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b3de27e8d73cee3af698bf06d604033fd6b8bba202d83e5a



《해군일화집 제4집 (2006, 해군본부)》에서 발췌



69. 파리를 조준하지 마라

1961년 7월 중순 월요일 제3부두에 계류중인 PCS 202함에서 중식을 일찍이 마친 장교들은 각자 자기 침대에서 오후과업 시작 전까지 짧은 시간동안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PCS 202함에는 사관침실이 딱 1개 있었고 그곳에는 침대가 2층으로 2개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장의자가 1개 놓여 있어 2층침대 에는 부장, 1충 침대에는 기관장, 장의자에는 작전관이 낮잠을 맛있게 즐기고 있으며 옆에 붙은 사관실에는 갑판사관 김형욱 소위가 벽에 기대앉아 졸고 있고 그 맞은편에는 신임 김 소위가 당직사관 완장을 차고 앉아서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김 소위 자신도 눈꺼풀이 내려 앉아 몹시 졸리고 있었으나 당직사관 완장을 두른 그가 대선배들 틈에 끼여 함께 졸 수가 없어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차고 있던 권총을 뽑아 만지막 거리며 졸음과 싸우고 있었다.

그는 맞은편 벽 위에 매달려 있는 벽시계를 조준해 보기도 하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쫓아 조준해 보기도 하였다.
조준만 하는 것에 어느덧 싫증이 난 김 소위는 공이치기만 뒤로 제끼고 맞은편 벽시계 중심을 조준한 뒤 격발하자 탁! 하고 가벼운 금속성이 들리자 약간 흥미를 느꼈다.

마침 그때 시계 근처에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김 소위는 작은 파리를 가능쇠 위에 앉혀 놓고 조준했다. 조준이 되자 방아쇠를 당겨 격발했다. 역시 탁! 소리가 났다. 탁! 하고 울리는 금속성에 놀랐는지 파리는 이내 날아가 식탁을 한 바퀴 빙 돌고서 맞은편에 앉아 이제 입까지 벌리고 깊이 잠든 갑판사관 김형욱 소위 코 끝에 앉았다.

김 소위가 한참 노려 보아도 파리는 날아갈 기색이 없었다. 김 소위는 약간 주저하면서도 권총으로 코 끝에 앉은 파리를 정조준 하였다.

수일전 사격장에서 사격훈련시 기관이 강의하던 내용이 생각났다. 방아쇠를 당길 때에는 '치약을 짜듯이, 자동차 경적을 누르듯이, 여자 젖가슴을 만지듯이 살짝 천천히 당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김 소위도 갑판사관 코 위에 앉아있는 파리를 향해서 방아쇠를 그렇게 천천히 당겼다. 이윽고 탁! 하고 금속성이 나자 파리는 날아가고 동시에 갑판사관은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번쩍뜨고 잠에서 깨어났다.

"오후과업 시작 5분전!"

구령이 함께 들렸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잠에서 깨어난 갑판사관은 김 소위가 권총으로 자기 코를 조준하던 것을 보지 못하였다.

김 소위도 권총을 다시 케이스에 꼽고 과업정렬을 하기 위해 사관실에서 나갔지만 이제까지 그가 사관실에서 무심결에 했던 권총 장난이 얼마나 위험했던 것인지 미쳐 깨닫지 못하였다.

오후 과업정렬이 끝나고 침실에 돌아온 김 소위는 권총을 뽑아 무십결에 노리쇠 후퇴를 몇번하다가 권총 실탄이 튕기는 것을 보고 소스라쳐 놀랐던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실탄이 들어있는 탄창 2개가 꼽혀있는 권총 밴드에서 전날 일요일 순라당직을 서면서 그중 탄창 1개를 뽑아 권총에 꽂았던 것이 불현듯 생각났던 것이다.

김 소위가 총기 안전수칙을 무시하고 무심결에 장난한 것이 하마트면 엄청난 사고를 유발할 뻔 하였으나 하늘의 도움으로 김 소위는 그냥 공이치기만 뒤로 제끼고 방아쇠를 당겼기에 망정이지 무심결에 COCKING을 하면서 실제로 탄창내에 있던 실탄이 장전 된 상태에서 갑판사관의 코 위에 앉아 있던 파리를 정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겼더라면 얼마나 무서운 비극이 일어났을 것인가?

오싹 전률을 느낀 김 소위는 얼른 권총 실탄을 주워 권총에서 탄창을 뽑아 끼우고 권총밴드에 탄창을 꼽고 나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