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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반성문(구명 청원서) 1탄


대중이는 공식적으로 4번 반성문을 썼다.

1971년 중상모략으로 당수가 되려다가 들통이 나서

신민당 총재 유진산에게 공개 사과문을 썼다.


1973년 일본에서 반국가단체 한민통을 결성하여

온갖 매국노 짓하다가 보다 못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이

납치해왔다.

마땅히 반국가단체 수괴죄로 사형에 처하였으나

대중이가 박 대통령에게 극진한 반성문을 써서 기소하지 않았다.

이 반성문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1980년 대중이가 사형선고받은 것은 광주사태가 아니라

한민통 결성, 즉 반국가단체 수괴죄였다.

전두환이 범행 7년 만에 기소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대중이 사형선고는 전혀 억울한 것이 아니다.

대중이가 2000년 재심청구한 것은 내란음모죄지

반국가단체 수괴죄가 아니다.

대중이는 수괴죄 판결을 뒤집을 자신이 없었다.


대중이는 1981년 1월 대법원이 사형을 확정하자

감동적인 반성문을 썼다.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듯이 이를 읽고 울지 않으면 홍어가 아니니라.



나는 내 운명이 어떻게 되더라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그분 뜻대로 이루어

지기만을 매일 기구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해도 그분을 사랑

하겠소. 나는 모든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그분을

믿겠소. 모든 과학자들이 그분의 부활을 조롱해도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소.

(김대중이 1981년 1월 17일 가족에게 쓴 편지)


그러나 김대중은 1981년 1월 17일자 편지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그 다음날 전두환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다음은 김대중이 전두환에게 보낸 구명 탄원서이다.


大統領에

歎 願 書


本籍 서울特別市 麻浦區 東橋洞 31-1

住所 同 上 178-1

姓名 金 大 中 (1925. 12. 3)


대통령 閣下

本人은 國家保安法, 反共法, 內亂豫備陰謀, 戒嚴

布告違反等 事件으로 1-2審에서 死刑宣告를

받고 現在 上告中에 있습니다

本人은 그間 本人의 行動으로 國內外에 物議를

일으켰고 이로 因하여 國家安保에 累를 끼친데

對하여 責任을 痛感하며 眞心으로 國民앞에 未安

하게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本人은 앞으로 自重自肅하면서 政治에는 一切關與

하지 아니할 것이며 오직 새時代의 祖國의 民主發展

과 國家安保를 위하여 積極協力 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本人은 本人과 特히 本人의 事件에 連累되어 現在

收監中에 있는 사람들에 對하여 全斗煥 大統領

閣下의 特別한 雅量과 너그러운 善處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1981年 1月 18日


위 金 大 中


大統領 閣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