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679기 붙은거 버리고 공군 833기로 입대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몸은 편하다.

내가 원하던 특기와 자대를 얻어냈으니, 모든 게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지금은 지독한 회한에 몸서리치고 있다.

두달 전 자대를 정할 때에는 집에 가깝고 조그마한 일 없는 부대에서

외진 산골 산사의 스님이 도를 닦듯이 공부나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거짓말과 배신이 난무하는 특기학교에서

절대 배신하지 않는 내 노력만을 믿으며 원하던 자대를 쟁취해냈다.

그런데... 힘겹다... 버겁다...

지난 군생활은 겨우 100일 남짓, 500일도 넘게 남았음에도 군생활을 견디기 버겁다...

무엇이 문제일까.

며칠의 고민 끝에 찾아낸 괴로움의 이유는

뭣도 없는 손바닥만한 부대 안에서의 똑같은 지루한 일상이었다.


해군을 지원했던 이유는 수능을 마치고 바로 입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마음 깊숙한 곳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내가 진실로 원하던 것은 그런 삭막한 편리함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내가 진심으로 바라던 것은...

낭만!

나는 낭만을, 진심을 배반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오늘 일과시간에는 졸다가 꿈을 꾸었다.

한눈에 담을 수도 없는 육중한 선체, 이 거대하고 정교한 거수가 잔잔한 물살을 가르면서 뒤로 남기는 항적, 고요한 밤의 바다 배 위에서 바라보는 저 멀리의 불야성을 이룬 항구의 풍경...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 녹슨 갑판의 쇠비린내, 땀과 담배 냄새를 억지로 감추려고 함상복에 뿌린 페브리즈 향기 하물며..

뱃전을 때리는 파도 소리, 타종과 출항 15분전 방송, 가슴을 울리는 기관의 울부짖음과 고동 소리 그리고 홋줄이 이리저리 부딪히며 연주하는 불협화음까지..

이토록 실감나는 꿈은 처음이었다. 꿈에서의 오감은 오히려 현실의 그것보다 생생했다.

내 인생 그러한 낭만은 절대 다시 없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 원망스러웠다.

잔인한 현실은... 나에게 이 불쾌하리만치 편안한 이 파우치에 수천 시간은 더 앉아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밤에 그 낭만 가득한 정경이 다시 한번 꿈에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