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b49427e9dd36a339f284e5448574699d15d1f9bcfbf19c8a6441a139ee20acd108de9d2ca3dc79455419efb4

[시리즈] 일본 일왕 히로히토의 일대기
· 스압)) 일본 일왕 히로히토의 일대기 이야기...jpg

이 글을 읽으려거든 1편은 필히 보고 오자.





7cea8172bc846eff3cec87e4449f2e2dede4d925e112d219d71804a3

"국제적인 반응이 상당히 걱정됩니다. 우리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겠지요? 그러나 할 수 없지요.

진행합시다. 전혀 상관없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인도차이나 진격을 허용하는 히로히토의 발언. 스기야마의 메모 中)




6. 전쟁 또 전쟁... 그러나 모든 것이 너무나.. 너무나 부족하다!



7cea8172bc846eff36e684e3419f2e2d73439d22397d6fc2698675d6d8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황제 푸이와 히로히토.

만주사변.. 중일전쟁..태평양 전쟁..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의 이미지는 거의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대는 가히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가장 '미쳤던' 시기라고 할만하다.


7cea8172bc846ff73eeb8ee2449f2e2d594f36678c06ffd47500e94a

조선과 대만의 식민지배로 시작된 일본의 제국주의는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7cea8172bc846ff73ceb86ec439f2e2dce69a96d1e19d36706c9930f

그리고 누가 뭐라고 해도 히로히토는 최고군통수권자였다.




7cea8172bc846ff73be682e1459f2e2d4f0e7b776bb673498235246b

7cea8172bc846ff738ee83e14e9f2e2db108c41ac7f6185984e18e8b

신화를 바탕으로한 절대 천황의 권위는 일본 국내건 식민지건 가리지 않고 맹목적인 충성을 강요했다.


7cea8172bc846ff736eb83e3429f2e2dab0ef961c37fbc9371d93e5768

대륙에서의 전쟁에서 벌어지는 모든 만행은 천황 폐하의 이름으로 자행되었고 동시에 망각되었다.


ae5837a50035bb4389f1dca513d6040340f50bc2ca8202b8

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일본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석유 수출 제한은

일본으로 하여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너가게 만들었다.


7cea8172bc846ff437ec81e7459f2334599634489e33647e31d670976c

히로히토가 히틀러나 무솔리니처럼 이 모든 것을 직접 계획, 지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적어도 다음과 같은 태도 이상이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짐은 평화주의자이나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는 것을 누가 마다하랴..

그런데 꼭 미국까지 공격해야겠나.. 음.. 내키진 않는데.. 그래도 꼭 해야겠다면 뭐.. 대신 꼭 이겨야돼..!"


7cea8172bc846ff53ce981e5439f343331e535cb3a2efd333457fd0ca3

초기 전세는 일본이 잠깐 유리한듯 보였고 최대 판도는 이렇듯 보기엔 화려했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7cea8172bc846ff53bee86e7439f2e2d76b883d6b0459d4ac348a4ce

일본의 주요 기업들은 모두 군수산업업체로 전환되었으나

자원이 턱없이 모자라 일반 가정의 금속 식기류까지 공출되었으며..


7cea8172bc846ff538e98ee5459f2e2d8529ac59495a0788893079d2

기름마저 존나 부족해 일본 본토고 식민지고 할것 없이 농민들은 나무의 송진을 체취하고 쌀이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수탈당했다.


7cea8172bc846ff537ee8fe0439f2e2deab5d3ca8d9e13cfa35ca9a109

7cea8172bc846ff23eeb8ee74f9f2e2d8202b472db71529629c81bd4

7cea8172bc846ff23ee98ee1469f2e2dd1822e92d4f07dee198a909e

7cea8172bc846ff23ee686ed479f2e2d75488d0fe26fadba70505b99a4

군사 훈련에는 애어른이 따로 없고 여자와 승려들까지 동원되어

흡사 북한의 선군정치 같은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7. 패망.. 그리고 '만들어진' 슬픔.


7cea8172bc846ff23bec85e4459f2e2d33fbc202071bc0500f7f76d1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

7cea8172bc846ff238e885e5469f2e2db0890446a007ff6c2588c7bda3

3개월 후 투하된 히로시마 원폭.

일본 대본영에게 있어서 천황제라는 국체 보존은 자국민이 몇명이 죽던, 그 어떤 희생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7cea8172bc846ff237ea8fe1469f2e2dda1a5f5ac86ec8955d97f756

일본인의 인명을 누구보다도 경시한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군부의 수뇌부와 히로히토 자신이었다.

이것은 일제의 패망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이었다.



히로히토의 항복 연설

7cf3da36e2f206a26d81f6e446837165ef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서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항복이라는 표현은 하나도 없지만 사실상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었다.

이 연설은 미리 녹음되었다가 반대 세력의 방해를 무릅쓰고 1945년 8월 15일 방송되었다.



7cea8172bc846ff337ea80ed479f0e0d9eb4605522f4e353ee4a2827

그리고 우리는 이 날은 광복절이라 부른다.

(정작 이 날 항복 방송을 들은 조선인은 거의 없었고, 조선총독부가 미군에게 권한을 인계한것은 그로터 한달 가까이 지난 후였지만..)


7cea8172bc846ff03deb85e74f9f2e2d38108e5c290a8698f188a820

7cea8172bc846ff03de783e64f9f2e2da52a2a9a48de31416a78a9b6ed

이 날 일본의 분위기는 대략 위와 같이 묘사된다.

그러나 이런 사진들은 상당수는 사전에 연출된 "하라고 해서 한" 장면들이 많았다.

어쩌면 이 날 수많은 일본군이나 일본인들도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히로히토의 비서실장을 지낸 기도 고이치는 일기에 "방송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박수 갈채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적었다.



다음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