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으려거든 1편은 필히 보고 오자.
"국제적인 반응이 상당히 걱정됩니다. 우리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겠지요? 그러나 할 수 없지요.
진행합시다. 전혀 상관없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인도차이나 진격을 허용하는 히로히토의 발언. 스기야마의 메모 中)
6. 전쟁 또 전쟁...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나..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황제 푸이와 히로히토.
만주사변.. 중일전쟁..태평양 전쟁..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이미지는 거의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대는 가히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가장 '미쳤던' 시기라고 할만하다.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배로 시작된 일본의 제국주의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히로히토는 최고군통수권자였다.
신화를 바탕으로한 절대 천황의 권위는 일본 국내건 식민지건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대륙에서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모든 만행은 천황 폐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동시에 망각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일본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석유 수출 제한은
일본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가게 만들었다.
히로히토가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이 모든 것을 직접 계획, 지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다음과 같은 태도 이상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짐은 평화주의자이나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는 것을 누가 마다하랴..
그런데 꼭 미국까지 공격해야겠나.. 음.. 내키진 않는데.. 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뭐.. 대신 꼭 이겨야돼..!"
초기 전세는 일본이 잠깐 유리한듯 보였고 최대 판도는 이렇듯 보기엔 화려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모두 군수산업업체로 전환되었으나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 일반 가정의 금속 식기류까지 공출되었으며..
기름마저 존나 부족해 일본 본토고 식민지고 할것 없이 농민들은 나무의 송진을 체취하고 쌀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수탈당했다.
군사 훈련에는 애어른이 따로 없고 여자와 승려들까지 동원되어
흡사 북한의 선군정치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7. 패망.. 그리고 '만들어진' 슬픔.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
3개월 후 투하된 히로시마 원폭.
일본 대본영에게 있어서 천황제라는 국체 보존은 자국민이 몇명이 죽던, 그 어떤 희생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일본인의 인명을 누구보다도 경시한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군부의 수뇌부와 히로히토 자신이었다.
이것은 일제의 패망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이었다.
히로히토의 항복 연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항복이라는 표현은 하나도 없지만 사실상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었다.
이 연설은 미리 녹음되었다가 반대 세력의 방해를 무릅쓰고 1945년 8월 15일 방송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날은 광복절이라 부른다.
(정작 이 날 항복 방송을 들은 조선인은 거의 없었고, 조선총독부가 미군에게 권한을 인계한것은 그로터 한달 가까이 지난 후였지만..)
이 날 일본의 분위기는 대략 위와 같이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은 상당수는 사전에 연출된 "하라고 해서 한" 장면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 날 수많은 일본군이나 일본인들도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히로히토의 비서실장을 지낸 기도 고이치는 일기에 "방송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적었다.
다음편에서 계속...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