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회의때문에 전일에 ktx타고 내려가는중인데
예전 기억들 이것저것 써봄
국7 2차 시험치고 고사장 돌아오면서 혼자서 점심 먹고 들어갔거든 점심 먹는중에 가 답안 떠서 식당에서 대충 매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대략 점수가 21년도 컷 정도로 나와서 그래도 붙기야 하겠지 싶었음

첫날은 다들 컷을 높게 부르는 분위기였는데 저녁이 될수록 서서히 예측컷이 낮아지더라 보수적으로 잡아도 컷이 80점대 후반은 아니겠다 싶어 한숨 돌렸음

시험친 다음날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대형서점에 가서
선재국어 핵심 요약집이랑 국어 기출문제집 사옴
당시 서7이 국7이랑 2주간격이었고 서7 끝나고 월요일에 국7 사전 점수발표가 있었거든

그런데 솔직히 국7 합격했다 생각하니 서7 공부는 생각만큼 안되더라 공단기 프패 수강한게 아까워서 국어 마무리 강의만 듣는데도 집중이 안되었음

결국 2주동안 빡세게 공부하려던 계획도 틀어지고
서7 한주 남겨놓고 피티윤 면접 설명회나 듣고
미리 서7 고사장  가보는등 설렁 설렁함

서7을 10월 29일 토요일에 치고왔는데 역시나
국7보다 성적이 안나오더라 아마 87 나왔었지
당시 서7이 대량채용 영향으로 컷이 89였는데 국어 85  행학 85로는 힘들었더라

어차피 본가가 남쪽이라 둘다 붙어도 부모님이 국7 가라고 하셔서 국7 갈 생각이었긴한데  조금은 아쉬웠음 80점대가 서7을 붙을수있는 마지막 대량채용의 기회였으니

10월 29일 토요일이 잊혀지지가 않는게 그날 저녁에 이태원 압사 사고가 났음
나는 토요일 저녁에 초밥하나 포장해와서 먹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월요일 사전점수발표나 기다리고 있었거든
저녁에 갑자기 난리가 난거지 유튜보는데 단순히 사람이 몰려서 다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거지

결국 다음날 내가 사는곳 근처 시립병원을 가니까
운구차가 바쁘게 왔다갔다하는게 보이더라 경찰버스랑 형사들도 와있고 주말간 기분이 좀 우울했음

그리고 22년에는 사전발표를 10월31일 월요일에 했는데
아침에 고시식당가서 밥먹고 방에 와서 아홉시쯤 사이버 고시센터에서 2차 점수 확인함

수험생활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중 하나가 사전 점수 확인때였음  점수 확인하고 바로 집에 전화드리고 면접 강의 결제했음

그때부터 면접 스터디 신청이 폭주하더라
국7은 사전점수가 필기 넉넉합격권이면 무조건 면접장 들어가고 거의 99%  확률로 최합이니까

면접 스터디 내가 사는동네에 한팀 배정되고 거기에 들어가서 면스원들 첫 모임 수요일쯤 잡고
바로 다음주부터 주2회로 2시간씩 준비했음 마지막주는 주3회했고

면접관련해서는 다음에 한번 더 쓸게

아무튼 나는 상당히 늦은 나이(30대 후반)에 입직해서 일하고 있는데 솔직히 7급 업무가 쉽지는 않더라
내가 수험생활만 오래하고 혼자 지내다보니 사회성도 부족하고 한글 엑셀 이런것도 익숙치가 않았거든
그래서 퇴근하고 컴퓨터 학원도 다니곤했음
이런거 안익숙한 친구들은 미리 엑셀이나 한글 배워오는것도 추천함 업무효율이 달라지니까

그나마 나는 동료들이 능력있고 괜찮은 분들이라
나를 이해해주고 도와주려하는데 미안한 마음도 컸음
일하다 너무 힘들고 답답해서 말실수 한적도 있고
나이먹고 사회생활하려니 뭐든 쉽지가 않더라

그래도 여기 갤러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어리고 능력있을테니 잘 해낼거임

그나마 국7 필합러들은 면접 준비하고 최합 기다리는동안이 여유있을때인데 건강 관리 잘해라
혹여 떨어진사람들도 다시 준비해서 내년에 붙고
나보다 1년 뒤에 들어온 7급 주무관님도 22년에 아쉽게 떨어지고 절치부심해서 붙으셨더라

그리고 나는 면접다녀오고 이틀뒤에 코로나 걸려서 일주일동안 강제 방콕했거든  어디 혼자 국내여행이라도 다녀오려했는데 다 어그러졌지 소소하게 여유있을때 여행다녀오는것도 좋을듯 입직하면 휴가 쓰는것도 생각보다 쉽지않음

ktx 하도 자주타니까 재미도 없고 노잼 긴글 썼는데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