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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악역으로 등장한 배우, 특히 여배우의 경우 대중 목욕탕을 가지 못한다고 한다. 아줌마들이 배우를 알아보고는 그렇게 등이나 팔을 때린단다. 폭력에 정색하는 여배우를 보며 아줌마가 말한다.

"아니 드라마인 건 알겠는데! 너~무 미워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드라마, 허구임을 알았다면 때리지 말았어야지. 자기 모순이다. 드라마, 영화, 만화, 문학은 본질적으로 '허구'다. 여기서 벗어나면 다큐멘터리나 역사, 학술이 된다.

그리고 허구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단순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선형적이지 않은 셈이다.



많은 사람이 1997년 개봉한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알 것이다. 과학이 발전한 인류 문명이 아라크니드라는 괴물 종족과 운명을 걸고 싸우는 스페이스 오페라. 한국에는 '스타크래프트를 따라한 영화'로 알려졌다.

(사실 스타쉽 트루퍼스가 까마득하게 먼저고, 초기 블리자드 작품이 다 그렇듯 스타크래프트 자체가 온갖 패러디로 가득한 작품이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를 아는 사람은 많겠지만, 그 원작이 1959년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이라는 것은 잘 모른다. 그는 선형적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선형을 이해하는 '외삽법'을 활용했으며, 외삽법은 문학의 대표적 기법 중 하나다. 그의 소설은 공개 다음 해인 1960년 SF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했다.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를 피상적으로 시청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작 외계 괴물 종족과 전함, 강화슈트를 착용한 보병이 나와서 우당탕탕 때려 부수기만 하는 내용이 뭐 대단하다고 상까지 받았을까? 싸구려 프로파간다와 군국주의 찬양으로 가득한 영화인데.

작품 내에서 묘사되는 엉성한 애국심 호소에 열광하며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는 보병들은 비이성적으로 보인다. 개연성이 떨어지고, 비선형적이다. SF계가 수준 낮아서 이런 싸구려 B급 감성에 상을 주는가? 그렇지 않다.



외삽법이 활용된 작품은 외삽법을 통해 이해해야 한다. 드러난 작품 내적인 요소 외에, 그 배경과 흐름을 살펴봐야 보이는 것이다.



스타쉽 트루퍼스의 작가는 1907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집필 시기 1,2차 세계 대전, 냉전, 한국전쟁, 히피문화라는 변화를 겪었고, 스타쉽 트루퍼스가 1959년 공개된 작품임을 고려하면 당연히 이러한 경험과 감정이 작품에 녹아있는 것이다.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묘사하는 제국의 싸구려 애국심 호소, 의미 없이 목숨을 희생 당한 젊은 청년들, 전쟁에서 피어난 사랑이 허무한 죽음으로 스러지고, 방금 전까지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과 아픈 이별을 겪은 주인공이 다음 장면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은 개연성과 핍진성의 상실을 넘어 작품 수준을 의심케 만든다.


그것은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인류 지식의 정점이자 논리의 완성으로 보였던 과학과 사회 체계, 제국은 그 목적이 인류의 평화와 행복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 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목적은 도구로 전락하며 무수히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기존 구조의 모순에 지쳐 기존 권위주의, 구조주의 자체를 벗어나려는 히피문화가 태어난 것이다.

그 시기 나온 작품이 1959년 스타쉽 트루퍼스다. 냉전으로 메카시즘과 빨갱이 몰이가 만연하던 그 시기에 작가가 직접적인 비판을 드러내지 못한 것은 당연하며, 이것이 비유와 은유가 기본이 되는 문학의 본질이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0년, 높아진 반전여론과 맞물려 작품은 휴고상을 받게 되고, 히피들은 '이것이 진리다'라며 열광했다.





그래서 로버트 하인라인이 히피주의자인가?


스타쉽 트루퍼스 이후 그가 1961년에 공개한 '낮선 땅 이방인'은 히피들의 성서로 불린다. 이를 고려하면 그가 아나키스트, 히피주의자, 탈구조주의, 예컨데 페미니즘과 동일한 방향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건 단지 히피들의 해석일 뿐이다. 비유와 은유는 다양한 해석을 낳으며, 이는 문학이 본질적으로 독자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보임을 의미한다. 그가 스타쉽 트루퍼스에서 군국주의를 묘사했다고 제국주의자라 할 수 없다. 드라마의 악역 여배우가 현실에서 악녀가 아니듯.



내 생각에 로버트 하인라인은 자유주의자다. 현대 정치 관점의 진보, 좌파, 리버럴로 해석하면 오류다. 오히려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자는 방향이다. 이를 현실에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 '권한과 책임의 비례', '신의칙', '황금율'이니 현대의 해석과 영 다르다. 오히려 자유를 최우선 가치에 놓음으로 '모든 종류의 강압을 거부'하니 강제성과 억압을 사용하는 진보, 좌파, 리버럴, 페미니즘, 탈구조주의와 상극이다.


로버트 하인라인이 1959년 스타쉽 트루퍼스와 같은 해 발표한 단편 '너희 모든 좀비들은......'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이것 또한 영화로 나왔는데, 에단 호크 주연의 '타임 패러독스'다. 이 작품은 스타쉽 트루퍼스와 대칭을 이루는 작품이다.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단순한 인과 순서 진행이 아닌 시간을 넘나드는 복잡한 구성을 따르며, 매우 복잡한 인과를 조금의 오류나 어색함 없이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열한다. 매우 구조적이고, 논리적이다.

그리고 작품 결말에 이르러 그러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구조가 모순으로 드러나고, 독자는 분명 논리적 연결이 완벽함에도 결과가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에 강렬한 충격을 받는다.


'논리는 때론 괴물을 만든다' - 앙리 푸앙카레


로버트 하인라인은 '무질서'에 해당하는 히피나 아나키즘 추종자가 아니다. 질서-무질서란 이분법을 초월한 사람이다. 질서 속에서 무질서가 태어나고, 무질서 안에서 질서가 태어나는 모순적 순환 구조를 '너희 모든 좀비들은......'을 통해 표현했으니 그가 무질서를 추구한다는 해석은 이상하다. 무질서 또한 질서 안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수긍했을 뿐이다. '스타쉽 트루퍼스'를 통해 질서의 극단적 형태로 드러난 '체제의 강제와 억압'도 비판했으니 질서-무질서 이분법 구조로 그와 작품을 이해하면 이상한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질서-무질서 이분법 구조는 가로로 이어지는 x축 선으로 표현 가능하다. 좌측이 질서, 우측이 무질서, 뭐 이런 식으로. 이 둘이 사실 같은 x축에서 반복되는 구조라서 본래 하나라고 본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차원이 열린다. 세로로 이어지는 y축.


'논리는 때론 괴물을 만든다' - 앙리 푸앙카레
'괴물은 때론 논리를 만든다' - 디씨 병신


논리는 때론 괴물을 만든다. 그렇다면 무수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괴물이 튀어나왔을 것이고, 이 세상은 진작 괴물로 가득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어떤가? 괴물로 가득 차지 않았다. 이는 논리가 괴물을 낳기도 하지만, 괴물 또한 논리를 낳는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로버트 하인라인을 보면 명확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질서의 극단이 무질서를 낳고, 무질서가 오히려 질서를 낳는 구조를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 안에서 질서에 대한 숭상(권위주의)도 없고, 무질서에 대한 숭상(아나키즘)도 없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양 극단에서 벗어난 새로운 차원의 자유주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드라마 악역은 하도 맞아서 대중 목욕탕을 가지 못한다.

드라마와 다르게 소설은 작가가 모든 역할을 혼자 맡는다. 모든 출연 배우가 작가인 셈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허구'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가 아무리 많다 해도, 결코 세상에 가득 차는 일은 없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 문학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로버트 하인라인을 두고 대립하는 양측에서 서로 자기 편이라고 싸우거나, 서로 상대편이라며 비난하며 때리는 이분법 구조를 반복할 뿐이다.

마치 영화 '조커'를 두고 범죄와 무질서를 긍정한다며 금지하자는 비평가처럼.

목욕탕에서 마주친 악역 여배우의 등짝을 때리는 아줌마처럼.

역설적으로 그 시점에 허구는 실체가 된다.



나는 소설가의 정체성이 소설이라 생각한다. 소설로 표현, 소통, 평가를 모두 이룬다. 작품을 평가하지 않고 작가를 비난하는 것은, 목욕탕에서 만난 작가의 등짝을 때리는 것과 같다. 요즘 노벨 문학상으로 시끄러운데, 여기서도 작가 등짝을 때리지 말고 작품을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작품은 본질적으로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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