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역치는 계속 올라가고, 그 어떤 것도 권태로워지지 않는게 없다.

진화와 유전자는 우리로 하여금 신체, 인간 본성의 노예가 되게 한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존재하는 한, 살아가기 위해 항상 무언가에 의존해야 하는 노예이지만, 역설적으로 권태로워지지 않는게 없다. 끔찍하다.

종교라는 환상과 망상은 현대사회로 접어들며 그 위상은 줄어들었으나, 인간은 여전히 자신을 더 휘발적인 무언가에 위탁한다. 


오랜만에 니콜라이 메트너 피아노협주곡 2번을 들어봤다.

어릴적에는 한국음악을 듣고 중고딩 때는 영어팝송 듣다가 대학교 때는 클래식만 엄청 들었는데, 

이젠 가끔가다 듣는 정도고 이것도 예전 만큼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앞으로 죽을때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권태 그리고 무의미함이 이어질지 너무나도 두렵다.


부모 된 자들은 여기서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거나, 성욕을 채우거나, 본인의 욕망을 투영할 대상이 필요하거나, 어떤 타산적인 이유에서든,

궁극적으로 고통과 권태를 해소하기 위해 낳았겠지, 아님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성교에는 쾌락을 느끼도록, 호르몬과 신체는 리비도를 우리에게 강요하도록 진화했으니까.

불임이나 유산같은 이야기 빼고나면 실질적으로 성교만 하면 되니 아이는 너무 생기기 쉽다. 또 아이를 낳는건 대부분 젊은 시기라는 이러한 것들에 가장 취약할 때이니,


오늘도 자유의지란 일절 없는, 고통스럽고 권태로운, 무의미하고 허무한 하루를 견딘다.

솔제니친의 암 병동같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