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때 신림동의 아이콘이었던 정원준을 아예 모르는 행시생도 많을 것이다. 2019년 정치학 1순환 수강생 여섯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예비순환에서는 그나마 있던 실강생 일곱명 중 이대생 두 명을 쫓아낸 뒤, 그 길로 곧장 사무실로 걸어가 망치같은 주먹을 흔들며 폐강을 선언한 상남자 그 자체 정원준. 아직 그가 조금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외교원 수험가에서조차, 정원준이 쉬는 시간과 강의 종료 시간 외에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그저 ‘아직 퇴출되지 않은 괴팍한 강사’로만 인식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수업의 80%를 잡담, 연설, 노래, 상경계욕, 법대욕, 공대욕, 전국 팔도 모든 지역에 대한 욕, 경상도 욕, 그리고 본인의 군대썰로 채우는 정원준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그는 실강생 수백명을 모으며, 절대적인 고시촌의 메이저인 사법시험 수업을 밀어내고 가장 큰 강의실을 차지하였던 메이저 강사였다.
화무십일홍이라 하는데, 꽃이 시든 것은 꽃이 시들었기 때문인가, 열흘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인가? 정원준의 빛나는 시절을 모르는 행시생도 이제 많고, 아는 사람도 그 시절의 정원준의 모습이 어땠는지는 알고 있지 못 한다. '수업을 열심히 하는 정원준'이 어떤 강사인지 아는 사람은 이제 없다. 당신은 아는가, 정원준을?

1장 <안암동 촌놈, 신림동 입성>

한국에서 '공부'란 곧 시험공부를 의미하고, 한국에서 공부하면 떠오르는 동네는 신림동이다. 신림동은 대한민국의 모든 수험 노하우가 한데 농축된 곳이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내용을 공부한다'는 발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이 신림동이었다. 기초 소양과 같은 이야기를 강조하려는 강사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 했고, 일개 연대 규모의 수험생들이 금과옥조처럼 그 말씀을 떠받드는 강사들조차 효율의 지배를 조금이라도 거부하려 하면 버림받는 서슬퍼런 동네. 그런데 이런 신림동에, 비효율적인 공부법이 오히려 가장 좋은 공부법이라는 구호와 함께 정원준이 등장했다.


당시 신림동 정치학 1타는 강제명이었다. 강제명은 행정학과 정치학을 동시에 강의하며, 두 과목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강사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정치학은 점수마저 짜게 주는 바람에 매우 후순위에 있는 과목이었다. 행정학도 마찬가지였던 만큼, 수험생들은 두 과목을 매우 핵심적인 포인트만 암기하고 들어가서 면과락, 내지는 50점 이상만 확보해야하는 방어적인 과목으로 취급했다. 강제명은 이러한 수험생들의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하였다. 정치학 이론들을 암기 가능한 단위로 조각조각 쪼개 놓은 다음, 마인드맵처럼 이거는 이거랑 연결되고, 저거는 이거랑 연결되고, 어떻게 연결되는지만 간략하게 설명 해 주는 것이 강의의 전부였다. 그리고 행정학 역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매우 유사한 구조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여 마인드맵을 만들어줌으로써, 정치학과 행정학의 유사성을 매우 강조하였다. 나름대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였다. 수험생들은 사실상 정치학/행정학이라는 하나의 과목을 두 회차에 걸쳐 수강하며, 충실히 암기한 핵심 용어와 문구들을 확실하게 시험장에 들고 간 다음, 충실하게 시험지에 바르고 나왔다. 이 전략은 지금도 아주 유효한 방어적인 전략이고, 현재 베리타스에서 교주처럼 군림하는 금동흠 원장은 '정치학과 행정학은 한 과목이다'라는 말을 설파한다. 이는 금동흠 원장이 사법시험 메이저 강사였던 시절의 수험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법시험 시절과 현재의 신림동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마치 금동흠 원장이 아직도 신림동을 지배하듯, 신림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때 완성된 정신세계의 핵은 아직도 신림동과 신림동식 공부의 핵이다. 강제명이 제시한 학습법은 어찌보면 강제명이 고안한 것이 아니다. 신림동의 순리이자, 자연법칙과도 같은 필연적 귀결이었다. 시험에 붙기 위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어찌 있을 수 있는가? 강제명이 군림하는 동안 수많은 정치학 강사들이 우리에게 이름을 불려보지도 못 하고 등장했다 사라졌다. 신림동에서 강의를 하는 한, 그들은 강제명식 수업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하지 않는다면 퇴출되었다. 그리고 강제명식 수업을 하였기 때문에, 신림동은 그들을 강제명의 아류로 규정하였고, 퇴출시켰다. 강제명이 영원히 1타로 군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행정학 같은 씨발스런 하등 학문과 정치학을 엮지 말라"는 고함을 치며 정원준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