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생텍쥐페리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 친구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물어보는 법이 없다.
어른들은 "그 애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는 나비를 수집하니?" 따위의 말을 결코 하지 않는다.
만일 어른들에게 "장밋빛 벽돌로 지은 예쁜 집을 봤어요. 창에는 제라늄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있고요." 라고 말하면 어른들은 그 집이 어떤 집인지를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들에게 "십만 프랑 짜리 집을 봤어요"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야 참 멋진 집이구나!" 라고 소리를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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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 하는 것은 '숫자로 사람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철저히 숫자로 평가한다.
키, 몸무게, 연봉, 부모의 재산, 자동차의 사이즈, 집의 평수 등등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장에서 매기는 가격으로 철저히 평가한다.
물론 물건을 구입할 때 가격 대비 만족감을 고려해서 숫자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한 경제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날 때 오로지 숫자 하나만으로 그 사람을 보지도 않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 옳을까?
내 본가에는 개가 한 마리 있다. 그 개는 나이를 10살 가까이 먹었고 어디에 가도 숫자로 매기는 값은 매우 낮다.
조그만 개니까 보신탕집에서도 값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고, 늙고 잡종인 개이므로 애완견으로도 높은 값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 그 개는 단순히 숫자로만의 가치를 지니지는 않는다. 더 비싼 새로운 개로 바꿔준다고 해서 흔쾌히 그러기는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개는 숫자로 평가받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것은 무생물에도 적용된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 오랫동안 탄 차는 분명히 시장 가격으로는 새것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된 물건에서 각별한 애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감정을 가지고 각각의 개성을 가지는 사람은 단순히 숫자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다양하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지도 않고 숫자 몇가지로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을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각의 사람마다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사람에게 있어 숫자는 부수적인 요인일 뿐 개인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반면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획일적이고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개성을 중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숫자만 같으면 같은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것만 듣고 개인을 판단해버린다.
한국인들은 늘 자기 자신을 시장에 내놓고 가격이라는 숫자로 평가한다.
내 개가 애완견 시장에서 낮은 가치이면 어떤가? 나에게 좋으면 그만이다. 내가 탈모이거나 키가 작거나 수입이 낮아서 한국 결혼정보회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어떤가? 나는 숫자로 대변될 수 없는 개인이다.
내 자신을 숫자로 평가하지 않고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그만이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호스트바 시장에 내놓는다면 나는 완전히 무가치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 시장에서 그런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왜 굳이 한국 사회에서 '남'이라는 존재가 받는 평가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숫자로 평가해서 내놓아야 하는가..
비록 이것을 정신승리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그런 사고방식도 한국 사회를 살면서 필요하다.
참 지랄맞은,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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