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폰을 보자 밤 10시다. 밤까지 일하면 저녁을 먹었음에도 마칠 때쯤 배가 고프다. 배달 어플을 켰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야밤에 먹을만한 음식은 한정되어 있었다. 치킨 피자 족발 햄버거…솔직히 질린다. 뭔가 다른 게 먹고 싶은데.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띈 간판이 있다. 하얀색 간판이었는데, 좀 번지긴 했어도 붉은색 글씨로 ‘파스타’라고 쓰여있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 미적 감각이 없는 건가? 차라리 검은색 글씨로 하지. 그것보다 이 동네에 파스타를 이렇게 늦게까지 하는 데다가 있었나? 이런 가게는 장사가 너무 잘되거나, 안돼서일 텐데…아마 후자겠지. 안이 보이지 않게 블라인드까지 쳐진 모습에 들어가는 게 맞나 싶었지만,


꼬르륵.


배고픔이 머리를 이겼다.


딸랑.


맘에 안 드는 외관과 반대로 안쪽은 놀라웠다. 은은한 샹들리에 불빛은 은은한 분위기를 냈고, 하얀 천이 덮인 테이블과 하얀 나무 의자들은 고급스러웠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본 고급 레스토랑 같았다. 그때 주방에서 거구의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어?”


어울리지 않지만,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요리사 모자를 쓴 남성은 엄청난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얀 마스크를 쓰고 있어 표정을 알 순 없었지만,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알바인 나도 저런 눈빛을 한 적이 있다. 마감 다 하고 퇴근하려고 하는데 손님이 들어왔을 때의 눈빛이다.


“이미 마치셨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올게요.”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앉으십시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발이 안 떼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다. 안 떨어진 입을 겨우 벌려 대답했다.


“예?”

“영업 중입니다. 앉으십시오.”


당장 나가고 싶었지만, 앉으라는 말을 무시하고 나간다면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근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거구의 요리사는 주방으로 들어갔다가, 메뉴판과 붉은색 음료가 든 병과 와인잔을 쟁반에 담아 가져 왔다. 생긴 건 당장 내 머리통을 깨부술 것처럼 생겼는데, 친절하게 세팅을 해주는 모습이 영 어울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를 했음에도 요리사는 반응하지 않고 내 옆에 서 있었다. 양손을 다소곳하게 모은 상태로.


“크흠.”


부담스러워서 헛기침하고 가장 빨리 먹고 나갈 수 있는 걸 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메인 메뉴가 하나밖에 없었다. 글자가 좀 번지긴 했지만, 메뉴판에 있는 유일한 메인 메뉴는 파스타였다. 파스타도 종류가 있을 텐데, 메뉴에는 심플하게 파스타 하나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비싼 파스타. 그 외에는 음료나 술, 같이 곁들여 먹을 감자튀김 같은 사이드메뉴뿐이다.


“메뉴가 이거 하나인가요?”


조심스레 물었지만, 요리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좀 언짢아하는 것 같기도. 안 되겠다. 그냥 파스타 하나 시키자.


“파스타 하나 부탁합니다.”


순간, 요리사는 내가 들고 있던 메뉴판을 낚아챈 다음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손님을 협박해서 음식을 강제로 먹게 하고, 말도 안 되는 돈을 갈취하는 요리점인가보다. 나가야 하나? 아니면 폰으로 연락을?


달그락 달그락.


안쪽이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요리가 한창이다. 틈을 노려 도망치자.


딸랑!


일어나려는 순간, 누군가 또 들어왔다. 덩치 요리사와 반대로 웨이터 옷을 입은 삐쩍 마른 장신의 남자였다. 마치 막대기 같다고 해야 하나? 내가 쳐다봐서인지 장신의 남자도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 의미지? 아니 뭔가…그렇게 남자와 눈을 바라보는 순간,


“어디 갔다 온 거야! 손님이 왔는데 네가 없어서 주방장인 내가 주문하고 세팅까지 했잖아!”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주방 밖으로 나온 요리사가 막 들어온 남자에게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장신의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나에게서 눈을 떼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요리사 역시 더 화를 내지 않고 투덜대며 다시 주방 안으로 들어가고, 매장은 다시 조용해졌다. 손님이라도 근처에 있으면 좋으련만, 나 혼자 있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


거기다가 저 웨이터. 카운터 안쪽에서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감시하는 건가? 이래서는 도망가거나 핸드폰을 꺼내지도 못하겠다. 목이 타서 미리 나온 붉은 음료수를 먹으려고 잔을 따랐지만, 냄새를 맡고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음료수인지 모르겠지만 비린 향이 가득했다. 마시기 싫어서 옆에 놔뒀다. 그걸 지켜봤는지, 카운터에 있던 웨이터가 나에게 다가왔다.


“혹시 저희 쥬스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목이 마르지 않아서요.”

“그렇습니까? 음식이나 음료수에 이상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쳐다보고 말하긴 미안해서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자, 웨이터는 알겠다는 듯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빨리 음식을 먹고 나가자. 너무 불편한 곳이다.


띵!


주방 쪽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웨이터가 파스타가 담긴 접시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붉은빛이 강렬한 파스타였다. 토마토소스 파스타 같은 건가? 아니, 그런 정통적인 파스타라기보다는 급식실에서 먹을 퀄리티의 스파게티에 가까웠다. 소세지도 있고, 면 사이사이에 작은 고기 같은 게 섞여 있는 그런 스파게티. 절대 이 돈 주고 먹을 퀄리티가 아니었다.


“꿀꺽.”


하지만 이미 나온 이상 어쩔 수 없다. 이번 파스타 역시 비린 향이 났지만, 나를 쳐다보는 웨이터의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자연스레 입에 넣었다.


“웁?!”


한 입 먹었을 때, 입안에 가득 퍼지는 비린 맛과 짠맛에 머리가 아팠다. 맛을 떠나서 이걸 삼킬 수가 있을까의 문제였다. 목을 넘기는 순간, 몸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내보낼 것 같았다. 그럼, 가게 안이 난리가 나겠지. 겨우 삼키고 온몸의 신경을 집중하여 토하지 못하도록 몸을 진정 시켰다.


"하아. 하아."


다행히 토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웨이터를 부르기 위해 손을 들었다.


“예. 부르셨습니까?”

“죄송한데, 이거 맛이 좀 이상해서요. 먹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다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웨이터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지만, 내 파스타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땀? 내가 땀을 흘릴 정도로 맛이 없던가? 스스로 땀을 이렇게 쏟았다는 거에 놀라움을 느낄 때쯤, 주방에서 나온 웨이터가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새로 만들기에는 소스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소스 없이 만들어드릴까요? 따로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네. 부탁해요.”


여전히 기분 나빠하는 목소리였기에 ‘아니오’라고 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웨이터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갔고, 이번엔 엄청 빠르게 새로운 파스타를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아까 강렬한 붉은 빛의 파스타가 아니라 아무 소스가 없는 면만 가득한 파스타였다. 아까처럼 맛이 없을까봐 걱정하며 한입 먹었다.


“오?”


맛있다.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만 친 것 같은데도 맛있다. 아까와 다르게 머리가 아프거나 그러지 않았다. 이상한 분위기에 눈치 보며 빠져 있던 위장이 슬그머니 배고픔을 호소했다. 만족스럽게 파스타를 먹은 다음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하겠습니다. 가격은 50,000원입니다.”


파스타치고 너무 비싸긴 하지만, 두 번째 먹은 파스타가 맛있었으니 줄 만하지. 카드 단말기를 보며 카드를 내밀자, 웨이터는 난처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만, 저희 가게는 카드를 받지 않습니다.”


어이가 없다. 현금 장사로 세금조차 안 내겠다는 저 마인드. 현금이 없었으면 난처할 뻔했으나, 비상시에 쓰려고 가지고 다닌 오만 원권 한 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밖에 나오고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핸드폰을 꺼냈다. 시간을 보니 이미 밤 12시다. 일하는 동안 무음으로 해놨던 탓에 부모님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전화를 걸어드리자.


“어. 엄마. 나야. 응? 아아. 무음으로 해놔서. 미안 미안. 식당에서 밥 좀 먹었어. 뭘 먹었냐면 파스타인데….”


통화를 하면서 가게 간판을 바라봤다.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글씨로 ‘파스타’라 쓰여 있는 촌스러운 간판. 잠깐만….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엄마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할 상황이 아니다. 내가 먹은 파스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