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육체적인 피로야 하루쯤 깊게 잠들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 느끼는 이 무게는, 좀 다르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오는 부채감인가? 아닌 것 같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쏟아부었다는 자부심 뒤로, 불쑥불쑥 차가운 감각이 고개를 든다.
불안함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찾아오는 원초적인 공포. 2025년 국가직 7급 일반행정 직렬 경쟁률은 50대 1에 육박한다. 두 개 반에서 한 명 남짓한 합격자가 나오는 셈이다. 물론 그 안에는 허수도 껴 있다. 절반 정도는 아예 시험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진지함이 결여된 이들, 피셋 감각을 익히러 온 '5급 트럭'들. 올해는 거기에 더해 9급 국어 논리 퀴즈에 데어 '예방주사'삼아 현장 피셋을 경험하러 오는 사람도 있을거다.
그걸 다 빼고 진짜 경쟁자만 추린다 해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3대1은 족히 될 것 같다. 모든 걸 쏟아붓는 경쟁자 둘 정도는 꺾어야 합격인 셈이다. 누군가를 밀어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는다.
공시는 외줄타기다. 떨어지면 땅에 고꾸라져 한동안 아프고 멍도 들 거다. 그런데 나이가 들 수록 줄이 점점 땅으로부터 멀리, 더 높게 올라간다. 일정 높이를 넘어서면 추락은 '아프다'는 감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몇 번 넘어지며 나이를 먹다 보면, 더 이상은 상처를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 공시판에 진입할 때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체적인 판세도, 내가 가야 할 길의 험난함도 몰랐기에 가질 수 있었던 막연한 용기였다.
공부를 시작한 지 한달 정도 지날 무렵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높고 위험한 줄 위에 올라타있었다. 비로소 현실적인 계산기가 두드려지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과 채워야 할 학습량을 대조해 보니, 산술적으로 도저히 원하는 만큼의 학습량을 뽑아내기 어렵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올해 안에 끝내겠다"던 호언장담은 얼마나 오만한 선언이었던가. 시간이 부족하다는 자각 앞에서, 자신감은 사라져갔다. 그 빈자리에 추락에 대한 공포가 들어앉았다.
줄은 이미 높고, 또 계속 높아진다. 공포도 같이 커진다. 나한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줄 위에 주저앉아 울거나, 아니면 한 발자국 더 옮기거나. 고개를 들어 위를 보는 것도, 저 밑의 땅바닥을 내려다보는 것도 도움되지 않는다. 발끝으로 만져지는 밧줄에 집중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을 뿐이다.
무서워도 어쩌겠나. 가야지. 멈추지 않고 가야지. 결국 저 끝에 닿을 때까지, 이 지루하고 위태로운 걸음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다만 오늘은 좀 쉬어가야겠다. 높이 올라왔다는 걸 자각해버린 이상 잠시 쉬어가야 정신이 버틸 것 같다.
...늦잠 잔 김에 끄적인 글이 좀 길어졌다. 얼른 독서실 가서 저녁까지 기출 풀고, 저녁에 맛난 거 먹고 푹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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