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출생주의의 시작은 철학이 아닌 오히려 극단적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촉발될 것임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결국 물질적인 여건에 따라 출산이란 관념 자체도 정해짐


다산이 미덕이던 시절을 생각해 보면 노동의 가치가 그만큼 고평가되어 있던 시절임


하지만 지금 이 신자유주의라는 경제구조 틀 안에선 100명의 단순노동자는 1명의 첨단 분야 인재보다 가치가 떨어짐


이런 최상급 인재는 인도처럼 단순히 많이 낳아서 탄생될 수도 있겠으나 이것은 극히 비효율적임


차라리 적게 낳아 그 한두명에게 모든 비용을 집중시키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고 오늘날 선진국의 저출산 현상과 깊게 맞닿 있는 부분임


저출산이 부르주아 계층에서 서민계층으로 내려져온 경향인 걸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엘리트주의 교육을 받은 오늘날의 젊은 세대 대부분이 출산을 망설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님

여기서 만약 기술이 더 발전해 대다수 하층민들이 잉여인력으로 전락하게 되는 미래가 온다면 어떨까?


미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할 하층민들은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더더욱 줄어들 것이며


그나마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소비자로서만 그 역할이 온전히 규정될 것임


이에 따라 국가에선 줄어드는 소비 규모를 늘리고자 대량의 잉여인력들을 대상으로 부양 정책을 펼칠 것인데


고용이 줄고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상 복지예산은 정해져 있을 것이며


공산주의 사회에서 출산이 가져다주는 메리트가 적듯이 (10명이 배급받을 거 11명이서 배급받으면 손해다.)


출산의 가치는 더더욱 하락할 것임이 분명함


이렇듯 출산으로 얻어지는 성장의 이득이 한정된 자원을 나눠가질 때보다 적다고 개인과 국가 기득권자들이 판단할 때 비로 반출생주의가 주류 담론으로 올라올 것임


쾌락주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출산이 인간의 삶의 질(쾌락 추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출산에 대한 인식도 당연히 변함


정신병이 중세 근대 현대에서 각각 달리 취급되었듯


인간이랑 생명체가 갖는 무게 역시 시대에 따라 다르게 취급될 것임


물론 인구가 적정 수준까지 줄어든다면 그때는 또다시 출산에 대한 관념이 변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