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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존재간에도 공존 자체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질성이 상호충돌적 성향을 띄고 있다면 공존은 불가능하다.

예시로 이슬람과 기독교간 싸움이 많은 근원적 이유는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삼위일체가 이슬람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교리다. 즉 세계관 근본에서 차이가 나면 충돌이 발생한다.

한남과 한녀가 그렇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적 기능과 마인드 혹은 세상과 사회의 이치와 상식.
그것이 한 사회의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이 서로 다르면 하나의 담론적 타이틀도 각자에게 완전 다른의미가 된다.

예를 들면 한국뿐 아니라 현대문명의 보편적인 담론
예의
존중
배려
매너
공감
그렇다 한녀들이 자기들 딴에는 매일 한남들을 비판하면서 쓰는 워딩들이다.

그러나 조금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녀들이 말하는 저 단어들의 의미가 우리 한남들의 상식속 그것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저 한녀들이 가증스럽게도 자주 입에 담는 「배려」부터 살펴보자.

우리의 상식상 배려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음"이라는 소극적 의미부터 "타인의 편리를 위해 약간의 수고를 함" 이라는 적극적 의미까지 포함된다. 즉 배려의 주체는 "나"이다.

반면 한녀들이 매일 지껄이는 배려라는 워딩이 사용되는 상황과 의미를 살펴보면
"내가 끼치는 피해를 니가 이해해줘야 함"부터 "나의 편리를 위해 니가 큰 수고를 함" 이라는 의미로 바뀐다.
즉, 배려의 주체는 "너"다 그리고 "나"는 수혜자의 위치다.

「공감」도 마찬가지다. 그녀들이 끝없이 외치는 「공감」이란 "남자인 니가 여자인 나를 알아달라" 이것뿐이다.
오직 그것이 전부다.

나거한을 뒤덮은 수많은 여성중심적 미디어와 매체를 봐라. 전부 공감이라는 워딩이 사용될때는 항상 저런 논리다.
반대로 남자가 여자에게 「남자에 대한 공감」을 요구한다면?
100이면 100 "왜 니들한테 공감을 해야함?" 이라며 조소만 돌아올 뿐이다.

즉, 한녀족에게 공감이라는건 남자가 여자를 위해 해야 하는 감정적 봉사이지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의 보편적 정서상 의미가 절대 아니다.

이러한 한녀들의 현대문명과 동떨어진 기형적인 세계관은 결국 한녀 특유의 "여성우월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자인 지들은 우월하고 남자인 우리는 열등하다.
그렇기에 자신들에게 독점적으로 편리한 윤리관과 일방적인 수혜를 받는 입장이 절대 이중적이거나 모순적인게 아니다.
왜냐면 그게 당연한거니까.

여자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자는 감사를 표해야 하고 반대로 남자가 바치는 헌신에는 절대 감사를 할 필요가 없다. 설령 잘못했다고 해도 사과 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여자인 자기들이 우월한 존재이고 남자는 열등한 존재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서 이제 오늘날 한남녀간 가장 큰 쟁점인 「평등」에 대한 분쟁 원인이 설명된다.

평등이라는 워딩에 대한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대등한 국민으로서 공평하게 권리를 가지고 의무를 부담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평등.
이것이 한남들의 세계관속 평등의 의미다.

그러나 근본적인 여성우월주의 한녀족들의 세계관속 평등은 그렇지 않다. "여자들에게는 끝없는 특혜와 이익만 주고 남자들에게는 가혹하고 무거운 책임과 의무만을 부과" 이것이 진정한 평등이다.

함께 동등하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모습? 한녀들에게는 그것이야 말로 불공평이고 불평등이고 절대악이다.

고귀하고 우월한 한녀들이 열등하고 천한 한남과 동등하게 권리와 책임을 나눈다? 그거야 말로 그녀들에게는 참담한 부조리다.

이제 알겠는가? 왜 한남 한녀간의 「silence civilwar」가 한반도 이남땅에서 끝나질 않는지?
이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처럼 매우 근본적인 원인 에서 시작해 장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지루한 싸움이다.

우리 한남들은 지금 저토록 이질적인 세계관의 괴물들과 싸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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