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계함은 500~2,000톤급의 수상 전투함을 말한다. 그보다 큰 것은 호위함, 그보다 큰 것은 구축함, 그보다 큰 것은 순양함이다. 수중음향은 음속이 느린 쪽으로 굴절된다. 그리고 음속은 염도, 온도, 해양 경계층, 수압에 아주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잘 전달되지 않는 음영이 존재한다. 따라서 미약한 소리도 잘 들을 수 있도록 헐마운트 소나가 크고 성능이 좋아야하며 이것도 모자라서 함선 뒤 수백에서 천몇백m 늘게 늘어트리는 선배열 예인소나나 심층도에 갇힌 잠수함의 소음을 듣기 위해서 가변심도소나까지 운용한다.

그런데 이런 크고 좋은 소나를 복수로 운용하는 함선은 그 크기가 커야한다. 따라서 냉전기를 기준으로 강대국들은 3,000~5,000톤급의 호위함을 대잠함으로 사용했으며 21세기 들어서 점점 더 조용해지는 잠수함에 대응하고 다양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호위함의 크기는 5,000~7,000톤급까지 커지고 있다.

그리고 언급했던 3,000~5,000톤급의 대잠호위함이나 8,000~10,000톤급의 구축함, 순양함, 심지어 1만톤급이 넘고 소나를 5~6개 이상 장비한 최신 원자력 잠수함도 대잠에 자주 실패했다.

잠수함에게 침투 혹은 피격 당할 때 잠수함을 탐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무능? 아래 사례도 다 무능해서 발생한 사건일까? 대잠전 자체의 난이함으로 발생한 문제일까?

첫째, 미 항공모함 전단이 일본해에서 중국 잠수함에게 추격 당한 사건

둘째, 대서양을 초계하던 영국 뱅가드급 전략원잠이 프랑스의 르 트리옹팡급 전략원잠과 충돌한 사건, 이들은 소나가 3~4개 아니라 그 이상이다. 첨단 소나로 도배하다시피한 양국 잠수함이 수중 충돌했다.

셋째, 2009년에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방공구축함 6번함 존 s.매케인이 끌던 예인소나가 중국잠수함과 충돌한 사건. 헐마운트 소나와 달리 예인소나는 함선에서 멀리 떨어트려서 함선에서 나는 소음의 영향에서 멀어질 수 있고 무엇보다 수심을 조절할 수 있어서 훨씬 효율이 좋은 소나의 종류이다. 잠수함을 탐지 위해 이지스함이 끌고다니던 예인소나가 잠수함과 충돌한 것이다.


넷째, 2006년 10월 26일 서태평양에서 작전하던 항공모함 키티호크 5마일 밖에서 중국 해군 쑹급 잠수함이 부상한 적이 있다. 부상할 때까지 항모전단에서는 탐지 하지 못했고 미 해군은 경악했다. 쑹급 잠수함은 원자력 잠수함도 아니고 디젤 잠수함인데도 항모전단 사이를 뚫고 부상한 것이다.

다섯째,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 해군은 감청을 통하여 아르헨티나 수뇌부가 포트 스탠리 근해에 209급 잠수함 산 루이스를 출동 시킨 사실을 알아냈고 대잠호위함과 대잠헬기를 대거 투입하여 수색했다. 심지어 시킹 대잠헬기는 착함하지 않고 수상함 헬기데크 위에서 호버링 하면서 급유 호스를 연결하여 주유하는 HIFR를 하며 10시간이상 연속 비행하는 신기록을 세우며 작전했지만 어뢰 공격을 세번이나 허용했고 그 때마다 탐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어뢰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호위함이 예인하던 어뢰기만기가 산 루이스가 발사한 어뢰에 산산조각이 났다는 것을 어뢰 기만기를 건져보고 나서야 안 뒤 였다. 무려 영국이 구 소련의 잠수함에 대항하기 위하여 건조한 전문 대잠호위함과 대잠헬기가 재래식 잠수함 1척에 농락 당한 것이다. 영국은 6월 14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200발의 어뢰와 수 백 시간의 대잠헬기 비행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놓쳤다. 해당 해역이 천해였기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에게는 숨을 곳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재래식 잠수함은 전쟁 개시 10여일 만에 장비 고장으로 철수했다. 아르헨티나 잠수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국해군은 잠수함을 컨택했다고 생각되면 바다에 어뢰와 폭뢰를 전쟁을 끝날 때까지 던져댄 것이다.

여섯째,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 해군의 브루클린급 경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는 미국제 섬너급 구축함 2척의 호위를 받았지만 영국해군 공격 원자력 추진 잠수함 HMS 컨쿼러에게 MK.8 553mm 중어뢰를 맞고 격침 당했다. 벨그라노의 전대는 컨쿼러가 벨그라노에 1,260m까지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하고 어뢰가 명중 할 때까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후 호위하던 구축함들이 벨그라노를 잡기 위해서 폭뢰를 투하하며 나섰지만 전혀 소득이 없었다.

일곱째,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파키스탄의 프랑스제 Daphné급 잠수함 PNS hangor가 인도의 수상함 2척을 격침한 사례. hangor는 인도 수상함대를 안 들키고 돌파했는데 심지어 FIJI급 순양함 Mysore의 바로 옆으로 지나가도 들키지 않았다. 71년 12월 3일, 인도해군은 소나를 탑재한 영국제 블랙우드급 대잠호위함 INS Khkuri와 INS Kirpan을 파견한다.  INS Kirpan은 어뢰가 자신을 지나치고 나서야 어뢰 공격을 감지했고 최고 속도로 해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때 남쪽에서 INS 쿠크리는 어뢰의 방향을 관측했다. 즉, 잠수함이 근처에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방위까지 알아낸 것이다 이 때 PNS Hangor는 두 번째 어뢰를 발사했고 용맹하게 공격을 들어오던 INS Khukri는 탄약고에 어뢰를 맞는다. 이를 본 INS Kirpan은 다시 폭뢰를 떨궈서 복수를 하기 위해서 들어왔지만 세번째 어뢰를 함미에 맞고 손상되어 현장을 이탈한다.

강대국 해군, 그 강대국이 만든 수상함을 썼던 중견국가들도 잠수함 침투와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여당 인사들의 함장책임론은 경계초소가 포격이나 장거리 저격을 막지 못했다고 사수나 초소장에게 책임을 무는 것과 같다.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 맞다. 구 일본군이다. 자신들이 분수에 맞지도 않는 감당 못할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장비의 부실, 국력의 한계로 좋은 장비와 충분한 지원을 못해준 상태에서 패배하면 그것을 정신력 운운하면서 할복 종용하던 게 일본이다. 여당 인사들의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인식은 놀랍게도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구 일본군과 일치한다. 뭐 도의적책임? 그 타령하던 게 당신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일본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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