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아파트 49동 49호, 그 안에서 희미하게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할아버지! 같이 닌자 놀이 해요~!"

"허허허 토치노키야, 그래, 할애비랑 닌자 놀이 하자꾸나..."

"닌포! 닌포 쏜다! 이얍~!"

"끄-악! 당! 했! 다-!"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다 눈챠쿠와 브레이서, 그리고 키츠네 오멘을 쳐다본 노인,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돌변한다.

"... 아니... 로드님...?

이... 이 놈, 불순한 체제 반역자 녀석!!!! 고귀하신 로드님에게 더러운 손 떼지 못할까!!!!"

올해 85세를 맞은 박닌붕, 손자 박토치노키 (5세)를 밀쳐버리고 키츠네 오멘을 벗겨 가면을 끌어안는다.

"로드님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바닷가로 갑시다... 바닷가로 갑시다..."

"우아아앙 엄마~~~ 할아버지 이상해~~~~"

"아니 아버님 무슨 일이에요 이게!!! 그만 좀 하세요 제발..."

토치노키의 우는 소리를 들은 토치노키의 엄마가 달려온다.

"로드님 바닷가에 다 왔습니다 정말 굉장한 석양입니다... march......"

박닌붕의 며느리 후유코 (38, 전업주부), 옆에서 깊은 한숨과 함께 토치노키를 달래며 한 방울 눈물을 흘린다.



잠시 후 저녁 9시 박닌붕의 아들 박후지키도 (40, 회사원)가 퇴근하고 귀가한다.

"여보, 아버지 저 왔습니다."

"여보 왔어요? 우리 잠시 얘기 좀 해요..."

부부는 안방으로 들어간다.

"여보... 아버님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요양원에..."

"또 그 소리야? 여보, 아버지가 귀찮은 거야? 이 집도 아버지가 사주신 거고 우리 부부 도와주신 거 벌써 잊었어?

그리고 저기 봐, 토치노키가 얼마나 아버지를 좋아하는지."

"히히 토치노키야 간다~ 헬 회오리-!!!!"

"꺄르륵 할아버지 너무 빨라요!"

살짝 열린 문틈으로 거실에서 토치노키를 안고 돌고 있는 박닌붕이 보인다.

"여보가 몰라서 그래... 낮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진짜 더 이상은..."

"됐어... 그만 얘기하자... 내일 모처럼 쉬니까 가족 다 같이 나가서 바람이나 쐬면서 기분전환이나 하자고, 어때?"

"알았어요..."

후유코, 한숨 쉬며 말한다.

"자자 기분풀고, 토치노키야~ 내일 덴뿌라 뷔페 갈까?"

"와!!! 좋아요!!!"



간만에 한 차를 타고 나온 박닌붕 가족, 마루노우치 스고이 타카이 빌딩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이다.

운전석엔 조금 피곤한 듯한 후지키도, 조수석엔 시무룩한 얼굴의 후유코, 둘 사이엔 묘한 침묵이 흐른다.

뒷좌석엔 잔뜩 신난 토치노키와 박닌붕이 타고 있다.



그렇게 도착한 스고이 타카이 빌딩에는 방학을 해서 그런지 하이스쿨 학생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박닌붕, 갑자기 흑색단발머리의 교복 차림의 여고생과 긴 펌헤어를 한 여고생에게 달려든다.

"훠-히히히! 오늘은 이거다!!! 야모토 팬티짤, 아시리 응딩이짤 달린다!!!"

"아버지!!!!"

"꺄아아악!!"


잠시 후 파출소, 후지키도가 무릎을 꿇고 여고생들에게 빌고 있다.

"저희 아버지가 치매셔서 그렇습니다... 제발 한 번만 선처 부탁드립니다 진짜..."

"까고자빠졌넴마-!! 노망난 늙은이는 집에나 둘 것이지 도대체 왜 밖에 데려오냠마-! 뒈진담마앗-!!!"

여고생의 야쿠자 샤우트! 무섭다! 무분별한 미디어 노출로 폭력적이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에에에-! 스미마센! 스미마센!"

"자자 박 선생님 일어나시고, 학생분들도 박 선생님 선처 한 번 해주세요~ 이렇게 비시는데~"

"모르겠고요~ 일단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 합의하는 걸로 해요 일단... 기분 잡쳤네 정말..."

"예예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고생들은 파출소를 나간다.

"거, 이제 선생님도 아버님 모시고 들어가세요. 웬만하면 다른 데 모시든지 하지 참..."

"예 죄송합니다..."


귀가한 박닌붕네, 안방에서 부부의 얘기가 한창이다.

"이거 봐, 내가 뭐랬어? 아버님 제 정신 아니야 이제... 모시자 요양원으로. 난 못 참겠어. 나랑 토치노키가 나가든지..."

"그래. 당장 알아보자, 요양원..."


며칠 뒤, 또 한 차를 탄 가족,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헤즈 게이야~ 오늘은 어디 가노? 오늘이 참피온 레드 발간일이노? ㅋㅋㅋㅋ 오가닉 코믹스 보급 좋다 이거야~"


"예 아버지 오가닉 코믹스 보러 가요, 오가닉 코믹스. 그게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도착한 거대한 하얀색 건물 앞, 로비에 풍만한 바스트의 여간호사와 삐쩍 마른 의사가 마중나와 있다.
이상함을 느낀 박닌붕, 소리를 지른다.

"게이야!!! 닌슬 단행본 사준다 하지 않았노!!!! 왜 킬러즈를 갖고 왔노!!! 아밧!! 아바밧-!!!"

박후지키도, 애써 무시하고 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한다.

"이 씨발련아!!! 요고 유키=상 사인 받아준다며!!! 억...!"

갑자기 박닌붕이 가슴을 부여쥐며 쓰러진다.

"AED 들고와! 어서!" "아버님!" "아버지!"


희망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박닌붕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의 유지에 따라 스크린에는

" 닌자 슬레이어 본즈판 2기 25화(자막) "

을 비롯한 닌자 슬레이어 애니메이션 정주행 상영회가 틀어지고 있었다.

닌자 슬레이어는 본즈와 매드 하우스가 작화를 맡아 블루레이 10만장을 판매, 극장판이 현재 세번째 편이 나오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몰려오는 노인들...


"ㅋㅋㅋㅋ닌붕게이 소미 정발 7권도 아직 안나왔는데 먼저 갔놐ㅋㅋㅋ엌ㅋㅋㅋ"


"븅신ㅋㅋㅋㅋ"


"나한테 채팅 이쿠사 좆발린 븅신새끼ㅋㅋㅋ"


하며 웃는다.

"혹시 아버님 친구분들 되십니까?"

후지키도가 다가가 묻는다.

"친목밴이다 게이야."

한 노인이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 같이 앉아서 깔깔거리며 육개장을 먹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토치노키는 심심하다며 후유코에게 나가자고 조르고 있고, 주저앉은 후지키도의 눈에서 굵은 눈물 두 줄기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