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헤즈들은 정몽주=상이 선죽 브릿지에서


앰부쉬에 당해 저항도 하지 못하고 폭발사산!


그 결과 코리아는 멸망했고 조선이 건국됐다고 알고 있을겁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당신?


아무리 코리아의 마지막 충신이었다고는 하나,


고작 권신 하나가 죽었다고 나라가 멸망하다니...




그 실체는 국운을 건 이쿠사 배틀이 선죽 브릿지에서 있었다!


하지만 용비어천가와 왕씨의 학살로 대표되는


조선 초기의 코리아 격하 프로파간다에 선죽 브릿지의 이쿠사는 감추어졌으니!




먼저 정몽주=상이 코리아의 국운을 건 이쿠사 배틀을 할 카라테가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잠시 이야기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정몽주=상은 선죽 브릿지에서 앰부쉬를 당해 폭발사산! 당했다는


조선의 프로파간다가 뉴런에 깊이 남아 문약한 문신으로 인식하기 쉽지만


(이 또한 용비어천가에 걸린 것과 비슷한 세뇌짓수다... 무서움!)




실제는 왜구슬레이어 이성계=상의 부장으로 수 없이 종군하며 카라테를 증명하였으며


고려가 명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주원장의 생일에 파견할 사신으로 누구를 보낼까 정할 때


고려 개경귀족들은 눈치싸움 끝에 정몽주=상으로 정하였으나, 결정을 지체하여 남은 기한 실제 적음!


주원장의 손을 빌려 정몽주=상을 죽이려는 차도살인, 흉악한 무라하치 였으나




정몽주=상은 데스마라톤 보다 3배 힘들다는 데스삼종경기를 한 달 동안 행한 끝에


주원장의 생일에 늦지 않고 시일에 맞추어 도착하는 킨보시 오오키를 획득!


개경귀족 파벌의 수장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 하게 되는 뛰어난 와자마에를 보였다.




 또한 고려말기 성리학의 서적들이 제대로 들어오기도 전에 그 서적 몇 권을 보고서는


성리학의 진수를 파악하여 주석을 달았는데, 훗날 들어온 주석본과 거의 일치 하는 등


학문에서도 뛰어난 교양을 보여, 실제 개경귀족의 그랜드마스터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때는 1392년, 이성계=상이 사냥중에 '몽키 폴 프롬 트리'를 방불케 하는 낙마 사고를 당하고.


이성계=상이 로드 오브 코리아를 해하려는, 역모를 꾀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정몽주=상은


부하인 김진양=상, 이숭인=상과 함께 이성계=상을 탄핵하여 카미유데형에 처하려 하였으나




이성계=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것도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면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이에 정몽주=상은 이성계=상이 함정을 판 것은 아닌가?


상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병문안을 핑계로 방문하였는데,




이 때 훗날 네오 코리아(조선)의 로얄슬레이어.


왕자와 귀족에겐 자비가 없지만 백성들에게는 한없이 상냥한


레드고릴라=상 뺨치는 폭력의 프로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이방원=상과


술자리를 가지며 개경하이쿠-시조-를 읊었다고 역사서는 전한다.




그렇다면 이 자리가 얼마나 위험한 자리였는가?




정몽주=상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인 이성계=상을 따르며 전장에서 무공을 세우고


이성계=상을 닮아 남다른 피지컬을 보이며 인간흉기라 불리웠던 이방원=상...


그가 정몽주=상을 이대로 살려보냈다가는 일족이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위협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세푸쿠를 명받을 것을 각오하면서까지 돌아가는 정몽주=상에게 앰부쉬를 걸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방원=상과 정몽주=상의 국운을 건 이쿠사 배틀이 벌어진 날은 1392년 4월 4일... 사츠바츠!




a17d25ad2f0fb465b2ee98a518d6040350afda658ac2d62f3172

a17d25ad2f0fb465b2ed98a518d604032de7dc5cc65ad24ae746ed


이방원은 조영규와 이성계의 부하들을 보내 앰부쉬를 가했지만 모두 폭발사산!


각종 시가와 문학에 능했던 정몽주=상은 전우들을 죽인 이후


자신에게는 조카와도 같은 이방원=상을 차마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개경이 초토화되는 처절한 이쿠사 배틀 끝에 쓰러진 것은 정몽주=상이었다.



배틀 오브 선죽브릿지의 여파로 코리아의 수도 개경은 완파되어


이성계=상이 "개경은 끝장이다. 천도는 확정. 땅을 골라와라." 라며


천도를 강행하게 된 것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적혀있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