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셨네요 여기 근무하시겠다고 이력서 넣으신 분이죠? 마침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직원이 한 명 퇴사하는

바람에 인원이 부족했답니다. 우리 한복점이 다른 가게랑 다르게 지켜야 할 게 조금 많긴 한데 뭐 어려울 건

없을 거예요 거기다 위험수당도 있어요 괜히 주는 건 아니긴 하겠지만 암튼 자 이거 보면서 들어요.



1. 여기서 근무하는 중에 안 보이던 특수한 게 보이는 경우가 있어요. 여기가 좀 특별해서 갑자기 귀신이라던가

도깨비나 유령을 보게 되는 직원이 종종 있었거든요. 영안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시야에 나타나면 무슨 일이 있던


절대 반응을 하면 안 돼요. 반응만 안 하면 괜찮을 거예요. 그것들은 당신이 보는지 모르니까 팁을 주자면 항상 머릿속에

기억해요. 평소에 익숙해진다고 다가 아니라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거든요. 손님으로 위장한다거나 놀라게 한다든지


손님으로 오는 건 구별하기 쉬워요 얼굴을 보면 창백하거나 표정이 이질적이거나 그러니까 음 놀래키는 거는 익숙해지는

방법 밖에는 없네요 행운을 빌어요 아 혹시 반응해버렸다면 바로 저한테 말해요 되도록 빨리요. 퇴사 시키는 게 실종자

처리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겁먹은 표정이네요? 걱정 마세요 흔히 있는 일도 아니고 만일 그렇게 되면 위로금은 드릴게요.



2. 매장에 마네킹이 참 많죠? 그거에 대해서도 말할 게 있는데 집에 구체관절인형 같은 거 있어요? 없다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설명할게요 전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매뉴얼에도 안 적어놨던 건데 어떤 직원이 마네킹을 자기 인형 마냥 대화를

거는 바람에 그것들이 학습을 해서 그만..그러니까 마네킹은 그냥 마네킹처럼 대하면 돼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리고


마네킹마다 걸려있는 옷 말인데 한번 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당일에는 원래대로 걸어두세요. 저 옷이 그냥 장식으로 걸어두는 게

아니라서 하루가 넘어가면 상당히 귀찮아져요. 차라리 아까 말했던 것처럼 학습을 하는 게 나을 정도로



3. 가끔 특이한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한복을 입었는데 너무 옛날 것 같다든가 키가 많이 작거나 그런 손님이 오면

조용히 가게 내에 탈의실로 안내한 다음 위에 다이얼을 과거로 맞추고 들어가게 하면 돼요. 혹시나 싶어서 말하는 건데


궁금하다고 안에 들어갈 생각 절대 하지 마세요. 그렇게 들어간 직원이 있었는데 시체도 못 찾았어요. 그러고 얼마 있다가

책에서 글로 나마 이름이라도 찾긴 했어요. 무슨 실록이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 나네



4. 일하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가게 문을 꼭 잠그고 가요. 저기 있는 푯말도 붙이고 손님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여기

오는 손님은 다들 이해할 테니까 손님이 혼자 가게에 있으면 아주 위험하거든요. 문을 닫아두는 이유는 당신이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안에서 나오는 걸 저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5. 아까 말했던 탈의실이랑 관련 있는 건데 가게로 오시는 분들 중에 옛날 한복을 입고 막 뛰어오시는 경우가 있어요.

긴 말 안 할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요. 보통 여기서 그런 옷을 입고 헤매는 손님은 갑자기 낯선 곳으로 왔기 때문에


표정을 보면 당황한 표정에 두리번거리면서 천천히 와야 정상인데 뛰어오는 거면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오는 거겠죠.

보면 느낄 거예요. 비장한 각오를 한 얼굴에 아 어쩌면 아는 얼굴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교과서에서 봤던 사람이라던가


여튼 함부로 과거를 바꾸면 어떻게 되겠어요? 단순히 미래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이 공간 자체가 틀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안에 있는 당신이 어떻게 될지는 뭐 본인 몸으로 직접 느끼겠죠.



6. 여기에 있는 한복은 각각 대여용과 구입용이 나눠져 있어요. 나눠져 있는 이유는 관리 때문에 그래요. 안에 있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손님이 다른데 만일 당신이 그걸 착각하고 다른 걸 건네줘서 뉴스에 가게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기라도 하는 날엔 당신이나 저나 그리 유쾌하진 않겠죠?



7.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인데 가게에 있는데 문득 밖에 풍경이 이질적이라고 해야 하나 정상이 아닌 거 같으면 가게 안에 있는

휴게실로 가서 문을 잠그고 웅크려서 1분 동안 숨을 참아야 해요. 만일 1분 동안 그러고 있었는데도 밖에 풍경이 그대로면

휴게실로 다시 와서 저한테 전화 주고 뒷문으로 퇴근하면 돼요. 그날은 일한 걸로 칠 테니 걱정 마시고요.


이 과정은 아주 신속해야 해요. 이것도 탈의실이랑 관련된 건데 제가 과거 얘기만 했잖아요. 남은 하나는 말 안 해도 아시죠?

아마 다음날 오면 가게가 난장판이 나있을 건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안 써도 돼요.




8. 이제 손님들에 관한 설명이네요. 가게부터가 특이하다 보니 손님도 조심해야 할 게 많아요. 오기 전에 멀쩡하다가

가게에 들어오고 나서 머리를 짚으면서 두통을 호소하거나 주저앉는 손님이 있으면 휴게소 내에 비치된 생수를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다고 하면서 주면 돼요. 그거 성수랑 같은 성분이니까 제가 예시를 든 것처럼 꼭 자연스럽게


얘기해요. 그것들 눈치가 빨라서 실수했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생수를 뿌려버려요. 너무 늦어서 그것도 안 통하면

뭐 휴게실로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야겠죠? 거긴 안전하니 그것보다 발이 빠르길 빌어요.




9. 챙이 있는 긴 모자를 눌러쓰고 살집 있는 여성이 가끔 찾아올 거예요. 와서 옷을 몇 개 입어 보고 계산대로 올 텐데

사는 옷 수에 따라 대처가 달라요. 옷이 1개면 "미천한 제게 옷을 팔아주셔서 감사합나다."라고 하고 2개면 "과분한


영광을 주셔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옷이 3개 이상이면 "영원히 뼈에 새길 은혜입니다." 이 3개를 각각

말해야 해요. 토시 하나라도 틀리게 되면 음 그녀는 가방을 가지고 다닐 텐데 그 가방의 소재는 아주 특이하면서도


흔해요. 그 가방은 용감한 가방이라고 불리는데 그녀는 용감한 사람을 좋아해요. 여기까지 설명하면 제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죠?



10. 매달 10일에는 제가 발주한 한복이 도착해요. 배달원이 갖고 올 거예요. 보통은 당신한테 사인만 받고

가는데 절대 말을 걸면 안 돼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슨 소리를 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람..아니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보고 있으면 말을 엄청 걸고 싶을 텐데 참아야 해요. 당신이 말을 걸면 그것도

언제 묵묵히 일했다는 마냥 다가올 건데 가까이 본 그 몰골은..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거예요.


아직도 생생하네요. 누군가 시체를 한여름에 수백 일 동안 방치하고 그걸 벌레한테 뜯어먹게 하면 그 모습일까요?

중요한 건 당신은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차라리 죽어버리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미 말을

걸어버렸으니까..그렇게 되면 퇴사 처리는 제가 알아서 해드릴게요. 어차피 당신은 종이에 사인할 인지도 없을 거니까



11. 가게 위층에는 전시관이 있어요. 거기 있는 옷들은 제가 감당이 안 돼서 전시만 해둔 옷들이에요. 입지도 말고

혹여 누가 입으려고 하면 어떻게든 말리세요. 손님이 기분 나쁘다고 컴플레인 걸거나 나가도 괜찮아요. 그날

시체를 치우거나 실종자를 처리하는 거보단 나을 거니까 혹시 누군가 이미 옷을 입고 있거나 권하고 있다면


거기서 더 해보려 하지 말고 조용히 휴게실로 가서 저한테 전화 주세요. 괜한 정의감에 불타는 것보단 스스로의

목숨을 우선해 주세요.




자아 여기까지 어렵지 않지요? 당신은 여기서 저랑 오래 일했으면 좋겠어요. 저번 직원은 너무 빨리 사라지는 바람에

대처할 틈도 없었거든요. 직원 매뉴얼은 잘 보관하시고 저는 이만 가볼..네? 여기 없는 게 있으면 어떡하냐고요?

제가 있는 동안은 그런 일 없었는데 혹시 모르니 그런 일이 생겨서 살아남으면 규칙서에 새로 추가해 주세요.

행운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