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출생주의자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출산률이 낮아지는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출산률이 낮아지면 전체 고통의 총량이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현재 나의 고통 감소에는 불리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감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놀랄뿐이다.
반출생주의자 입장에서는 한국의 저출산으로 앞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이 반가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고통의 총량을 감소시키는것에 관심이 많다. 이제 우리의 현재 삶의 고통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보자.
먼저 내 말이 정답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두고 시작하겠다.
나는 태어남으로 이미 존재자가 된 우리들의 고통을 낮추기 위해서는 철학과 금융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행복의 역치를 낮춤과 동시에 정신적 고통의 내성을 기를 수 있고,
금융을 통해서는 물질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쇼펜하우어의 "인생은 고통과 권태를 왔다갔다 하는 시계추와 같은 삶이다" 라는 말을 곱씹어보면서
'아 내가 그동안 권태로웠던 이유가 내가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고
남과의 비교, 물질 및 인관관계의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닫고 마음이 편해지는 효과를 얻음으로써 정신적 고통 내성을 높여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금융을 알아야 돈을 불리는데 유리하다. 그리고 돈이 불어나면 고통을 줄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자신의 육체를 갉아먹으면서 까지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먹고 살기 위해 돈을 필사적으로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슨해진다.
왜 제목에 "역설적" 이라고 했을까?
개인이 철학을 접하지 못하고 사회가 짜놓은대로 생각없이 살아가다보면 학교-취업-결혼-출산이라는 톱니에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학교에서는 철학, 금융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반출생주의자들은 살면서 남들보다 비교적 고통에 많이 노출되어 왔고,
이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철학을 공부했을 확률이 높았다고 생각된다.
철학을 배워야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반출생주의자로 가게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금융을 공부해야 이 세상에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본을 가진 나라(개인)가 자본을 갖지 못한 나라(개인)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게 되고
부의 양극화를 보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라고 깨달음으로써 다시 한번 반출생주의가 옳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은 오히려 철학과 금융의 부재가 반출생주의자를 대거 양산했다.
철학의 부재로 사람들의 행복의 역치가 너무 높아졌고 거기에 더해 극단적인 남과의 비교, 물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 등으로 모든 정신적 가치를 박살내버렸다.
금융의 부재로 지속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금융을 몰라 국민 대다수는 노후대비가 안되어 있고 이는 곧 국가의 복지비용 증가, 개인에게는 세금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전세계에 유례없는 정부보증 전세대출로 기형적인 가계 부채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개인의 노동소득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부동산 거품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결혼시 남자가 집을 해와야 하는 한국 문화에 부응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
그렇다. 이들은 철학과 금융을 배워 자의적으로 반출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 사회의 구조로 어쩔수 없이 타의적으로 반출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반출생으로 도달했다는 점에서 매우 재미있지 않은가?
끝으로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장을 해야한다.
철학을 통해 정신적 고통을 버틸 마음가짐을 얻어야 할 것이고,
금융을 통해 육체적 고통을 버틸 자본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게 고통으로 가득차있는 이 세상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결과주의는 경계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https://m.dcinside.com/board/nobirth/462
철학을 경험없이 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