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박근령
Q: 박 이사장이 최태민 목사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언제인가.
A: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최태민 목사라는 사람이 언니에게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겠다고 하면서 만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그 분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셨다.
Q: '만나지 못하도록 했다'면 이미 그 전에 박 전 대표와 최 목사가 만났다는 말인가.
A: 한두 번 행사장에서 마주친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Q: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가.
A: 언니의 대학 재학 시절로 알고 있다. 프랑스 유학을 가기 전이다.
Q: 박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언니의 개인비서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그때 최태민 목사의 실체를 전혀 몰랐나.
A: 당시만 해도 저는 언니를 도와주시는 훌륭한 분으로 알고 고맙게 생각했다. 제가 청와대 있을 때는 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사진만 봤다. 그 후에는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최 목사가 그 당시 아현동에 위치한 새마음병원을 언니와 같이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관여했다.
Q: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자식 문제와 관련해 친국(親鞫)을 했다. 그 사실을 박 이사장은 언제 알았나.
A: 그 무렵 알게 됐다. 언니도 그 일로 굉장히 괴로워했다. 새마음봉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잡음과 투서가 정보기관이나 청와대로 들어왔다고 한다. 곳곳에서 잡음이 많이 일어나니까 아버지까지 확인하려고 나서신 거다.
Q: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근혜, 근령 두 자매는 신당동 사저에 잠시 거주하다 기업인들이 마련해준 성북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성북동 생활은 신당동보다는 편했나.
A: 성북동으로 이사를 가면서 할 일이 태산 같았다. 신당동 사저는 워낙 좁아서 짐도 못 풀었지만 성북동에서는 짐을 정리할 공간이 생기다 보니 본격적으로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을 했다. 총무처와 대학교 도서관학과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같이 작업을 했다.
Q: 성북동 시절에도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전 대표의 일에 관여했나.
A: 새마음봉사단 일과 관련해 거의 매일 의논을 한 걸로 안다. 그런데 육영재단 사건 때문에 후에 들은 구호를 보면 최태민 목사가 오해 받을 일들을 했다는 것이다. 전횡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Q: 1990년 8월14일 박지만씨와 함께 최태민 목사 비리를 폭로하는 탄원서를 노태우 대통령 앞으로 쓴 걸로 알려졌다. 그 탄원서가 박근령 이사장 자필인지 여부가 논란이 있었다.
A: 당시 탄원서는 제가 자필로 직접 썼다. 동생도 최 목사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속상해 했다. 동생이 제 아파트에 와서 '최 목사 때문에 큰일'이라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Q: 탄원서 내용을 보면 최태민 목사 일가가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18가지 항목을 지적한 걸로 돼 있다.
A: 오래 전에 써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에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당시 육영재단의 비리를 잘 알고 있던 직원들은 '희대의 사기꾼 최태민은 물러가라'고 피켓을 들고 성토를 했다. 육영재단과 기념사업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이건 아니다.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속히 언니가 그 사람들(최태민 일가)과 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우리는 탄원서로 바로잡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청와대에 마약을 가져온 최초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