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GIST 재학생이다. 몇 년 전 재수를 해서, 어떻게 보면 가성비가 좋지 않은 선택 끝에 투과목 가산점을 받고 정시로 입학했다. 

재수를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울대학교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고3 때 수시로 고려대학교 바이오의공학과에 합격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서울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한 번 더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대인재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하지만 재수 때 본 수능 성적은 내가 원하던 서울대에 닿기엔 조금 부족했다.

전적대보다 높은 대학을 가야 재수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고, 소위 펑크를 노리며 스나이핑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서울대를 놓친 순간부터 표준점수는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연·고대는 과탐 백분위 구조상 내 선택과 맞지 않았고, 결국 자연계열이나 공대 중 비교적 덜 인기 있는 학과에 지원했다. 결과는 정시로 다시 고려대 합격. 이미 수시로 붙었던 학교를, 재수를 해서 또 정시로 합격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 만큼 화가 났다.

그때는 투과목 선택이 내 인생을 망친 것처럼 느껴졌다. 재수 실패의 원인을 투과목 탓으로 돌리며 원망도 많이 했다. 특히 고3 때 이미 붙었던 고려대는 다시는 가기 싫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과학기술원이었다. 투과목에 대해 표준점수 반영은 아니지만 가산점을 주는 구조, 그리고 군외지원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과기원은 정시 선발 인원이 적어 수시가 훨씬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GIST는 수능 전에 면접이 있어 수시 지원은 부담스러웠다. 대신 정시에서는 군외라 비교적 편하게 지원할 수 있었다.

고대 중간공 이상 정도의 점수를 받았지만 최초합은 아니었고, 마지막 날 추가합격으로 겨우 붙었다. 다시 삼수를 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정시로 GIST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억울했다. 학교 서열이 모호하게 느껴졌고, 다시 서울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삼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 만족도는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수험생이나 타 대학 친구들이 지스트가 정확히 어떤 학교냐고 물으면 늘 비슷한 답을 한다. 이름값만 보고 판단하기엔 아쉬운 학교라고.


GIST는 4대 과기원 중에서도 KAIST 다음으로 영재학교·과고 출신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미 수학·물리 선행이 많이 되어 있고, 연구 활동을 경험해 본 학생들도 많다 보니 수업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질문의 깊이가 다르고, 팀플에서도 서로 묻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를 끌어올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자신 있었지만, 와서 보니 기본 체급이 높은 친구들이 많아 큰 자극을 받았다.

가장 크게 체감되는 장점은 소수정예가 말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학년 인원이 매우 적어 교수 대 학생 비율이 낮고, 그게 실제 경험으로 다가온다.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이 학생 얼굴과 이름을 알고, 메일을 보내면 답이 빠르다. 관심을 보이면 연구실 연결도 비교적 수월하다.

종합대처럼 학부생이 랩 문을 두드리다 번번이 거절당하는 분위기와는 다르다. 학부 2학년, 빠르면 1학년 때부터 연구실에 들어가 실험을 하고, 학회를 따라가며,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실제로 존재한다.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무학과 단일학부 체제다. 처음부터 특정 학과에 묶이지 않고 1학년 때 기초과학을 폭넓게 다진 뒤 트랙을 정한다. 물리를 하다가 AI로 방향을 틀 수도 있고, 전기전자와 재료를 융합해 설계할 수도 있다. 융합 연구가 기본이 된 시대에 맞는 구조다. 진로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학생에게는 오히려 유연한 환경이다.

분야적으로는 광학, 물리, 전기전자, AI 쪽에 확실한 색깔이 있다. 특히 AI 대학원과 관련 연구단은 몇 년 전부터 공격적으로 확장해 왔고, 장비 투자도 빠르다. 학교 규모가 작다 보니 의사결정이 빠르고, 한 분야를 밀겠다고 하면 실제로 자원이 집중된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캠퍼스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재학생 수 대비 캠퍼스 면적이 넓어 쾌적하다. 국내 최고 수준으로 여유롭다고 느껴질 만큼 공간 밀도가 낮다. 전원 기숙사 생활이라 커뮤니티 결속도 강하다. 서울처럼 생활이 분산되지 않고, 학교 안에서 대부분의 일상이 해결된다. 연구에 몰입하기에는 좋은 구조다.

위치는 광주이지만, 첨단지구 상권이 도보권에 있어 생활 인프라는 생각보다 괜찮다. 마트, 식당, 카페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 주말에 답답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환경은 아니다.

등록금 부담이 적은 점도 현실적인 장점이다. 과기원 특성상 국가 지원 구조라 장학금 수혜율이 높고, 기숙사 수용률도 높다. 돈 걱정보다는 이번 학기엔 어떤 연구를 해볼까를 고민하게 되는 환경이라는 점은 4년을 보내는 입장에서 상당히 크다.

물론 대중적 인지도나 간판 파워는 서울 주요 대학에 비해 약하다. 서울도 아니고, 대형 종합대처럼 동문 수가 많은 것도 아니다. GIST는 간판으로 밀어붙이는 학교라기보다는, 연구에 깊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춘 학교에 가깝다. 소수정예, 높은 평균 학업 역량, 빠른 의사결정, 밀도 높은 연구 환경. 내가 느끼기에 이것이 GIST의 본질이다.

이공계에서 연구를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있다면, 단순 네임밸류만 보고 쉽게 걸러버리기엔 아쉬운 선택지다. 캠퍼스를 직접 보고, 연구실 분위기를 체감하고, 교수님과 이야기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방이라는 이유로 합격해 놓고 학고반수를 고민하거나 아예 입학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 영어캠프, 새내기 행사까지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정말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 재수를 고민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