 보여주시죠.”


공인중개사를 통해 아파트를 구경했다. 외관부터 신축 아파트처럼 깨끗한 게 마음에 들었고, 내부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거기다가 내가 원하는 조건도 충족되어서 혼자 살기 딱 좋은 아파트였다.


딱 하나 특이점이 있다면 엘리베이터고 게시판이고, 12시가 될 때마다 계단을 통해 뛰어다니는 사람 때문에 소음 공해 민원이 있으니, 뛰는 걸 자제하거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그 규칙하고 관련 있을까? 공인중개사에게 물었지만, 그가 말한 건 비슷하다면서도 좀 달랐다.


, 비슷합니다. 12시에 절대 나가지 말고, 12시가 되는 즉시, 1분 동안만 숨을 참으라는 규칙입니다.”

숨을요? 왜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런 규칙이 있다는 것밖에는. 그래서 보여드리기 좀 꺼리는 겁니다.”


이상하긴 했지만, 나쁜 공인중개사라면 이런 점을 알려주지도 않고 얼른 팔아치우려고 할 텐데 오히려 사실대로 말해주고 나를 걱정해주는 모습이 오히려 믿음이 가서 계약하기로 했다. 지키라는 규칙도 별거 아닌 규칙이니까.


입주하시고 무슨 일 있으시면 꼭 연락해 주십시오.”


공인중개사는 계속 마음이 쓰이는지,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연락을 달라고 했지만, 입주하고 나서 크게 문제는 없었다. 12시까지 자지 않고 버티면서 1분만 숨을 참는 거와 동시에 계단을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점 빼고는.


어느 날,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놈이 미친놈처럼 12시마다 규칙적으로 뛰어다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관리사무소에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 같고, CCTV를 계단마다 설치하는 건 현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혹시 12시에 숨을 참아야 하는 규칙과 관련이 있나 싶어 물었더니, 이웃들은 마구 웃기 시작했다.


총각은 그런 거 안 믿게 생겼는, 진짜로 믿고 있나 보네!”

그런 말도 안 되는 규칙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난 그냥 푹 자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만!”

나도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숨 잘 쉬고 있는데 잘 살아있잖아?”

"그러고 보니 요새 은주네가 요새 통 안 보이네."

"그러게? 여행 간 거 아냐?"

"좋겠다. 가족이 단체로 여행이라니."


이웃들의 말을 들으니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규칙이긴 했다. 그걸 안 지킨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 리도 없고. 설마 하지만 그 공인중개사. 사실 아는 사람에게 주려고 숨겨둔 아파트인데 내가 발견해서 어쩔 수 없이 공개한 거 아닐까? 착해 보이긴 했지만, 사람 일이라고는 모르니까.


그날 밤. 시계를 보니 1159분이다. 원래라면 12시가 되는 순간, 1분 동안 숨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아까 이웃들과의 대화도 그렇고, 직장인이 12시까지 안 자고 버틴다는 게 너무 힘든 일이라, 실험 삼아 일부러 무시할 생각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면 날 놀린 공인중개사를 욕하면 되겠지.


58. 5912.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