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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blog.ohmynews.com/hankis/245040

노무현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를 고른다면"

'바보'라고 부르길 좋아했던 지지자들, '바보'라고 불리길 좋아했던 노무현.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바보 같은 사람' 노무현. 남들이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게 맞다면 굳이 피해가지 않는다는. 나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여러차례 그 '바보'와 만났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많은 기사를 썼다. 훌쩍 바보가 떠난 뒤 그의 말을 복기해보니 당시에는 잘 못 느꼈던 새로운 느낌이 든다. 기사화 유무와 관계없이 밖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몇 가지를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2002년 2월 5일 오후 4시 10분. 대권도전을 선언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의 차에 탑승해 20여 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노무현 고문은 <오마이뉴스> 주최 '민주당 대선주자 초청 특별 열린인터뷰' 첫 번째 초청 인사였으나, 선관위의 제지로 인터뷰가 무산됐다. 이런 탓에 노무현 고문과의 인터뷰는 탈정치적인 질문들이 많았다. 그의 또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 아래 글은 당시 기사화된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기초로 작성됐고, 호칭도 당시를 기준으로 했다. 이 글은 노무현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록이라는 점을 사전에 밝혀둔다.)



당시 대선주자 후보군 가운데 '제일 인터넷에 강하다'는 평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기술이 있다기보다는 캠프 문화가 인터넷에 익숙한 문화다. 지난 93년 연구소 시절부터 모든 업무를 전산화했다. 94년에는 랜(LAN) 시스템을 깔았고 그때부터 우리 사무실은 그 어느 사무실보다 빠르다는 평을 들었다. 사실 나도 워드프로세서 이외에 컴퓨터는 서툴다. 다만 인터넷 마인드가 앞설 뿐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문제제기를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에서 가장 많이 신경 쓴 것도 'e지원' 등 인터넷에 기반한 시스템 정비였다. 그리고 이전 대통령과는 달리, 종이로 복사된 언론의 흐름도 보고받았지만 직접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여론의 흐름을 스스로 확인했다. 인터넷 글에 직접 여러 차례 댓글을 단 것도 대통령으로서는 그가 처음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노무현이 20대 때 관상을 보고 얼굴에 있는 점을 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 노무현 고문은 사주나 점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보지는 않는다. 아내가 어디 다른 사람 따라가서 듣고 오면 이야기하는데 재미있게 듣기는 한다."

- 최근 역술산업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정치의 퇴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사회현상에 대해 어떤 의미나 해석을 붙이는 것에 대해 솔깃하게 귀는 기울이지만 쉽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점을 많이 보는 것은 한국 사람이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고, 교육열도 높은 것처럼 좀 극성스러워서 그런 것 아닐까?(웃음) 하지만 크게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참! 27살 때 나도 관상을 본 적이 있다. 고시 공부하면서 부산 용두산 공원 계단 앞에서 점을 보시던 분에게 관상을 봤는데 이마를 딱 때리면서 '당신 28살에 소년과거 하겠소'라고 했다. 그리곤 내 얼굴을 잡아당기면서 '검은 점 빼' 하며 양잿물 같은 것으로 점을 빼줬다. 얼떨결에 그 때 점 하나 뺐다. 그후 2년 후에 사법시험에 통과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점이나 사주·관상을 보는 것은 복권처럼 흥미 수준으로 넘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홀로 남겨진다면 무인도에 세 가지를 갖고 갈 수 있다면, 노무현은 무엇을 갖고 갈까?

- 무인도에 간다고 했을 때 가지고 가고 싶은 것 세 가지를 꼽는다면?
"책하고 컴퓨터하고… 두 개만 가지고 가지 뭐."

- 예전에 노 고문께서는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수저, 냄비, 라이터'를 갖고 가겠다고 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억이 나는지.
"(하하) 기억나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을 제일 먼저 얘기했다는 것은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노 고문께서는 말씀 도중에 '-인데요' '-이구요'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겸손하게 말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저에게 강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이 들어온다. 저는 한편으로는 강하게 따라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하면서도 스스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저는 신념·양심·용기 이런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정치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저만큼 분명한 사람이 어디있느냐. 저만큼 강력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

국회의원 배지 걸어 놓고 내가 옳다고 한대로 실천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강한 거지 그냥 표정만 강하게 하고 아랫배만 쑥 내밀고 목에 힘 주면 강한 거냐. 말씨만 강하면 강한 거냐. 그렇지 않거든요. 진짜 강하다는 것은 자기 말을 실천함에 있어서 어떤 장애물도 어떤 유혹과 억압을 이겨낼 수 있는 신념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목소리에 힘주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어투를 가지고 강하다는 얘기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리고 그렇게 외형상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던 지도자가 살던 시기가, 그렇게 강력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렸던 시대가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다.

강한 것을 찾는 것이 제가 국민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국민을 위해서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국민이 필요치 않은 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니 좀 답답하고 짜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