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전에 고통을 화폐, 행복을 자산에 비유하며 행복을 위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 기나긴 고통을 격어야 하는 문제점을 꼬집은 바가 있다.


그러나 내가 굳이 고통과 행복을 화폐와 자산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바로 이 행복이란 것이 무한정으로 생성될 수 없는 한정된 자원의 성질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행복이란 부동산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수 만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아니 당장 수 십년만 시간을 앞으로 되돌려도 인간의 행복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따듯한 잠자리와 아프지 않은 몸 그리고 부족하지 않은 식량.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위하여 싸웠고 부를 원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 세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더이상 저 세가지에 열광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는 행복의 몇가지 특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첫번째는 행복의 비가역성.


이러한 비가역성은 무릇 행복에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니지만 어쨌든 행복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에 유달리 분명하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많은 문명인들이 힘 합쳐 이룩한 세상을 누리고 자란 우리에게 행복의 역치는 너무나도 높아져버린 것이다.


여기서 더한 행복을 누리려거든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하는 것이 아닌 더 많은 행복을 필요로한다.


두번째는 행복의 부증성.


상술하였듯 우리는 더 많은 행복을 필요로한다.


하지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한도는 정해져있고 이는 행복이 화폐처럼 무한히 쌓일 수 없는, 혹여 쌓이더라도 어느 순간 무의미해지는 자산임을 알 수 있다.


즉 행복은 개개인마다 소유의 한도가 정해진 일종의 한정자원인 셈이다.


셋째로 행복원자재의 열등성(열등재)


행복함을 느끼기 위하여 우리는 여러 종류의 물질, 경험 등을 필요로한다.


이는 사람으로 하여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에 행복의 원자재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원자재들이 바로 열등재에 속하는 것이란 점이다.


열등재는 소득이 증가할수록 수요가 감소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요가 감소하게 된 것이 아닌 기본요소로서 자리잡게 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함을 느끼게 하는 가치를 가진 자재로서의 가치는 하락한다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행복원자재는 열등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플레이션이라고 표현을 하였을까.


행복의 역치가 내려가지는 않을테니 디플레이션은 아니고...


그렇다고 행복의 스태그플레이션이라기엔 이 세상 사람들은 본능에 따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행복경제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즉 행복은 슈랭크플레이션, 인플레이션에 비유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행복의 인플레이션은 어떠한 형태인가?


행복의 가치는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해 뭘 하는가 도대체 그게 아니라면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라는 말이 왜 있지?


인간은 가진 바 욕망을 절제(切除)해내지 않는한 자신보다 행복한 남을 보고 견딜 수 없어한다.


인간은 향상심을 가진 존재이고 항상 불만족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따라 행복은 자연스레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는 자산의 형태로 편입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되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고통이다. 즉 태어남은 고통이다.






공부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써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