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음에 있어서 그 아이의 동의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 부모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존재케 하는 것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그 잠재적 존재는 이미 존재해야만 한다. 이는 모순이다.
이에 더해, 아이를 낳음으로써 그 아이에게 고통을 감각하게 한다는 점 또한 온전히 부모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해보인다.
말하자면 이것은 우리 세계의 문제이다
우리가 처한 세계의 문제를 눈감으며 적당히 도덕적 기준을 낮추는 것은 나에게 있어선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낮춰도 될 이유 중 그 어디에도 잠재적 존재의 이익은 포함될 수 없다.
그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방식으로 낮춰진다.
그렇게 낮추는 것은 도덕적인가?
친출생주의자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분명히 더 나은 삶, 더 나은 존재방식을 가정할 수 있음에도 그러한 것들을 임의로 잘라내는 것은 도덕을 입맛대로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동의를 구할 수 없다면 나쁘다
고통도 감각하게 한다면 그것은 더 나쁘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출산은 항상 그러하다
즉, 출산은 항상 나쁜 방식으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출산이 왜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야하는가?
친출생주의자는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 안 해. 그냥 낳을 뿐이야.
맞아. 그냥 낳을 뿐...ㅡㅡ
이미 존재하든 아직 존재하지 않든 간에, 계약주의적 정의(묵시적 동의)에 기반한 정당화가 어렵다면, 위험을 강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