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만물이 생명력을 발산하는 5월의 봄. 긴 겨울 잠에서 깬 벌들이 붕붕 날갯짓을 하며 꽃 향기를 날려 보내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봄 기운에 취해 몸이 달아오르고, 괜한 침만 꼴깍 삼키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들도 사랑을 했다. 서로 눈이 맞은 암컷과 수컷 고양이들은 몸을 섞었고, 그들과 닮은 고양이를 낳았으며, 그렇게 세계는 순환했다.


하지만, 사랑은 국경이 없다는 말처럼, 그 사랑은 종을 초월하기도 했으니,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인간을 사랑한 고양이 한 마리와, 인간을 혐오한 고양이 한 마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캣맘력으로는 약 12.226초가 지난 시점. 청주의 한 골목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의 이름은 모돈이, 한 마리는 곰이었다. 털돼지라는 뜻의 모돈이와 곰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겨서 곰이라는 이름이 붙은 두 고양이는 춥고 척박한 골목길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자연은 혹독했고 5월에 태어난 모돈이와 곰이는 첫 겨울을 맞았다. 최근 몇 년을 생각해봐도 유난히 추운 겨울, 모돈이와 곰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이 살아온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짧음을 직감했다.


두 고양이는 쓰레기 무더기(캣맘 용어로는 겨울집이라고 한다.)에서 바람만을 겨우 피한 채로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 그 겨울을 기대던 와중, 인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우리 야옹이들 어쩌면 좋아! 배고프겠다. 많이 먹어~ 앞으로 내가 너희 엄마야~"


자신을 엄마라고 말하며 맛있는 사료 위에 생선을 얹어 준 늙은 여자는 밥그릇을 놓고는 모돈과 곰이가 먹을 때까지 앞에서 부담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곰이는 인간을 믿지 말라는 진짜 엄마(고양이)의 말을 기억하며 먹지 않으려 했지만, 모돈이가 열이 났기에 그릇을 물고 겨울집 안으로 들어가 모돈에게 먹였다.


"어머~ 친구도 챙기다니. 정말 상냥한 아가(사람 아가 아님)이구나~"


그렇게 곰이를 만지려고 늙은 여자는 주름 가득한 손을 갖다댔지만, 곰이는 하악질과 함께 발톱을 날렸다. 물론 그도 자신의 작은 몸으로는 그렇게 거대한 인간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병에 걸린 모돈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어머, 우리 아가가 고맙다는 표현을 하네?"


고맙다는 표현이 아닌 생존을 위한 발악이었지만, 늙은 여자는 자기 멋대로 곰이의 행동을 해석하고는 한참을 겨울집을 들쑤시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곰이는 모돈이를 그루밍 해주며, 자신의 친구가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곰이야. 방금 엄마가 온 거야?"


"아니, 인간이야. 다행히 독은 없는 것 같아. 많이 먹어."


모돈이는 그렇게 밥을 먹고는 기운을 조금 차린 듯했다. 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인간이 전부 나쁜 족속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겨울 동안, 자신을 엄마라고 칭하던 늙은 여자는 그 병든 육신으로도 지치지 않는지 모돈과 곰을 열심히 챙겨주었고, 모돈은 그 늙은 여자를 정말로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애교를 부리고, 아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흉내내기도 했다. 곰이는 그 광경에 조금 위화감을 느꼈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돈아. 너 털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은데. 어디 아파?"


"응? 아니?"


"그러고 보니, 너 어딘가 코도 좀 길어졌어. 정말 괜찮아?"


"응! 엄마가 준 영양 가득한 사료를 먹었더니 힘이 나!"


밝게 대답하는 모돈을 보며 곰이도 애써 웃었지만, 최근 모돈의 모습은 이상했다. 풍성한 모량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수많은 고양이들의 구애를 받았던 그녀가 점점 털이 짧아지고, 코가 길어지는 등 몸이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늙은 여자가 독을 풀었나 싶어 며칠을 모돈이 먹는 사료를 같이 먹었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보니 독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청주의 골목에서 평생을 살아 온 고양이에게 이러한 일을 설명할 수 있을 지식과 경험은 없었다. 그저 모돈이 어딘가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모돈과 함께 곰이가 사료를 먹었던 며칠이 지났을 때, 늙은 여자는 어떤 통을 가지고 와서는 말했다.


"얘들아~ 집에 가자!"


"와 엄마다! 곰이야 가자!"


"잠깐! 함정일지도 몰라 내가 먼저 가 볼께!"


그렇게 말하고 곰이는 모돈을 가로막고는 자신이 먼저 들어갔다. 위험한 것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곰이는 모돈이에게 안전하다고 말하려 하는 그 때!


철컹


통의 문이 닫혔고, 곰이가 아무리 억센 팔로 철창을 열려 해도 열리지 않았다.


"엄마? 저도 들여줘요! 집으로 보내줘요!"


"안돼 너는 집에 못온단다~ 야생 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 되요!"


그렇게 말하고는 늙은 여자는 곰이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빠져나갔고, 곰이는 그때 창살 밖으로 모돈의 원망섞인 눈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곰이는 언젠가 그의 엄마가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곰이야. 절대 인간들을 믿어서도 사랑해서도 안 된단다. 특히 너희에게 이유 없이 잘 해주는 인간을 사랑해선 안돼."


사랑하면 닮는다던가. 모돈은 먼 조상이 품종 순혈묘였기에 털돼지라는 뜻의 이름 모돈이라는 이름을 얻었건만, 늙고 추레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며, 그녀를 닮아 털이 빠지고, 모질이 나빠지고, 이목구비가 어긋나 못온이 되었고, 곰이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았기에 고양이 고유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지키게 되어, 인간에게 납치당해 꼬미라는 이름과 함께 평생을 집안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그리스 신화식 비극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